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 우리 얘기 좀 하고 자자!"
좀처럼 꿈나라행이 아쉬운 우리 꼬맹이는 하루 종일 쫑알거리고도 잠들기 직전까지 얘기 좀 하자신다. 요즘 잠자리에 들며 하는 의식이 하나 더 생겼는데 그건 손가락을 하나씩 펴며 오늘 하루 무엇이 좋았는지 다섯 가지를 서로 꼽아보는 것이다. 말간 눈동자를 마주 보고 누워 하나 두울 세엣 네엣 외치는 앙증맞은 목소리를 듣고 있자면 스르르 녹고 있는 사탕이 된 기분이다. 너무 좋아서 하체가 사라지는 것 같은 기분을 아시는지...? 키가 자란 만큼 생각 주머니도 쑥 커졌는지 표현하는 것도 생각하는 것도 재미있고 사랑스럽다.
아이의 '오늘 좋았던 것 베스트 5'가 꿀처럼 달콤한 이유는 무조건 '엄마랑~'으로 시작하는 것인데 이를테면 이런 것이다. "하나, 엄마랑 놀이터 가서 놀아서 좋았어.", "둘, 엄마랑 맛있는 거 먹어서 좋았어.", "셋, 엄마랑..." 몇 년만 지나면 엄마 자리가 단짝 친구 이름으로 바뀔 테지만 지금 받고 있는 아이의 이 우주 같은 사랑에 벅차 나도 모르게 침을 흘릴 지경이다.
내일은 아이의 생일. 실컷 들뜨신 내일의 주인공님께 스케줄 보고를 하며 까르르 거리다 생일 전야의 '좋았던 것 베스트 5'를 시작했다. 뭐 평소와 비슷하게 아기자기하고 귀여운 내용이었다. 놀이터 간 것, 현서 오빠와 논 것, 하원하고 엄마를 기분 좋게 만난 것 등이 포함되었다. 그런데 마지막 한 가지에 내 마음 속 조명이 탁! 켜지는 기분이 들었다.
"다섯, 이 세상이 좋아."
멍해졌다. 그야말로 찬란한 말이었다. 순수한 얼굴로 티 없는 목소리로 별것 아니라는 듯 툭 내뱉는 그 간단한 고백이, 그런 이야기를 하는 아이가 너무 아름다웠다. 너의 세상이 늘 아름다웠으면- 하고 바라게 되는 순간이었다.
해야 할 일, 정신 차려야 할 일로 하루 두 잔 커피를 마시고, 대충대충 끼니를 챙기고 휴대폰을 열어 포털 메인의 절반 넘게 장식된 흉악범죄 기사에 고개를 절레절레 흔든 오늘이었다. 들숨에 남 이야기를 듣고 날숨에 남 이야기를 뱉는 사람들에게 넌덜머리가 나기도 하고 사야 할 것과 남은 돈을 헤아려보기도 했다.
이 세상이 좋아,라고 고백하기에 나는 너무 늙어버렸는지 모르겠다. 무엇 하나 집중하려 해도 오만가지 생각이 곁가지를 치는 복잡하고도 피곤한 마음이 되었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틀림없는 사실은 저 아름다운 아이와 함께 사는 나는 행복하다는 것이다. 이 세상이 좋다고 해맑게 외치고 잠든 아이 등을 슬슬 만지며 속삭였다. 엄마도 그렇다고, 너를 선물로 준 이 세상이 나도 너무 좋다고.
지안아, 너의 세상이 영원히 아름답기만 할 순 없겠지만 말이야.
네 나이가 하나 둘 늘어날수록 그래도 산다는 건 참 멋진 일이라고, 태어나길 잘했다고 고백할 수 있는 삶이 되기를 축복해. 다섯 살 생일을 아주 많이, 온 집안에 굴러다니는 네 구슬만큼, 화가 날 때 천장을 뚫고 나가는 네 샤우팅 데시벨만큼, 네가 여태 먹은 마이쮸만큼, 너로 인해 흘린 눈물만큼, 너로 인해 웃은 웃음만큼, 저 바다의 모래알만큼 축하하고 사랑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