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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잠전문가 Mar 13. 2019

어느 몸치의 체육 수난기

왜 달리기로 시험을 치냐고요

학창 시절, 체육시간은 늘 마음이 무거웠다.

내 몸을 내 마음대로 할 수 없다는 것, 애쓰면 애쓸수록, 힘을 주면 줄수록 우스꽝스러워진다는 사실은 나를 더욱 움츠러들게 했다. 내 운동신경이 평균 이하에 속한다는 것을 금방 알아챘지만 다양한 구기 종목의 던지기나 달리기 스코어 따위로 점수 매겨지는 일은 잔인하게도 12년 동안 지속되었다. 


중학교 2학년 때였던가. 

앞번호부터 2명씩 짝지어 100m 달리기 시험을 봤다. (아니, 지금 생각하니 왜 달리기로 시험을 치는지?!) 

4번이었던 나는 당연히 3번과 달리게 되었는데 문제는 3번이 육상 선수였다는 데 있었다. 고작 100미터 달리는 동안 3번과의 거리가 체감상 40미터 이상 차이가 났고, 달리며 오만가지 생각이 다 들었던 것 같다. 


선생님... 여기가 산티아고 순례길이던가요? 

쾌청하던 하늘과 사정없이 내리쬐던 햇빛, 한없이 멀어진 3번과 3번이 일으키고 간 슬로 모션의 모래바람을 맞으며 인생이 왜 이렇게 긴가, 했던 열다섯 살의 달리기는 근 20년이 지난 지금도 생생하게 떠오른다. 


오른발, 오른손 같이 나가는 사람 손들어보세요?! (네 접니다.)  *출처:노컷뉴스


그뿐이랴. 포물선은 고사하고 발 바로 밑에 떨어지며 발톱을 위협하던 투포환, 휘슬이 울리자마자 수직 낙하하던 철봉 아래의 수치... 그것은 모두 나의 생활기록부에 점수가 되어 흐느꼈다.  

이토록 잔인하고 비인격적인(?) 체육교과를 겪은 나는 성인이 되어서도 스코어가 남는 운동은 남의 일이다. 대학교와 직장에서의 단합대회에서도 즐거울 수만은 없는 노릇이었다.  


내가 유일하게 재미 붙여하는 운동은 요가와 걷기. "잘하고 못하고는 없어요. 하는 만큼 하는 거예요. 그게 요가예요." 요가 선생님 목소리 뒤로 은혜로운 종소리가 들렸다. 요가만이 치욕스러운 '체력장 5급'의 과거를 치유해주었다. 


운동의 필요를 느껴 적당히(?) 할 만한 운동으로 요가를 골랐지만, 요가 역시 만만치는 않았다. 처음 요가원에 가서는 쓸데없이 우직하고 꼿꼿한 나를 만날 수 있었다. 나를 제외한 모든 인간들이 고무인간처럼 구부러지고 휘어지고 늘어났다. 하지만 한 주, 두 주를 지나며 호흡과 함께 어제보다 말랑해진 나를 만날 수 있었다. 육아를 핑계로, 잠깐의 일을 핑계로 지금은 하지 못하고 있지만 일과 중에 몇 가지 스트레칭 동작만으로도 마음을 편하게 해 준다.  


생각해보니 스코어로 매겨지던 수치스러운 몸의 역사(?)는 이미 끝난지 오래다. 벌써 15년도 전에 끝이 났는데 아직도 이렇게 몸 쓰는 것을 두려워하고 있었다. 그게 다 달리기 시험의 트라우마라고... 탓해본다. (망할 교육부!!)


적어도 이제는 재미와 건강을 위해 하는 것이다. 아이가 어린이집에 완전히 적응할 시기가 오면 수영에 도전해보려 한다. 뻣뻣한 뒷목과 긴장해 바짝 마르던 입술은 부디 찰랑한 물속에서 후루루 풀어져버리기를 기대하며... 


<우아하고 호쾌한 여자 축구>라는 책을 재미있게 읽고 책 읽은 이야기를 쓰려다 왠 '체육 수난기'같은 것을 써버리고 말았다. 재미있게 읽고도 '무엇보다 축구는 재미있으니까. 정말이지, 이거, 기절한다!'라는 책의 마지막 멘트에 부럽고 삐걱이는 내 몸이 서글퍼(?) 한탄이 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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