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가 그곳인가…?
공항은 정말 작았다. 비교하자면, 우리나라 서울역보다 작았다. 내리자마자 바로 입국 수속을 하고 짐을 기다리는데 아무리 기다려도 내 짐이 나오지 않는다. 한 번도 이런 적이 없었는데 정말 오지 말았어야 했나… 혹시 안 왔으면 다음 비행기라도 같이 보내주겠지.. 지금 내 배낭에 뭐 뭐 있지..? 그 뒤로도 여러 가지 다른 생각을 하고도 남을 만큼 내 짐은 나오지 않았다. 일부러 기억하고 있는 핑크색 캐리어가 한 바퀴, 두 바퀴를 돌 때도 내 짐은 나오지 않았다. 이러다 정말 안나오는거 아냐…? 하는 순간 고개를 돌리니 저 쪽에 덩그러니 내 짐이 레일 밖에서 버려져있다. 누가 잘못 가져가서 돌려놓고 간 걸까…? 누가 그런 거지… 어쨌든 나왔으니 됐다. 휴… 바로 유튜브 콘텐츠 찍을 뻔했다. (유튜브 안 함)
또 한 가지 하지 않은 것. 픽업 서비스를 신청하지 않았다. 호텔에서 제공하는 서비스는 클룩 같은 샌딩 서비스 가격보다 2배가 넘었고, 대낮 도착이라 툭툭이가 많고 흥정도 잘 된다고 해서 도전해 보기로 했다. 잔돈을 잘 안 준다고 해서 500페소를 깨야하는데 네이버 카페글에서 있다던 세븐일레븐이 이 좁은 공항 어디로 가도 보이지 않는다. 1차 작전 실패. 그래서 계속 나를 유혹해 오는 택시를 잡아보기로 했다. 택시 호객꾼에게 미티 리조트라고 하니 600을 부른다. 훗- 바로 대답도 안 하고 지나쳤더니 1초 만에 500으로 내려갔다. 뒤로 돌아 바로 400을 외쳤다. 딜 성공ㅋㅋㅋ. 그녀의 부름을 받고 멀리서 기사가 왔다. 우선 내가 500페소짜리 뿐이니 100페소가 있는지 보여달라고 했다. 지갑을 꺼내 100페소를 보여준다. 오케이 하고 출발했다. 엄청 큰 12인승 차가 기다리고 있었다. 일행을 더 태우나 싶었는데 바로 출발한다. 툭툭이로 먼지 먹을 각오도 하고 있었는데 에어컨 빵빵한 버스에 400 페소면 괜찮은 가격이라고 생각했다. 현지인들은 200 페소면 태워 준다고 하지만 어차피 나에게 그럴리는 없으니 이 정도면 꽤 만족스러운 가격이었다.
내가 탄 차가 달렸다. 차창으로 보이는 보홀은 정말 시골이었다. 이 사람들은 집 주변에 아무 것도 없어서 심심하겠다.. 까지 걱정하면서 이곳저곳을 둘러보니 리조트에 도착한 모양이다. 한국 사람들이 많이 가는 헤난 리조트는 공항에서 5분-10분 컷이라는데 미티리조트는 20분은 넘은 것 같다. 툭툭은 리조트 앞에서 버기차가 데리러 온다는데 이런 차량은 로비까지 통과시켜 주었다. 입구에서 예약자 명단을 확인하니 진짜 대저태 같은 철문이 열렸다.
체크인까지 한 시간가량 남아 웰컴티를 마시고, 미리 마사지를 예약하고, 리조트 이곳저곳을 둘러보았다. 과연 사진에서 보던 그대로 천국 같은 수영장 뷰가 펼쳐졌다. 옆에 기념품 가게가 있어서 돈도 좀 깰 겸 들어갔다. 오기 전 블로그 글에서 여기에 차단지수 100짜리 선크림이 있다고 해서 그걸 사려고 했는데 30짜리 샤셰용 밖에 없었다. 그래서 새로 산 배낭에 달면 좋을 것 같은 키링과 아이스크림 바에 보홀이라 적힌 책갈피를 샀다.
3시가 되자 내 방이 준비되었다고 했다. 버기로 친절하게 데려다주는데 리조트 안이 엄청 넓다. 한참을 달려 4402 내 방에 도착했다. 가장 끝쪽 같았고, 마사지샵과 gym은 걸어갈 수 있는 거리였다. 바로 앞에 무슨 공사를 하고 있어 아쉬웠지만 공사는 보통 오전에 끝났다. 바다도 보이지 않았고, 생각보다 시설은 오래되어 보였다. 무엇보다 체크인하면서 안내서를 주긴 했지만 벌레가 엄청 많다. 모기 차단제를 뿌려서인지 생각보다 모기는 없었고 물리지도 않았다. 하지만 목적과 종류도 알 수 없는 벌레들이 자기 집처럼 내 방을 왔다 갔다 하는 느낌이 들었다. 이불 위에도 아주 작은 벌레들이 종종 보여서 밤에 샤워가운을 덥고 잤다. (체크아웃하는 이 시점에 정리해 보면 이게 이 리조트의 유일하지만 나에게는 치명적인 단점이다.)
대충 방 정리를 했다. 그리고 마사지 예약시간까지 시간이 좀 남아 다시 로비에서 쉴 겸 버기를 불렀다. 외국 나오면 한국사람 시점으로 살지 말아야겠다고 많이 다짐하는 편인데 버기가 오는데 참 오래도 걸린다.ㅋㅋㅋ(리조트가 익숙해진 이후로는 버기를 타지 않고 걸어서 돌아다녔다.) 구름이 끼고 종종 비가 오기 시작했다. 앞에 인공섬이 정말 멋졌다. 한국인 가족들이 종종… 아니 예상보다는 많이 보였다. 테이블에 앉아 가족 채팅창에 사진도 보내고 좀 쉬다가 다시 버기를 타고 마사지샵으로 갔다. 마사지샵도 창문으로 바다가 보여 정말 멋졌다. 90분짜리 오일마사지를 신청했다. 불편한 곳을 적으라기에 열심히도 적었는데…(의미 없었다ㅋㅋ) 창문으로 보이는 바다를 한번 더 감상하고 엎드려 누웠다. 이 집 마사지 후기는 인생마사지 vs 별로였다가 반반이었는데 나의 결론은, ‘이래도 되나?’ 싶을 정도로 어이가 없었다. ㅋㅋㅋ 내가 10살 조카한테 주물러 달라고 해도 이것보다는 시원하지 않았을까 싶었다. 그래도 온몸에 오일을 발랐다는 것에 의의를 두고 왔다. 내일 또 받을 생각은 확실히 떨칠 수 있었다.
숙소로 돌아가기에는 조금 이른 것 같아서 다시 로비로 왔다. 해는 저물었고, 사람들이 수영을 하고 있었다. 저녁을 어떻게 해결할까 하다가 리조트 레스토랑으로 들어왔다. 의지를 갖고 30대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열정적인 다이어트를 하며 7kg 정도를 빼고 왔는데 혼자 있을 때라도 조절이나 하자 싶어 샐러드와 망고주스를 시켰다. 시럽을 적게 넣어달라고 했는데 두 달가량 음료를 끊어서인지 이렇게 상큼할 수가 없다. 근처에 망고 살 곳도 없고 해서 필리핀에서 만난 첫 번째 망고였다. 실내에는 공연하는 사람도 있고(베니건스 생일파티 공연 같은..) 사람도 많아 시끄러워 밖으로 나왔더니 한국인 한 팀만 있었다. 20대 누나, 남동생으로 이루어진 4인 가족이었는데 여행 며칠째인지 모르겠는데 서로 감정이 폭발한 것 같았다. 엄마는 아빠의 말에 상처를 받았고, 아빠는 엄마 한마디 한마디에 화가 나고, 딸은 그런 아빠 모습이 사람들에게 나쁘게 비칠까 그게 싫고, 아들은 여행에서 모두가 이러고 있는 게 싫었다. 이 싸움은 그 가족이 실내로 자리를 옮겨서도 계속된 것 같았다. 아빠 편이 없는 것으로 보아 잘못은 아빠에게 많이 있어 보였지만 이 가족은 다음 날 쇼핑몰에서 다시 만날 수 있었다. 아빠를 두고 가지는 않을 것인가 보다.
방으로 들어와 씻고 누웠다. 에어컨을 틀면 춥고 끄면 눅눅한 느낌이 났다. 어디에서라도 나타날 것 같은 벌레 생각에 이불을 덮고 잘 용기도 나지 않았다. 내가 이 정도로 벌레를 싫어하는지 이번 여행을 통해서 알게 된 것 같다. ㅋㅋ 넷플릭스로 얼마 전부터 다시 보고 싶었던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를 틀어놓고 겨우 잠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