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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잠전문가 Jul 22. 2019

우리는 때로 너무 빠르다

 

어느 토크 프로그램에서 MC들이 연애한 지 이틀 되었다는 청년에게 '썸과 연애의 차이'를 물어보았다. 

"메신저 답장이 5 분 안에 오면 썸, 30초 안에 오면 사귀는 거." 

수줍은 비기너는 생각보다 명료한 답을 내놓았다. 농담 섞어 한 말이겠지만 요즘 사람들의 '반응 속도'를 어느 정도 가늠케 하는 답이었다. 오늘 우리는 너무나 빠르게 소식을 주고받으며 쉴 새 없는 질문과 답장을 한다. 




지난봄, 친구에게 아픈 일이 있었다. 제주에서 서울로 얼굴을 보러 가는 것, 가서 안고 같이 울었던 것 외에는 어떤 위로의 표현도 할 수 없었다. 집에 돌아온 후 서랍을 뒤져 구겨지고 바랜 편지지를 찾았다. 한 문장도 제대로 쓸 수 없는 편지를 끄적이다 구겨버렸다. 메신저로 보낼만한 좋은 글이나 위로가 될만한 것들을 찾기도 했지만 일회적인 것들이었다. 얼굴을 마주하고 이야기를 나눌 수 있다면 좋았을 텐데 서로 너무 멀리 있었다. 힘들어할 친구에게 당장 가닿을 말도, 글도, 표정도 없으니 조금은 초조한 마음이 일었다.




"우리는 가슴 아픈 사람들에게 너무 빠른 대답을 줘요. 정답을 주려고 해요. 뻔한 답을 하려고 해요." 

얼마 전 들은 짧은 이야기가 머리를 떠나지 않는다. 

그렇다. 

우리는 때로 너무 빠르다. 

마음속에 며칠, 아니 몇 분도 담지 않고서 뭐라도 해야 할 것 같은 상황에 던지는 말들은 딱 그만큼인 경우가 많다. 가볍게 부서진다. 어떨 땐 너무 정답이라 상처가 된다. 안일하며 전형적이다.


누군가가 아파 우는 모습을 지켜보는 일은 참 힘들지만, 특히 사랑하는 사람이 애쓰며 힘들어하는 모습을 가만히 바라보는 것은 참 애가 타는 일이지만 그래도 가끔은 의식적으로 느려질 필요가 있다. 차를 우리듯 진심으로 천천히 우려내야 할 말들이 있다. 



친구가 한 달 후 제주에 왔다. 

역시나 서투른 나는 별다른 말은 못 하고 곧이곧대로 너와 너의 가족들 힘들지 않느냐 물었다. 친구는 잠시 울었고 나는 그의 등만 빙글빙글 문지를 뿐이었지만 우리 아이들은 신이 나 소리를 질렀고 바다는 기세 좋은 햇빛을 받으며 쉴 새 없이 반짝였다. 한낮의 바다여서 다행이었다. 


"나는 힘내서 잘 살 거야." 

돌아간 친구가 문자를 보내왔다. 

그래. 섣불리 힘내라는 말은 할 수 없지만, 들썩이는 등을 열심히 문지를 줄 아는 바보 같은 친구가 여기 있어. 나는 은근하게 우려낸 차처럼 오래오래 너를 생각할게. 

당장에 하고 싶은 말을 꿀꺽 삼키고 느릿느릿 친구를 떠올린다. 이런 시간이 나에게 위안이 되듯 친구에게도 그러하기를 바라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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