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의 상처를 자세히 들여다볼 용기

울지마 바버야

by 잠전문가

다섯 살 꼬맹이에게 길바닥 철푸덕은 특별한 일도 아니다.

마음은 번개맨인데 몸은 휘청휘청 귀여운 뜀박질이니, 마음이 자꾸만 몸을 앞서 바닥과 포옹하고 마는 것이다.

뭐, 자라나는 아이가 수십 번 넘어지는 게 뭐 대수겠냐만은 우리 집 꼬맹이의 엄살이 누구에게도 지지 않는다는 것에 그 심신 불일치의 문제가 있다.


아이들이 대부분 그렇겠지만, 우리 집 꼬맹이도 엄살이 으마으마하다. 넘어지면 바로 ‘아 오늘도 목욕이 쉽지 않겠군!’ 읊조리게 된다.

지면과 갑작스러운 조우를 한 아이는 몸을 일으키자마자 “나 오늘 목욕 안 할거야아아!!” 샤우팅과 함께 오열, 살짝만 까져도 까진 자국이 눈 앞에 보이는 이상 바닥과 한 몸 되어 통곡한다.

약을 발라줄 테니 아픈 손을 내라 하면 엉뚱한 쪽을 내밀 정도로 경미한 상처에도 아주 동네가 떠내려간다.


IMG_9213.jpg 아스팔트와 뽀뽀하기 오초전..사초전..삼초..


오늘도 오종종종 뛰는 걸음과 번개파워 슈퍼파워의 마음은 그만 뜻을 맞추지 못하고 낙하했다.

나무와 돌이 많은 카페 정원이라 뛰지 말라고, 말라고 랩을 했으나, 아이에게 뛰지 말라는 말은 나한테 먹지 말라는 말과 같은 것인지(?), 아이는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리며 신나게 달렸다.


똥꼬발랄함의 마무리는 응당 통곡과 오열인 걸까…

신나게 뛰던 아이는 (하필 철망 도보 위에서) 결국 넘어졌다. 손가락에 피를 본 아이는 떠나가라 울기 시작했고, 맘씨 좋은 사장님께서 주신 약과 밴드로 간단한 처치를 했지만 넘어가는 아이를 안아 달래느라 상처를 자세히 들여다볼 정신이 없었다.


오늘도 역시 아이는 목욕하지 않겠다 강경한 입장을 내놓았지만, 어제도 안 씻은 몸에서도 강경한 냄새가 났기에 우리는 비닐장갑을 이중으로 끼워주고 손을 밀봉한 후 재빠르게 샤워를 시켰다. 자기 전 한번 더 소독하고 밴드를 붙이려고 들여다보니 생각보다 상처가 깊었다. 철망 사이로 손가락이 끼면서 살점이 꽤 길게 찢어진 것 같았다.


“아이고, 이거 아팠겠다.” 소리가 절로 나왔다. 다친 직후엔 아이를 안고 놀랬지, 아팠지, 했지만 실은 위기 모면, 가짜 위로였을지도 모르겠다. 상처도 제대로 못 봤으니 말이다. 물론 경황이 없었지만 아이 손을 더 잡고 들여다봤어야 했다. 물론 소독한다, 약 바른다, 더 아프게 할까 봐 보지도 못하게 할 테지만 엄마라면 아이의 상처를 단호하고 용기 있게 들여다볼 필요가 있었다.


경황이 없었다,라고 썼지만 어쩌면 아이의 상처를 자세히 보기 어려웠던 것 같기도 하다. 엄마로서 몸의 상처든 마음의 상처든 아이의 상처를 세세히, 또렷하게 마주하기란 생각보다 쉽지 않다는 생각이 든다. 아프지 않았으면, 힘들지 않았으면 하는 것이 부모의 마음이니 말이다.

지금은 아직 어리지만 앞으로 더 복잡하고 다채로워질 아이 마음을 (뭐가 됐든 해결하려는 마음 없이) 텅 빈 도화지처럼 마주하고 기다려줄 수 있을까. 아이의 아픈 마음을 바라볼 수 있을까.


IMG_9364.jpg 오늘의 사건 현장


아이는 ‘햇빛’을 좋아한다. 해가 쨍한 날은 날씨가 좋다고 내도록 말하고, 흐린 날은 자주 아쉬움을 토로한다. 그런 아이에게 언젠가 이런 말을 해주고 싶었다.

“좋은 날씨 같은 건 어쩌면 없을지도 몰라. 해만 내내 쨍쨍하면 모든 것은 말라죽을 거야. 비 오고 바람 부는 날씨가 나쁜 것만은 아니란다.”


사람도 그럴 것이다. 무탈함 만이 좋은 것은 아니다. 온실만이 아이에게 덕이 되는 것은 아닐 테다.

어쩌면 날씨 이야기는 아이를 키우는 나 자신에게 하고 싶은 말일지도 모르겠다. 아이의 상처를 두려워하지 말고, 앞으로 상처 날 일을 걱정하지 말라고 말이다.


종일 신나게 뛰고, 신나게 운 아이의 얕은 코골이를 들으며 기도한다. 아이가 햇빛과 비와 바람을 충분히 받고 잘 자란 과일처럼 윤이 나는, 풍부한 사람이 되게 해 달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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