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국 와버렸다.. 나 혼자..
올해 2월이었나… 한 항공사에서 특가가 떴다. 오전 10시에 시작하는 특가는 당연히 치열한 경쟁 속에서 접속도 못해보고 오전이 지났다. 친한 사람들과 점심을 먹고 혹시나? 하고 접속을 해봤는데, 어머 접속이 된다. 뒤로 가기 화살표를 누르기에는 이미 늦었다. 눌러다간 다시는 이 페이지로 돌아올 수 없을 것 같았다. 여행지 어디로 하지? 날짜는… 6월 말이면 휴가 쓸 수 있겠지? 하며 6월 마지막 주에 덜컥 어제 본 유튜브 여행지인 ‘보홀’로 잡아버렸다. 어머.. 어머.. 하며 하나 둘 페이지가 넘어가더니 결제까지 되었다. 총 결제금액 144,200원. 와.. 이게 되네? 여행을 좋아하고 자주 떠나는 나지만 최저가나 이리저리 찾아다닐 줄 알았지 이런 특가를 정말 성공해 보기는 처음이다. (공항세를 뺀 편도 금액은 단돈 2만 원이었다.)
결제를 성공하니 걱정이 된다. 바다가 좋고 스노클링 등 체험할 곳이 많아 혼자가기는 정말 재미없는 곳인데 누굴 꼬실까나… 몇 그룹이 레이더망에 들어왔다. 하지만 너무 먼(?) 미래라 확답은 들을 수 없었고, 그때 가서 어떻게든 되겠지 싶었다.
필리핀은 한 번도 가본 적이 없다. 뒤늦게 맛을 들인 동남아는 태국이면 충분히 족했고, 위험하다고 하고 음식도 특이할 일 없는 필리핀은 내 여행 대상지였던 적이 한 번도 없다. 그러다 우연히 내가 좋아하는 유튜버의 콘텐츠를 보았고, 보홀의 말도 안 되는 바다를 보았다. 나도 도시 여행 말고 이런 곳 한번 가봐야지.. 하며 생각했던 게 이렇게 된 것이다. 휴양지에서 정말 휴식만 하고 놀아본 건 여행 자주 가는 친구들과 코로나 전에 호이안의 리조트였는데 그때는 우리 모두 수영에 빠져있었고, 시간 맞추기도 어렵지 않았던 때였다.
이 여행의 티켓팅을 하고도 대만과 일본, 그리고 이 여행 이후의 티켓팅을 두 건이나 하면서도 이 여행 준비는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리조트는 어디로 해야 하는지, 누구랑 가야 하는지 트레블월렛 카드는 잘 되는지, 교통편은 어떠한지 알아보지도 않고 결정을 내리지 못했다. 가장 유력한 여행 파트너는 그 사이에 임신을 하게 ㄱ되었고, 다른 친구들과도 일정 맞추기가 어려웠다. 엄마와 이모를 모시고 갈까 했는데 이모가 일정이 안되었고, 아빠도 안된단다. 아, 진짜 혼자가…? 15만 원도 안 되는 돈인데 그냥 포기하고 다른 여행지를 갈까도 생각했다.
그러다가 친한 회사 후배가 딜(?)을 해왔다. 하지만 전 일정에는 참여할 수 없으니 중간에 자기가 합류해도 되냐는 것이었다. 교통편이 편리한 대도시도 아니고 대중교통 없이 어디 이동할 때마다 툭툭아저씨와 실랑이를 해야 하는 곳에 2박 3일 혼자라… 고민이 되었지만 방법이 없었다. 여행 내내 혼자인 것보다는 나으리라. 그리고 그 시간 아무것도 하지 않고 휴식을 취하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았다.
본격적으로 숙소를 검색했다. 한국인들이 무. 조. 건 가는 곳은 다 이유가 있다. 하지만 그런 곳에 오히려 혼자 있게 되는 건 더 싫을 것 같았다. 그러다 미티리조트라는 곳을 찾았는데, 뷰가 천국인가 싶을 정도다. 혼자 2박을 하기에 조금 부담스럽기는 했지만 어디 나가지 않아도 숙소에서 마사지, 식사가 다 해결되고 무엇보다 바다를 바라보는 수영장이 무척이나 매력적인 곳이었다. 보홀에 가면 꼭 해야 되는 체험들이 있는데 혼자 가기는 싫었다. 그런데 여기는 바로 앞바다에서 적당한 스노클링도 할 수 있다고 하니 이만한 곳이 없었다. 최저가를 찾아 1박에 18만 원에 2박을 예약했다.
문제는 다른 곳에 있었다. 나는 평소에도 짐을 많이 싸들고 다니는 편인데 이 티켓은 한 번 제대로 싸게 가보자며 수화물 없이 예약해 버렸다. 이 항공사에 골드레벨이 무료 수화물이 15kg 나오기도 해서 여차저차하면 최저가를 제대로 이용할 수 있을 것 같았다. 혹시 몰라 항공사에 문의를 넣었는데 글쎄 무료 수화물이 10kg로 바뀌었단다. 이건 나에게 불가능한 것이다. 일행이 있으면 일행에게 부탁할 수도 있지만 온전히 나 혼자 해결해야 되는 문제가 되었다. 우선 큰 파우치를 반으로 줄이고, 이런 날을 위해 샀던 고프로는 과감히 포기했다. (투어에서 잘 찍어준다고도 했고, 아이폰으로도 충분할 것 같았다.) 옷도 버릴까 말까 고민했던 옷 위주로 보홀에서 짐을 더 줄이고 오는 방향으로 했다. 식염수, 비타민 등 각종 약들, 렌즈, 마스크처럼 하루하루 지날수록 줄어드는 짐들도 잘 넣었다. 알로에는 유통기한이 지났길래 이 번에 다 쓰고 버리고 올 생각으로 큰 거 한통을 담았다.
공항에서 무게 재는 저울이 있는 걸 처음 알았다. 무게가 넘으면 바로 빼서 가방에 넣으려고 파우치를 제일 위쪽에 넣어놨다. 내 차례. 두근두근 10.5kg!!! 성공이다. 이게 뭐라고. 추가 수화물 비용 6만 원에 내 통장에 바로 꽂혀버리는 것이 짜릿했다. 그리고는 부지런히 입장해서 면세품을 찾고(스노클링용 마스크를 일부러 면세에서 사는 나의 지혜) 라운지에서 간단히 식사를 하며 가방을 다시 쌌다.
여유라기에도 촉박했다기에도 애매하게 적당히 시간을 보내고 비행기를 탔다. 옆에 5살 정도 되어 보이는 꼬마와 아빠가 앉았다. 그런데 내 옆에 세 자리의 승객들이 끝까지 나타나지 않는다. 아침 비행기라 늦잠을 잔 걸까? 큰 싸움이라도 나서 여행을 포기한 걸까? 내가 어제 좌석선정할 때는 분명히 꽉 차있었는데 무슨 일이람… (너무 좋잖아?) 여러가지 상상 속에서 비행기가 이륙하고 안전벨트 사인이 꺼졌다. 내 옆에 부자에게 내가 자리를 옮길 거니까 이 자리까지 편하게 쓰시라 말해줬다. 귀여운 아이와 오는 동안 대화를 할 수 없었다는 게 유일한 아쉬움이었고, 아주 편하게 왔다. 사실 최근에 디스크가 안 좋아서 좁은 자리 장시간 비행기가 걱정이 되었었다. 급하게 주사와 도수치료를 받고 오긴 했지만 큰 호전은 없었다. 도수 치료 선생님이 비행기에서 골반을 풀어주는 스트레칭을 중간중간 하라고 했는데 이 좁은 데서 어떻게 해요.. 차라리 진통제를 먹고 타지..라고 말은 하지 못했지만ㅋㅋ 내심 걱정이 되었었다. 여행을 포기해 준(?) 옆좌석 사람들 덕분에 오는 내내 틈틈이 스트레칭도 해주면서 어려움 없이 도착했다. 공항 되게 작다. 안녕? 보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