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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잠전문가 Jul 16. 2019

몸치의 처음에 대하여

왕초보 수영 일기1

"한치는 좋겠다."

"왜?"

"수영 잘해서"


한치회를 먹고 나오던 길이었다. 

수조 속 한치들은 투명한 몸을 뽐내며 하늘하늘 유영하고 있었다. 

남편은 그래 봤자 잘게 썰려 회가 될 운명인데 뭐가 부럽냐고 타박을 주었지만 나로서는 내일 또 허우적거리며 레일 뒷사람들에게 교통체증을 일으킬 상상을 하니 가슴 밑이 갑갑... 해져오고야 마는 것이었다. 


사실 수영을 배운 지는 3 일 밖에 안되었다. (한치 미안)

3 일 배우고 아이가 아파 집에서 돌보느라 일주일을 쉬었다. 첫 주에 한 시간 수영을 하고 나오면 하체가 사라진듯한 신체 무용감(?)에  겨우겨우 집에 와 두 시간씩 드러누워 쉬다가 잠들곤 했다. 수영 외엔 집안일도 어떤 다른 일도 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으니 개털 체력도 이런 개털 체력이 없다. 

수영을 좀 배웠던 남편은 호흡이라던가 팔 동작 발차기 등을 말로 코치해주었으나, 일단 물에 들어가면 니가 이기나 내가 이기나 쓸데없이 힘을 주고 소리 없는 파이트(라고 쓰고 허우적이라고 읽는다)를 해재끼니 나에겐 물에 뜨는 것 자체가 도전인 것이다. 


 근데 한치 너 맛있더라. 미안... (출처: 어업in수산)


나는 무언가를 배울 때 어깨와 목에 힘이 잔뜩 들어간다. 처음 도로연수를 받은 날엔 몸살이 나 끙끙 앓았고, 수영을 시작한 날엔 어깨와 온 팔 근육이 뭉쳐 욱신거렸다. 힘을 빼라고? 나도 머리론 알지. 하지만 지금도 운전 중 은근한 턴을 은근하게 하지 못한 채 힘들어간 핸들을 각기로 잘게 쪼개 돌릴 뿐이다. 

몸 쓰는 게 생각만큼 되는 사람이 있고 그렇지 못한 사람이 있다. 당연 후자인 나는 전자인 사람들이 부럽다. 우연히 테니스 경기 시상식을 보다가 세레나 윌리엄스라는 선수를 보고 남편이 그녀에 대한 이런저런 이야기를 들려줬다. 우승 전적이 무지 많은, 사기 캐릭터라고. 피지컬을 보라며. 


"다음 생에 어떤 사람으로 태어나고 싶냐고 묻는다면 '내 몸을 좀 내 마음대로 쓸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어."라는 나의 말에 남편은 어디 가서 세레나 윌리엄스로 태어나고 싶다고 얘기해보라며 박장대소를 했다. 

그래... 160cm 미만의 작은 체구, 좀비 체력 신체 활용력 바닥인 내 모습과 세레나 윌리엄스의 시각적 대비는 아주 극적이긴 하구나. 호루라기 신호가 울리자마자 수직 낙하하는, 아무리 달려도 인상을 쓰고 몸부림을 쳐봐도 체력장 5급이라는 낙인을 받고야 마는 몸치는 그렇게 자유롭게 의지대로 쓰이는(?) 몸뚱이에 대한 소망을 반 칠십이 되어서도 버릴 수가 없다. 




한치회에 쏘맥을 말아먹고 집에 와서 갑자기 봉태규의 '처음 보는 나'가 생각나 유튜브로 들으며 열창한다. 풋사랑의 떨림이 그대로 느껴지는, 투명하고 순수한 느낌이 일품인 노래다.


"말을 하려 해도~ 막 뒤엉키는 준비한 고백은~ 

한 번도 보지 못한 답답한 내 모스읍~"





막 뒤엉키는 모습은 이미 많이 봤고...

한 번도 보지 못한 안 답답한 내 모습을 기대한다. 내일 수영 파이팅. 중문동 맥주병 파이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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