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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잠전문가 Oct 09. 2019

저마다 특별한 아이들

"약 안 먹으면 어떻게 해야 돼?"


돌쟁이 초보 엄마인 A가 물었다. 

"그.. 글쎄. 우리 딸은 약 없어서 못 먹는데... 애기 약 달콤한데 잘 안 먹어?"

도움되지 않는 답만 늘어놓았다. 

우리 딸은 가끔 열린 찬장 구석에서 해열제라도 발견한 날엔 "저거 저 포도맛 약 지금 먹으면 안 돼? 나 열 안나?" 하며 온도계를 가져오는 먹보 타입이라 한 번도 고민해본 적 없는 문제였다. 


다섯 살 딸을 둔 또 다른 친구 B는 '아기쯤은 발로도 봐줄 수 있다'며 호언장담을 해놓고, A의 아기가 울자 "우리 딸은 아기 때 잘 안 울었어서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다."는 말도 안 되는 변명을 늘어놓으며 땀을 한 바가지 흘렸다고 한다.


B의 딸과 우리 딸은 생일이 한 달 차이로 태어났는데, B는 아이가 굉장한 에너자이저 타입이라 그것 때문에 힘들어한 적이 많았다. 반대로 나는 아이가 얌전하긴 했지만 경계심이 많고 예민해 분리불안과 잦은 울음 때문에 힘들어했었다. '네 딸은 할머니랑도 잘 있고 활달해서 편하겠다', '그러는 네 딸이야말로 얌전해서 데리고 유럽여행도 가겠다' 하며 서로가 가지지 못한 점을 부러워하기도 했다. 

우리는 이렇게 저마다 다른 아이들을 키우며 우왕좌왕하고 있었다.




아직 나의 아이는 다섯 살 꼬맹이로, 어리다면 어린 나이다. 하지만 조금 지나고 보니 그때 했던 고민들은 아이들의 아쉬운 점, 부족한 점이 아니라 다르고 특별한 개성이었음을 새삼 깨닫게 된다. 내 아이와의 생활이 익숙해지면서 멋지고 훌륭한 부분에는 점점 더 무뎌지고 부족한 부분에만 아쉬워하지는 않았을까. 문득 정체모를 미안함이 불쑥 고개를 든다.


자기 주관이 확실한 B의 아기, 씩씩하고 쾌활한 A의 아이, 차분하고 침착한 나의 아이.

잘못된 아이는 없다. 특별한 아이가 있을 뿐.


가시가 있지만 아름다운 꽃, 바람에 잘 떨어지지만 날리는 모습이 황홀한 꽃, 향은 좋지만 작아서 잘 안 보이는 꽃... 우리는 각기 다른 꽃들을 보며 그 특징을 '단점'이라고 말하지 않는다. 자연의 모든 것은 저마다 다르고 그래서 아름답다. 


오늘 우연히 포털 사이트의 육아 채널에서 [장점 안경으로 바꿔 쓰고 보기]라는 제목의 영상을 보았다. 대충 적어보자면 이런 내용이었다. 

"뭔가가 잘 안 보일 때 우리는 안경을 쓴다. 우리 아이가 뭘 잘하는지 모르겠어요~, 장점이 안 보여요~ 하는 부모들이 많은데 그것은 안경을 바꿔 써야 할 타이밍이다. 장점의 눈으로 아이를 바라볼 때 아이를 재발견할 수 있다."

뻔하다면 뻔한 내용이었지만 저마다의 개성으로 반짝이는 아이들을 아쉬운 아이, 부족한 아이로 만들지 않으려면 의식적으로 해야 할 노력임에는 분명한 것 같다. 


이 망부석이 얼마나 특별한 망부석인지 깨닫는데 꽤 오래 걸렸다. 


우리 딸은 어릴 때부터 어디 데려다 놓으면 신나게 놀기는커녕, 사람들만 물끄러미 바라보거나 조용히 구석에 망부석처럼 앉아 있어서 속이 터졌(?)던 적이 많다. 하지만 지금은 안다. 아이가 그렇게 조용히 바라본 장면은 놀랍도록 자세히 관찰하고 기억한다는 것을. 그림으로도 아주 디테일하게 표현해내서 깜짝 놀랄 때가 많다. 이제는 멍 때리는 것을 적극 장려하며 옆에 조용히 앉아 입에 뭐라도 넣어주며 같이 바라본다. 사람들의 말, 팔과 다리의 움직임, 바람의 결... 

아이의 반짝이는 눈 안에 세상이 충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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