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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잠전문가 Aug 26. 2019

재미가 최고

놀면 뭐하냐고?  놀면 기분 째지제. 행복 하제~!

불토.

애엄마에게 불토라는 단어는 생경하다. 하지만 나의 지난 토요일은 그야말로 불토였다.


요즘 내가 수영을 배우고 있는 집 앞 국민체육센터에서는 두 달에 한 번 온오프라인으로 수강 접수를 받는데 말 그대로 피 터지는 접수 경쟁이 벌어진다. 각종 수영대회가 열릴 정도로 규모가 있는 수영장이기도 하고, 수강료 없이 한 달 사용료 3 만원만 내면 되니 열띤 경쟁이 있을 수밖에.


온라인 접수 날 아침, 아이 등원도 미루고 서버가 마비된 온라인 접수 사이트를 째려보며 달달 떨리는 손으로 새로고침을 눌러봤지만 처참히 실패했다. 이제 남은 방법은 현장 접수 뿐이었다.

현장 접수는 아침 6시부터인데, 대기가 동트기 전부터 시작된다는 이야기를 익히 들었기에 그냥 포기하고 배운 것을 복습하며 자유수영이나 할까 하다가도 자꾸만 아쉬운 마음이 드는 것이었다. 무엇보다 처음엔 물에 뜨지도 못해 부력 도구를 소중하게 끌어안고 주춤거리던 내가 단 몇 미터라도 홀가분히 나아갈 수 있다는 것에 굉장한 짜릿함을 느끼던 터라 이대로 수영강습을 멈추는 것이 더 아쉽게만 느껴졌다.


살면서 운동이라면 의무적으로 하던 것(다이어트 또는 체력 유지) 말고는 당최 재미로 하는 종목은 단 하나도 없었다. 몸치에 정신력 바닥이라 운동은 숨쉬기와 걷기(산책) 말고는 도무지 친해지지가 않았던 나였지만 수영은 달랐다. 집에 와서 유튜브로 다시 자세나 호흡법 따위를 찾아보았고 괜히 식탁에 앉아있다가도 난데 없이 음파음파를 하며 콧김을 뿜었던 것이다.


그렇게 현장접수 전 날까지 긴가민가하고 있던 상황이었는데 밤 9시부터 줄 서기 시작했다는 회원님들의 카톡 알림에 나갈 채비를 했다.

카톡! "빨리 오삼. 나 포함 세 명입니다."

카톡 카톡! "네 명입니다. 실시간 알림 합니다."


분명 저녁 먹을 때까지도 줄 서서까지 현장접수를 할 생각은 없었는데... 나는 갑자기 뭐에 홀린 듯 캠핑의자와 노트북, 주전부리를 챙겨 체육관으로 향했다. 남편은 깜깜한 밤 에쵸티 팬클럽처럼 줄지어 앉아 있는 대기자들과 나를 번갈아 쳐다보며 황당한 웃음을 지으며 이어폰과 물을 전해주고 갔다. 이런 나의 모습은 처음이라며.


그렇다. 나는 꽤나 열정이 없는 사람. 멘탈이 약하고 포기가 빠른 사람.

나도 이런 내 모습이 황당했다. 심지어 재미까지 있는 것 아닌가. 같이 수영 배우는 언니와 마치 고시생 같은 느낌으로 편의점에서 컵라면을 먹으며 이렇게 공부했으면 서울대에 갔겠다고 키득거렸다. 줄을 서서 수다떨다가도 "아니 진짜 우리 이럴 일?" 하며 박장대소했다. 접수를 담당하는 체육관 직원(아마도 공무원)은 캠핑 의자에 앉아, 돗자리에 누워 노숙하는 우리들을 세상 한심하게 둘러보았지만. 어쨌거나 몹시 피곤하고도 즐거운 밤이었다.





얼마 전 즐겨보는 강연 프로그램 <세상을 바꾸는 시간 15분>에서 인상 깊은 강연을 봤다. <재미의 본질> 저자이자 경성대 교수인 김선진 교수의 강연이었는데 재미와 행복의 관계에 관한 흥미로운 이야기를 전해주었다.


"행복은 다양한 요소로 이룰 수 있는데 그중 하나가 재미다. 달리 말하면 행복해도 재미없을 수 있지만 재미있으면 반드시 행복해진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행복해지는 가장 확실한 방법은 재미를 찾는 것이다. 재미를 찾는 방법은 간단하다. 끌리는 일을 해보고 좋으면 계속해라. 계속했는데 재미없다면 다시 끌리는 일을 찾으면 된다." 그의 명쾌하고도 기분 좋은 강연은 "재미는 공짜"라는 상큼 터지는 덧붙임으로 끝났다.


요즘 들어 시간이 부족하다는 생각이 든다. 집안일을 하다가도, 길을 걷다가도 오늘 내게 주어진 시간을 몇 번이고 체크해본다. 건강한 정신과 육체로 이 세상에 숨어있는 재미있는 일을 마구마구 해보고 싶다는 생각, 재미있는 일을 위해 비워둘 시간은 막상 많지 않다는 생각에 자꾸만 조급해진다. 서핑도, 스쿠버다이빙도 하고 싶고 짧은 소설을 써보고도 싶다. 위트 있고 사랑스러운 아이들 책도 만들어보고 싶다.


마리텔에서 윤후(가수 윤민수의 아들이자 귀염둥이)가 꿈이 없다고 말하자 인기 크리에이터 도티는 "꿈이 없는 게 이상하지 않다. 벌써부터 확고한 꿈이 있으면 세상을 좁게 보지 않을까 싶다"라고 말했다.

우리는 종종 실체 없이 그저 커다란 것(이를테면 꿈이나 행복 같은 것들) 바라며, 그것을 어찌 가질까 어떻게 도달할까 막연해한다. 좋은 것, 재미있는 것, 자꾸만 하고 싶은 것 그런 작은 조각들로도 충분한데 말이다.


그렇다. 김선진 교수 말처럼 재미는 공짜다. 심지어 시간도 공짜다.

이제 뼛속 깊이 붙어있는 게으름과 자기 합리화만 벗어버리면 된다. 덥고 습한 여름의 등을 떠밀며 신선한 가을바람이 불어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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