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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잠전문가 Sep 26. 2019

나아진다는 것의 짜릿함

사실 그냥 흔한 수영 찬양기

"오, 자유형 이제 좀 되시네요!"

35미터를 헐떡거리며 들어오자 강사님이 말씀하셨다. 표정도 좀 나아졌다고.

속으로는 '어머나 세상에! 정말요?!'였지만 격해진 들숨과 날숨으로 겨우 수줍은 미소 정도 지어 보일 수 있었다.


킥판을 아래로 잡고 뒤로 눕는 것조차 무서워 소중히 안고 배영 발차기를 하던 시절이 있었다. 불과 3 개월 전이지만 몹시 아득한 지난날 같다. 조개를 들고 물에 떠 있는 보노보노처럼 누워 파닥이던 시절... (보노보노는 귀엽기라도 하지.)

그렇게 킥판을 생명줄 잡듯 간절히 붙들고 하던 시절을 지나고 센터에서 수도세 청구할 것 같던 물먹는 하마 시절을 지나, 한가로운 수영장에 나 홀로 재난 영화 찍던 시절도 지나... 드디어 '좀 되시네요'의 막이 열린 것이다. 따하!


그래, 오늘은 뭔가 '너낌'이 왔다.

뭔가 알 것 같은 너낌. 아하! 하고 머리에 종소리가 울리는 것 같은 신성한 너낌.

부드러운 물속에서 내 몸이 자유롭게 느껴졌달까? 강사님은 나에게 제발 물이랑 싸우지 말라고 부탁하시곤 했는데 드디어 물과의 '한판 승부'라거나 '너 죽고 나 죽고'의 느낌을 벗어날 수 있었던 것이다.

초급반 열흘차였던가. 한치회를 먹고 나오는 길에 수족관 안에서 유영하던 한치들에게 부러움을 토하던 날이 떠올랐다. 두려움 70과 설렘 30으로 두근대는 심장을 부여잡으며 수영장으로 향했던 날들이었다.

쪼렙 초급반 3개월 차가 '유영'이라는 단어를 감히 꺼내기는 남부끄럽지만, 아주 잠깐이라도 그 부드러운 물살과 자연스러운 팔다리를 느껴본 나의 영혼에 락스 물 건배를 청해 본다.


킥판이 더없이 소중했던 나날들.jpg


예전에 친구들과 놀러 간 남한강 어드메에서 바나나보트를 탔었다. 물에 빠지자마자 구명조끼를 입고도 미친 여자처럼 허우적거리며 친구 머리를 막 눌렀던 적이 있었다. 상당한 물 공포증이었다. (물론 물은 지금도 무섭다.)  

안타깝게도 그때 미색 린넨 반바지 속에 야광이랄까 형광 팬티를 입고 있었어서(도대체 왜!!) 젖은 바지 속의 팬티가 만천하에 공개되었고, 그 사건 이후로 친구는 물귀신 트라우마에 시달리며 나를 '공포의 야(광팬)티'라고 부른다.

요즘 내가 SNS에 오리발까지 싸들고 수영 다니는 것을 본 그녀는 눈을 씻으며 내가 아는 야티 맞냐고 댓글을 달았다. 심각한 저질체력에 유리멘탈, 최악의 지구력을 자랑하는터라 운동은 살면서 친해질 수 없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매일 수영 동영상을 찾아보며 금요일이면 오리발을 들고 파워 질주를 할 생각에 설레어하는 내가 나도 새롭다.


오랜만에 배움의 짜릿함을 맛본다.

느는 것, 나아진다는 것에 대한 짜릿함. 그것을 마지막으로 느껴본 것은 언제였을까?

나이를 먹을수록 더 부지런히 무언가를 배워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삶의 즐거움을 위해서. '어제보다 나은 나'를 느끼는 것이 이렇게나 짜릿하다. 아니면, 그냥 수영이 짜릿한 건가.

(다음 달에 수태기니 뭐니 하는 글을 쓰지 않기를 바랄 뿐이다.)






자, 다음 짜릿함의 주제는 뭘까? 운전?

나의 짜릿한 성취감 이전에 우리 남편 심장이 아주 짜릿해질 테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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