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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잠전문가 Apr 17. 2019

연둣빛 아이들을 생각한다

제주, 봄의 절정에서 

연둣빛 새 잎이 앞다투어 얼굴을 내미는 계절, 4월.

광화문 출근길에서 더 이상 맑을 수 없는 연둣빛들을 하염없이 바라본 적이 있다. 이른 아침 햇살이 부드럽게 일렁였고 바람의 온도는 적당했다. 순하고 맑은 새 잎이 돋기 시작한 나무들은 푸르렀고 사람들은 늘 그렇듯 바삐 각자의 자리로 향했다. 


어이가 없었다.

이렇게 설레는 계절에, 설레는 마음으로 배에 몸을 실었을 그 연둣빛 아이들이 그렇게 떠났다는 것이.

아무렇지 않은 듯 반짝이는 봄의 광화문, 바쁘게 다니는 차와 사람들이.

일상의 모습이 생경하게 느껴졌다. 


퇴근하고 뛰는 가슴을 부여잡으며 라디오 뉴스를 듣던 신혼집 작은 방을 기억한다. 

육아를 이유로 퇴사하기 전까지 광화문의 거리를 수없이 다녔다. 유가족들의 아픈 목소리를 듣던 날을 기억한다. 아직도 낱낱이 밝혀지지 않은 자식의 죽음을 끌어안고 우는 등에 대고 지겹다는 말을 가래침 뱉듯 캬악, 뱉어내는 택시 기사의 야만성에 내가 대신 울고 싶었던 퇴근길을 기억한다. 


이후 3년 남짓 아이를 낳아 키우며 광화문의 거리는 좀처럼 갈 기회가 없었지만 아이가 크는 만큼 내 마음속 세월호는 점점 더 무거워졌다. 생때같은 자식을 잃는 것은 상상만으로도 몸서리가 쳐졌기에 더욱 그 아픔을 감히 가늠할 수가 없었고 함부로 슬프다 아프다 얕은 감상을 뱉을 수 없었다. 




작년 가을 제주에 내려와 첫 봄을 맞았다. 

봄이야 어디든 그 찬란함을 숨길 수 있겠냐만은 제주의 봄 또한 놀랍도록 아름답다. 


4월에 들어서니 관광버스들이 눈에 띄게 많아졌다. 앞유리마다 [##동창회], [##모임 야유회] 등의 이름을 붙이고 줄지어 제주의 곳곳으로 달려가는 버스들... 약간은 상기된 또는 피곤한 버스 안의 얼굴들을 바라본다. 

그리고 아름다운 제주의 봄 곳곳을 누비며 깔깔 웃었을 연둣빛 아이들을 생각한다.

아름다운 제주의 봄, 그 절정에서 아쉽고 아픈 아이들을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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