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시간 약속에 예민한 사람이다.
어릴 때 엄마는 늘 내가 등교하기 전 먼저 출근을 하셨고, 나는 알아서 준비물을 챙겨 학교에 가야 했다.
그래서였을까. 머리맡에 손바닥만 한 글씨로 준비물을 써붙여가며 챙겼고, 지각은 거의 하지 않았다. 어렸지만 나름의 긴장감(알아서 해야 한다는)이 꽤나 나를 압도하고 있었던 모양이다.
성인이 되어서도 출근 시간, 모임 시간은 물론이고, 심지어 절친한 친구와의 약속 시간마저도 십분 이상 늦으면 두통이 올 정도로 마음이 불편했다. 나이를 먹으며 나아졌지만(뭐든 그럴만한 상황이 있었을 것이라는 여유가 생겼다.) 시간을 지키지 않는 상대에 대한 시선도 곱지 않았던 것이 사실이다.
데이트를 약속한 날, 지금의 남편이 몇 분 늦었는데 자꾸 어딘지 말도 안 하고 금방 도착한다고만 해서 잡아먹을 듯 화를 냈던 생각이 난다. (남편 미안...)
이 시간 강박은 아이를 키우는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시계를 볼 줄 모르는, 시간 감각이 없는 다섯 살 아이를 등원시켜야 하는 아침은 시간 강박이 있는 나에겐 고문이나 다름없다. 물론 어린이집에서도 아이를 정확히 몇 시까지 안 오면 큰일이 난다거나 하는 강요의 제스처는 없다. 시간 맞춰 다니는 훈련을 하기엔 너무 어리니까. 어쨌든 늘 '지금'을 사는 아이에겐 '미래'에 안절부절못하는 엄마의 행동은 의아하다.
엄마는 왜 지금 이, 아침 여덟 시 사십오 분에 해야 딱 제맛인 자동차 놀이를 못하게 하는가? 아침의 손목 스냅이 자동차 날리기엔 최적인데 왜 어린이집 갔다 와서 하라고 하는가? 왜 자꾸 읽지도 못하는 시계를 가리키며 뭐라 뭐라 하는가? 내 시간의 이용자는 난데, 자동차 놀이와 양치 이 두 행위의 가치를 감히 누가 평가할 수 있는가?
하하. 지금을 사는 아이 입장에서 아침의 풍경을 정리해보니 갑자기 몹시 탄압적인 공산국가 대통령이 된 기분이다. 물론 아이의 놀이와 요구를 적당히 들어주고 등원시켜도 법적으로 하등 문제 될 것이 없다. 오히려 충분한 만족감으로 행복한 하루를 시작할 수도 있을 것이다. 하하호호 웃으며 느지막이 등원하는 최후의 멤버(?)들을 가끔 마주치는데 전혀 나쁘지 않아 보인다. 하지만 시간 강박의 엄마는 그것을 지켜볼 수가 없다. 활동 중간에 들어가면 분위기도 어수선하고 선생님들도 신경을 쓰셔야 하니 대개가 등원을 마친다는 9시 30분 내에는 어찌 됐든 들여보내고 싶어 쩔쩔매고 마는 것이다.
아이는 준비도 늦은 데다 심지어 마트에 들러 반 친구들에게 나누어 줄 과자를 사 가겠다고 엉엉 울었다. 가네 마네 실랑이를 하다가 결국 마트에 들러 과자를 사고 시간 강박자의 등원 마지노선 시간을 5분 초과하여 아이를 들여보냈다. 5분 늦는 일 대비 내가 받는 스트레스는 너무 크다. 적당히 편하게 생각하면 좋겠지만, 그게 안되니 이것 참 사서 고생이다. 그렇다고 시간을 엄격히 지키지도 못하는데...
매사 늦는 습관을 갖느니 시간 강박이 낫다고 생각하는 나는, 여전히 시간 강박에 시달리고 있다.
아이와 대설전을 벌이며 요절복통 등원을 마쳤지만 어린이집 앞에서는 사랑의 인사를 잊지 않았다.
"사랑해, 아침에는 울었지만 그래도 들어가서는 기분 좋게 보내."
이 스트레스는 시간 강박자의 몫이다.
감정의 찌꺼기를 서로 나누기보다는 새롭고 활기찬 인사와 사랑이 필요한 아침이다. 하늘이 뚫린 것처럼 내리던 비는 그치고, 청명한 하늘 아래 우리는 장난스럽게 찡긋거리며 안녕- 하고 돌아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