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잠전문가 Apr 19. 2019

보여지는 것에 대하여

작은 네모창, 그것이 내 경험치의 전부는 아니기를 바라며

사고 싶은 것, 가고 싶은 곳, 느끼고 싶은 것 무엇이든 스마트한 작은 네모에서 가질 수 있는 현대인들에게 어느 아웃도어 브랜드는 외친다. 

"세상은 문 밖에 있다!"

소파에 앉아 스마트폰에 코 박고 있는 내 궁둥이를 힘껏 발로 찰 것만 같은 저 여덟 글자는 불안정한 와이파이 신호 앞에서 심신도 불안정해지는 스마트인들에게 불호령을 내리듯 쾅쾅 외쳐대지만 글쎄... 대답 없는 메아리일지도. 


얼마 전 남편과 밥을 먹으며 남편 친구 인스타그램에 대한 이야기를 나눴다. 이 친구분은 술자리에서 육아 및 가정생활에 대한 푸념(?)을 꽤나 한다던데 남편의 인스타그램을 타고 들어간 그분의 계정은 재미있게 편집해 놓은 아이들 영상과 감성글이 가득했고, 댓글마다 "좋은 아빠세요~" "다정한 아빠 최고예요" 등의 칭찬이 줄지었다. 친구를 오래 옆에서 봐온 남편은 내 얘기에 껄껄 웃을 뿐이었다. 



긴 말 생략... (출처: A kitchen lived in)



이전 세대(?) 커뮤니케이션 채널 되어버린 싸이월드가 배경음악과 일종의 꾸밈, 인맥 등 개인의 작은 사회를 보여주었다면 요즘의 인스타그램은 그야말로 '보여지는 것' 그 자체다. 좋은 몸매, 멋진 스타일, 귀여운 아기, 무어라 표현할 수 없되 소중하고 작은 것도 지나치지 않는 여리고 세심한 갬성, 힙한 느낌, 범접할 수 없는 럭셔리... 사람들은 부지런히 자기만의 '보여줄 것'들을 올리고 있다. 

우리는 그 작은 네모 속에서 실제를 가감하고 꾸미고 때로 재창조하며 집착하고, 그것이 전부인 양 생각할 때가 많다. 현실과 꽤나 다른 작은 네모 속 세상에 가끔은 피로를 느끼면서.


요즘 같은 시대에 "세상은 밖에'만' 있다"라고 하기엔 무리가 있다. 시공간을 초월한 놀라운 경험의 시대다. 세상은 안에도 있고 밖에도 있다. 하지만 심하게 스마트한 그 녀석을 내려놓고 리얼 월드, 숨 쉬고 바람을 맞고 눈을 마주치고 이야기하고 살을 맞대는 시간을 강제로라도 늘려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시각을 제외한 나머지 오감이 왠지 몹시 투덜거리고 있을 것만 같아서... '디지털 디톡스'라는 단어를 처음 듣고 이렇게 생각했다. 본인이 피로를 느끼면 안 하면 되지. 그게 안된다는 것은 대부분이 알 것이다. 


어제는 동네에 숨겨진 아주 멋진 공원엘 갔다. 길게 이어진 계단을 걷고 또 걸어 내려오니 그림 같은 풍경이 펼쳐졌다. 유채꽃과 이름 모를 하얀 들꽃, 드문 인적이 만들어 낸 자연 그대로의 멋진 길과 지저귀는 새. 

'와아, 천국이다.'

짧은 감탄을 내뱉고 바로 핸드폰을 꺼내 사진을 찍었다. 다양한 각도에서 찍고 비디오로 소리도 남기고... 

집에 돌아와 또 감탄하며 사진을 보았다. 문득 '아, 이게 그 천국 같은 공원에 대한 내 경험의 전부일까?'하는 생각이 들었다. 더 깊고 비밀스러웠으면 좋겠는데... 아무것도 없이 모든 것을 얻기 위해 조만간 다시 가봐야겠다.  




관광특별도시에 살다 보니 관광객들의 다양한 모습을 바라보는 것이 나름의 재미다. 

"웃어봐! 여기 봐봐. 제발 쫌!!!"

어떤 엄마의 가벼운 제안 - 간곡한 부탁 - 윽박에 이르는 '사진 찍도록 저 앞에 서볼 것'의 과정을 엿보며 웃는다. 자주 보는 광경이다. 

어렵게 찍힌 아이의 사진은 조만간 카톡에 '행복한 시간' 따위의 글과 함께 프로필로 올라가겠지. 작은 세상 속에 사는 우리 모습이 많이 다르지 않다. 

매거진의 이전글 월경전증후군에 관한 고찰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