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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잠전문가 Jul 01. 2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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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도 나는 쓴다

뭘 써볼까.

노트북을 펴고 브런치를 연다.

[글쓰기] 버튼을 누르면 브런치는 하얀 공책을 펼친 채 순진하게 커서를 깜빡인다.

이봐, 뭐라도 끄적여봐. 


쓰고 싶은 이야기가 메모장이 터지도록 넘칠 때도 있지만 어떤 날엔 쓸 말도, 어떠한 감상도 도무지 떠오르지 않는다. 하지만 '쓰는 인간'을 다짐한 이후로는 쓰지 않는 날이 길어지면 일종의 부채감에 시달린다. 작가들의 비법을 열심히 들여다봤지만, 글쓰기라고 어느 분야의 달인들과 다를 것은 없었다. 

엉덩이(를 붙이고 앉아 있는)의 힘! 매일 건드려보는 꾸준함! 좋든 나쁘든 계속 써보는 무식함! 


공부의 신, 일명 공신이라 불리는 강성태 씨의 강연을 짧게 본 적이 있다. 어떤 일이든 66일간 반복하면 습관이 되어 목표한 일을 이룰 수 있다는 말에 무릎을 쳤다. 그래. 이거야!

아름다운 문장들을 술술 써내는 문장가도 아니요, 순간순간 번뜩이는 재치와 유머를 구사하는 재간둥이 타입도 아닌 내가 승부를 둘 곳은 '엉덩이 파워' 밖에 없었던 것이다. 


글을 '잘' 쓰고 싶은 갈망은 늘 있었지만 글을 업으로 삼을 실력은 아니라 생각했다. 그럼에도 꼭 글밥을 먹고 싶다는 애매한 희망사항에 애매한 노력을 하며 이도 저도 아닌 일들로 이십 대를 보냈다. 다니던 직장을 퇴사하고 방송작가 아카데미에도 다녀봤지만 낮도 밤도 없이 오직 커피와 심부름과 다크서클과 피부 트러블만 있는 막내 작가 생활 몇 달에 나가떨어졌었더랬다. 

지금 생각하면 아쉽다. 꼭 직업으로만 글쓰기를 할 필요는 없는데... 재미로 쓰다가 본업이 된 사람은 얼마나 많은가. 반대로, 즐거이 여기던 일을 업으로 삼아 확 질려버린 사람들은 또 얼마나 많은가. 다 차치하고 글을 쓰며 얻는 위로와 즐거움은 엄청난 데다 우리는 문자며 메일이며 잘 쓰든 못쓰든 늘 쓰고 산다. 


얼마 전 거주지 소재 공공도서관에서 주관한 성인 독후감 공모에서 입상을 했다. 호들갑을 떨며 보내온 친구들의 선물. 어디 내어놓기 쑥스러운 저 각인이란..ㅎㅎ


그리하여 아이가 깨어있는 낮에는 책으로 위장하여 조신하게 꽂혀있는 노트북(그러지 않으면 수일 내에 고물상 갈 운명)을 꺼내 드는 밤, 노란 등 하나 켜놓고 식탁에 앉는다. 브런치에 접속해 [글쓰기] 버튼을 누르고 하얀 화면을 노려본다. 

골인 지점을 코 앞에 둔 마라토너처럼 처음부터 내달릴 때도 있고, 터덜터덜 동네 산책할 때처럼 손 근육을 풀며 아무 말을 쳐볼 때도 있고, 깜빡이는 커서만 째려보다 조용히 노트북을 닫으며 괜한 패배감을 느낄 때도 있다. 그래도 재미있다. 아이 키우는 엄마가 되어서야 글맛이 뭔지 알 것 같다. 생각 없이 두두 다다 두드린 문장들을 다시 읽다 보면 '아, 내가 이런 사람이었구나' 할 때도 있다. 카페에 앉아 여유롭게 노트북을 펼쳐 이야기를 쓰다가 화장실로 뛰어가 엉엉 울기도 했다. 야쿠르트 아줌마였던 엄마에 대한 글을 쓰던 날이었다. 글을 다 쓰자 지난날의 나는 남은 눈물을 닦고 엷게 웃었다. 


실은 브런치에 글을 쓰게 된 것은 브런치 북 공모 때문이다. 당선되리라곤 기대도 안 했지만 나름 기한에 맞춰 열심히 글을 써내었는데, 이후 수상작들을 읽어보았을 때 그 작아지던 기분이란. 세상에 잘 쓰는 사람, 웃긴 사람, 마음이 아름다운 사람, 경험치가 엄청난 사람은 끝도 없구나... 하며 쓴웃음을 지었던 것 같다. 

그래도 나는 쓴다. 누구 말마따나 '오늘 쓴 사람이 작가'라면 거 까짓 거 나도 해보련다 하는 심정으로 오늘도 나는 [글쓰기] 버튼을 누르고 제목입력란의 가이드 텍스트를 노려본다. 


'제목을 입력하세요.'

매일 제목이 있는 삶을 살고 싶다. 아니, 사실 우리는 모두 그런 삶을 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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