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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잠전문가 Apr 18. 2019

월경전증후군에 관한 고찰

포효하라! 울부짖어라! 월간레드요정 영접기

다섯 살 우리 집 꼬맹이는 나보다 내 생리주기를 정확히 알고 있는 것이 분명하다.

그렇지 않고서야 안 그래도 심기 불편한 월경전 증후군 여성에게 유난히 유난한 생 떼 폭격을 잔인하게 시도할 리 없다.


빵야 빵야!!

천진한 5살 심술 총알이 날아온다.

아쭈! 도발? 콜!! 슈웅 퍽 푸슉!!!

애미는 눈에 불을 켜고 분노의 수류탄을 날린다.

누구 하나 대차게 울어야 이 분노의 대전은 막을 내린다.

그렇다. 오늘도 꼬맹이는 사사건건 울고 나는 사사건건 소리치며 등원 전 아침 시간을 보냈다.




당장 장대비라도 쏟아부을 듯 허리가 쑤셔온다. 더 이상 설렐 로맨스도 없는데 가슴이 자꾸 찌릿하게 아파온다. 가볍고 개운하던 다이어트 식단은 개나 줘 버렸다. 이 세상 단 맛이 아닌 단맛과 다음 날 똥x를 성치 못하게 할 매운맛과 온몸 삼투압 작전을 펼칠 염분을 탐하며 이성의 끈을 놓는다.


내 최고의 장점이자 단점인 '단순하기' 기능은 작동을 멈춘다. 사람들의 말과 행동을 수없이 머릿속에 리플레이하며 불편했던 감정을 복기한다. 기분은 흙바닥에 버려진 데다 비에 젖기까지 한 코 푼 휴지처럼 참담하다. 묵언수행이라도 하고 싶지만 꼬맹이는 엄마의 마지막 인내심을 시험하듯 오만 생 떼를 장전하고 미친 락커 엄마를 소환하고야 만다.


나는 유난히 호르몬에 영향을 많이 받는 편인데 아이를 낳기 전에는 다낭성 난소증후군으로 생리주기가 굉장히 불규칙했고, 불규칙한 만큼 성난 피부와 갖은 통증, 날뛰는 감정선에 시달렸다.

월경전 증후군은 다양한 증상이 있다. 가스팽만 배변장애 가슴과 허리 통증 같은 육체적 증상부터 시작해 인생 살아서 뭐하나, 나는 쓰잘데기라는 것이 없다, 말하기 싫다, 다 싫다 등의 존재의 근원적 물음과 심하면 도벽(이런 증상이 없음을 감사해야 하는가)까지... 다양한 심리적인 증상이 잇따른다.

(실제로 2002년 매일경제의 기사에 따르면 생리기간에 충동적으로 남의 물건을 훔치는 '생리도벽'도 감형 대상 인 심신장애로 인정된다는 대법원 판결이 나왔다고 한다.)


언제까지 이렇게 살아야 하나 생각하다 보면 그래도 내가 이 뭣 같은 월경을 하니 사랑하는 내 보물을 낳았지, 싶다가도 한평생 먼슬리 크레이지파티를 벌일 생각에 앞날이 캄캄하다가 그것이 끝나면 기뻐할 틈도 없이 우주 빅뱅 못지않은 지붕 날아가는 대폭발 갱년기가 온다는데... 이쯤에서 호르몬이란 무엇인가 고찰하지 않을 수 없는 일이다.


오늘의 점심, 최대한 자극적으로! (찡긋)


어제도 아픈 허리에 낑낑대며 하루를 덧없이 보낸 것이 억울해 오늘은 반짝이는 봄 날씨를 누비며 산책을 했다. 아침에 아이에게 소리친 것에 대한 미안함, 좋은 풍경과 날씨를 누릴 수 있음에 대한 감사, 요 며칠 속이 좋지 않은 남편에 대한 걱정... 이런저런 생각을 하며 가벼운 땀을 흘리고 한결 나아진 기분으로 집으로 향했다.


집 앞 마트에서 아이가 먹고 싶다던 미역국 재료를 사고 나도 모르게 라면 코너 앞에 섰다. 나는 라면을 찾아 먹는 경우는 거의 없다. 애엄마가 되고 나서 혼자 밥 먹기 귀찮거나 시간이 여의치 않을 때 가끔 끓여 먹지만 결혼 전엔 라면 먹는 날은 1년에 몇 번 되지 않았다. 하지만 월간레드요정은 역시나 자비가 없으시다. 맵고 짠 (심지어 컵라면) 최대하게 불량한 맛(?)을 장바구니에 쑤셔 넣었다.


아이 먹일 건강한 맛의 미역국을 끓여 놓고 혼자 식탁에 앉아 불량한 맛을 후룩거리며 흡족해한다. 짜고 매운맛을 라떼와 촉촉한 초코칩으로 달래며 월간레드요정에 순순히 항복한다.

항복송(?)으론 이게 좋겠다. 루저 외톨이 센 척하는 겁쟁이 못된 양아치 거울 속에 넌...


이제 그만 항복했으니 순순히 월경통의 단계로 나를 넘겨주기를 간절히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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