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여전히 야쿠르트 전동차를 보면 목이 멘다
엄마, 엄마 저 차 봐봐! 되게 멋지다!
아이는 호들갑을 떨며 무언가를 가리켰다. 야쿠르트 전동차다.
아이는 감탄사를 연발했다. 뭔가 미래지향적으로 보이는 탑승형 전동카트가 신기하고 멋지게 느껴졌나 보다. 몹시 더운 날이었는데 파라솔이 달린 전동차에 차양모를 쓴 야쿠르트 아줌마는 다소 우주적인(?) 포스를 풍기며 지나갔다.
2014년 이 야쿠르트 전통 카트가 처음 보급되었을 때 내가 가장 먼저 떠올린 생각은 '세상이 많이 좋아졌다'거나 '멋있다'거나, '나도 한 번쯤 타보고 싶다(?)'를 거쳐 엄마, 야쿠르트 아줌마였던 나의 엄마에게 닿았다.
오빠와 내가 어렸을 때 엄마는 야쿠르트 배달일을 하셨다. 지금은 어떤지 모르겠지만 그 당시 우리가 살던 성남은 아주 가파른 언덕이 영화 인셉션처럼 펼쳐져있었다. 나의 유아기적 희미한 기억으로는 아래에서 언덕 너머를 올려다보면 고개가 절로 솟았고 조금은 현기증이 났던 것도 같다. 엄마는 매일 같이 그 언덕을 오르내리며 시원하고 달콤한 유산균을 배달했다.
나중에 내가 '치질'이라는 질병을 알 나이쯤 (아마도 고등학생 때) 엄마는 별것 아니라는 듯 야쿠르트 아줌마 시절을 이야기하곤 했다. 언덕이 얼마나 높은지 리어카를 끌고 배달하다가 치질까지 생겨 한참을 고생했다고 했다고 말하며 엄마는 깔깔거렸다.
철없던 그 시절엔 가난이 지긋지긋했고 그로 인한 엄마의 고생도 그저 지우개로 깨끗이 지어주고 싶은 마음뿐, 엄마의 아픔을 내 아픔처럼 안아줄 수가 없었다. 엄마의 가족 부양과 그로 인한 처절한 대가를 그냥 스치는 수다처럼, 엄마의 회상기처럼 가볍게 듣고 넘겼다. 실제로 엄마의 치질은 아주 사소한 일인 것처럼 느껴질 만큼 가난은 무거웠고 크고 지긋지긋한 일들이 많았다.
야쿠르트 전동카트는 미국 월스트리트 저널에도 '쿨'한 요구르트 배달 카트라고 대서특필 되었다고 한다.
158cm인 나보다 키가 작은 엄마. 지금도 50kg이 안 되는 작은 체구의 엄마. 지금의 내 나이쯤이었을 엄마를 떠올린다. 눈 내리는 날도, 땀이 비처럼 내리는 날도 리어카를 밀며 언덕을 올랐을 엄마를 떠올린다. 저 전동차가 있었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할 수만 있다면 과거로 돌아가 엄마에게 저 '쿨'한 전동 카트를 선물해주고 싶다.
나는 여전히 야쿠르트 전동차를 보면 목이 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