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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잠전문가 Jul 18. 2019

물침대라 생각하고 누우세요~

왕초보 수영 일기 2

수영 초급반 2 주째다.

이번에 아주 수영을 처음 하는 몇몇을 위해 강사님이 자주 하시는 말이 있다.

"물침대라 생각하고 누우세요~"

예의 어리숙한 초심자용 미소를 띠며 고개를 끄덕이지만 막상 누울(?) 차례가 되면 어깨와 목은 이미 석고상이 되어있다. 긴장해 굳어버린 이목구비까지 더해지면 어디서 많이 본 아그리파가 수영장에...


어찌 됐든 몸은 잘 안 따라주지만 물침대라 생각하라는 말이 자꾸만 맴돈다.

세상엔 막상 해보면 별 것 아닌 일들이 많다. (아니, 많단다.)

다섯 살 우리 딸이 못하는 것들로 예를 들어보자면 손가락 튕겨 박자 맞추기, 풍선껌 불기, 색종이 반듯하게 접기 등이 있다. 여섯 살이 되고 일곱 살이 되면 자연스레 점점 더 잘하게 될 일들이다. 엄마처럼 안 된다며 못하는 자신을 아쉬워하고 조급해하는 아이를 보자면 귀엽기도 하고 별거 아니라며, 크면 다 할 수 있다고 이야기해준다. 하지만 나 역시 '잘하고 싶지만 아직 잘 못하는 일'을 떠올릴 때면 아이 못지않게 조급해하고 아쉬워한다.


누으라는데 왜 눕질 못하니 (출처: 서울앤)


인생에도 관성이라는 게 있어 계속 시도해야 변한다는 것을 알면서도 자꾸만 쉽게 가려는, 금방 놓아버리려는 나를 본다. 계속 연습한다면 매운 코를 붙잡으며 토할 때까지 기침하게 만드는 이 수영장도 언젠가 물침대려니 할 날이 오겠지.


수영도 그렇지만 내가 하고 싶은 것들, 시작도 하기 전에 두려움에 잠식되어버리는 것들을 앞두고 '물침대'를 떠올려보려 한다. 대하기 어려운 사람을 앞두고, 커서만 깜빡이는 하얀 새문서를 마주하고, 길고 짧은 목표들을 잡으며 "그깟꺼 물침대!!!" 해버리는 것이다. '편하게 생각하자' 정도의 연상 키워드랄까. 아무래도 외치고 나면 엄두(명사, 주로 부정적인 말과 쓰임, 감히 무엇을 하려는 마음)라는 녀석이 삼 분의 일이라도 나지 않을까


오늘도 몹시 허우적대고 왔지만 수영복을 고이 널어두며 외쳐본다.

"물침대!!!"








아니, 근데 이거 물침대같이 눕는 거 경험이나 해보고 가져야 할 애티튜드 아니야?

너무 빨리 갔네. 호흡과 손과 다리가 모두 급한 오늘의 나처럼.

아 몰라.

물침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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