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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잠전문가 Sep 30. 2019

응답하라 응가여!

아이의 변비, 애타는 애미 마음 (랜선 X냄새 주의)

"괴로워 정말..!"

아이는 변기에 앉아 힘을 주다가 손으로 얼굴을 감싸고 엉엉 울었다. 아이는 진심으로 괴로워하고 있었다. 마음이 아팠다. 저 쪼그만 뱃속이 얼마나 부대낄까. 그렇다. 나는 아이의 힘겨운 응가에도 마음이 무너지는 엄마다.

 

변비에 걸린 것이다. 

우리 딸의 대장님 소장님은 굉장히 능력 있고 성실하신 분들인데 이게 어찌 된 일인지 도통 모르겠다. 추석 전에 배탈이 나더니, 장이 안 좋아졌는지 인풋 대비 아웃풋이 2 주째 몹시 힘겹다. 1일 1똥을 하던 아이가 며칠이 지나도록 배출을 못하니 가스가 차서 가슴과 옆구리까지 아픈 지경에 다다랐다. 그 좋아하는 미술놀이를 하다가도, 자기 전 블럭놀이를 하다가도 "나 배 아파서 안 할래."하고 시무룩하게 소파에 눕는다. 

평소 같으면 "저거 저거 또 잘 시간에 블럭으로 만리장성 공사 들어가지."하고 혀를 찰 타이밍인데, 블럭을 꺼내다가도 시름시름 누워 앓는 아이가 안쓰러워 마음이 무거워진다.


"하나 둘 셋! 으~~~으응~~"

"다시 한번 더 으~~~으응~~"

아이 손을 꼭 잡고 변기 앞에 앉아 같이 힘을 주었다. 

오만상을 쓰고 내 똥꼬가 네 똥꼬 인양. 똥을 대신 싸주는 심정으로 힘을 줘본다. 

아 나오라는 아이 뱃속 응가는 안 나오고 나만 뿡뿡 신호가 온다. 이 상황에 똥 싸는 것도 미안한 애미 마음 아실는지...? (닥치고 냄새나는 이야기 그만했으면 하신다면 살포시 뒤로가기를 눌러주세요. 죄송합니다. 흑흑)


변비는 내가 해결해 줄 수 없는 일이다. 괴롭지만 아이도 어찌 할 수 없는 일. 

약을 먹인다거나 야채나 과일주스를 만들어준다거나 배를 문질러주는 것, 그리고 소식을 기다리는 것뿐이다. 


 이것들아 담합하지 마! 똘똘 뭉치지 마!! 바리케이드 치지 마!!! 제발 나와!! ㅠㅠ (출처: 매일아이)



언젠가 내 마음대로 안 되는 일이 수없이 많다는 것을 깨달으며 어른이 된다는 생각을 한 적이 있다. 앞으로 수많은 '마음대로 안 되는 일' 앞에 서 있는 아이를 볼 때마다 얼마나 애가 닳을까. 우리 엄마도 날 보며 그랬을까?

친구관계, 이성관계, 학업과 진로, 몸과 마음의 건강... 

아이가 괴롭다고 울 때마다 나는 늘 이런 마음일 것이다. 책가방을 메고 털레털레 풀 죽은 모습으로 들어올 때, 방 안에서 훌쩍거리는 소리가 들릴 때, 기대하고 바라던 일에 좌절을 맛보았을 때... 앞으로도 괴로운 일 앞에 있는 아이를 볼 때마다 손 꼭 잡고 같이 힘주고 싶다. 그것밖에 할 수 있는 일은 없지만 그것으로 네 속이 조금이라도 편해지기를 바라면서...


아이는 오늘도 더부룩한 배를 안고 잠들었고, 애미만 변비에서 이어지는 깊은 상념에 홀로 깨어 있다. 고요한 가을밤 하늘에 쾌변의 염원을 담아 외쳐본다.  

응답하라 응가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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