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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잠전문가 Jul 15. 2019

무엇이든 가능하다, 엘리자베스 스트라우트

때마다 읽기 _ 슬픔에 담긴 아름다움을 경험하기

제목이 근사한 이 책은 작가의 전작, <내 이름은 루시 바턴>의 인물들이 다시 이야기를 덧입고 나온 책이다. 

엘리자베스 스트라우트의 책을 덮을 때면 항상 탄식이 절로 나오는데, 무어라 확실히 설명되진 않지만 왠지 알 것만 같은 인생의 묘한 맛들을 작가는 덤덤한 어조로 그러나 아주 섬세한 관찰로 보여준다. 책 속 인물들은 내 마음속에서 울고 웃으며, 피어나고 저물어간다. 


소설 속 인물들은 하나같이 인간적인데 다른 말로 찌질하고 창피하며, 크고 작은 실수로 누군가에게 상처를 주기도, 받기도 한다. 그리고 이야기 속에서 변화하며 성장하기도 한다. 최악이라고 생각되는 인물에게도 연민을 가지게 만드는 이 작가의 놀라운 능력은 특히 노년의 인물들을 묘사하는 것에서 빛을 발한다. 그가 살아오면서 겪은 크고 작은 사건들과 지금의 가치관, 말투와 작은 습관들을 엮어내는 솜씨는 아주 세밀하면서도 단단하다. 



스트라우트의 책을 다 읽고 나면 이런 단어들이 마음을 떠돈다.

유년기, 가족, 수군대는 타인, 보이는 것과 다른 마음, 곤란함, 내밀한 감정, 무엇인지 명명할 수 없는 불쾌함, '그럼에도' 사랑,  그리움, 애틋함... 


인생의 숱한 날들만큼 숱한 종류의 감정을 버무려놓은 이 책은 마치 '감정 가상체험'이라도 되는 양 나를 한순간 우쭐거리게 만들다가도 낯부끄럽게 하고, 벅차오르게 하다가도 깊은 절망의 바닥에 내동댕이 치기도 한다. 이 다채롭고 풍부한 감정의 뷔페를 한 바퀴 돌고 나면 할 수 있는 것은 탄식뿐이다. 

'아...!'

희망의 아! 도 아닌, 절망의 아... 도 아닌, 그저 인생이란...!이랄까. 

딱히 슬픈 건 아닌데 울고 싶어 진달까. 딱히 아름다운 결말은 아닌데 너무 아름답달까. 


삶은 다채로운 빛깔로 흘러간다. 슬프고 아픈 순간도, 환희의 순간도 빠짐없이 아름다운 빛깔이다. 

작가는 모든 이야기를 모아 나름의 순서로 배열한다. 읽는 사람은 단순한 듯 보이는 이 각양각색 삶의 나열이 다채로운 빛으로 흘러가는 것을 목격한다. 


스트라우트의 책은 나이가 들어 다시 볼 때 더 깊이 와 닿을 이야기임에 확신한다. 그리고 다른 차원으로 흥미로울 것이다. 나 역시 세월과 함께 인생의 맛들을 더 다양하고 깊게 경험하게 될 테니 말이다. 


"우리는 레퀴엠을 듣는 것과 같은 이유로 스트라우트의 소설을 읽는다.

슬픔에 담긴 아름다움을 경험하기 위하여."

_ 뉴욕타임스


책 뒷면의 추천사 중 내 마음과 꼭 맞는 것을 발견했다. 책장 한 켠의 스트라우트 컬렉션은 볼 때마다 뿌듯하다. 




[밑줄 긋기]


우리 모두 너나없이 엉망이야. 앤젤리나, 우리가 아무리 노력해도 우리 사랑은 불완전해. 앤젤리나, 하지만 그래도 괜찮아. 


“찰리 매콜리,” 패티가 말했다.

“요즘 어딜 가나 만나네요. 어떻게 지내세요?”

살아내는 중이죠.” 그는 문으로 걸어가던 길이었다. 


하지만 창문 왼쪽으로 보이는 단풍나무 꼭대기에는 나뭇가지들이 분홍색이 감도는 노란 잎 두 장을 미안한 듯 조심스럽게 내밀고 있었다. 그것들은 어떻게 11월까지 붙어 있었을까? 찬란한 하루의 마지막 햇살이 나무 바로 뒤에서 비치고 있었다. 탁 트인 하늘을 배경으로 저무는 해의 다채로운 색깔이 위를 향해 부채처럼 펼쳐졌다. 


어느 날 제이미는 이런저런 책들을 살펴보다가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깨달았다. 가혹하게도, 모든 것이 들어맞았다. 아버지가 자꾸 짜증을 부리는 것, 갑자기 애니가 어디 있는지 묻고 또 묻는 것이 그랬다. “그 애는 어디 있니? 또 숲 속에 갔어?” 그 전부가 제이미의 가슴속으로, 돌멩이가 우물의 어둠 속으로 떨어지듯 고요하게 떨어졌다. 


그리고 자책한다는 것, 음, 자책하는 모습을 보일 수 있다는 것 – 다른 사람들을 아프게 한 일에 대해 미안해할 수 있다는 것 – 그것이 우리를 계속 인간이게 해 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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