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의 변화

가오슝에서

by 장하영

이번 추석 연휴는 알잘딱깔센으로 주말이 지나고 시작되었다. 거기에 회사 사규에 나와있는 휴가(설날과 추석의 다다음날 쉬는 것인데 주말이나 임시휴무일 등에 걸리면 소용없음)까지 있으니 금요일만 휴가를 내면 꽤나 긴 휴가가 된다. 5월부터 계획을 세웠다. 18년도인가 추석연휴 첫날 인천공항을 가서 대단한 고생을 했다. 3시간 전에 도착하고도 화장실 한 번 갈 새 없이, 계속 줄을 서다 출입국 심사를 겨우 받고 출국게이트까지 쉬지 않고 걸어 바로 비행기를 탔던 기억이 있다. 그래서 이번 연휴는 무조건 김포공항으로 출국할 수 있는 여행지를 후보에 올렸다. 타이페이를 가고 싶었는데 스케줄이 수-토 밖에 나오지 않았다. 연휴를 꽉 채워서 갈 수 있는 여행지가 바로 가오슝이었다. 예전에 타이페이나 다른 도시를 여행 가며 하루 이틀 정도 들린 적이 있지만 나에게 그렇게 매력적인 도시는 아니었다. 나는 세련된 도시의 맛을 좋아하는데 그때 느낀 가오슝은 그런 것과는 거리가 좀 있는 곳이었다. 그래도 일주일이라면 푹 쉴 수 있는데 어디라도 좋지. 고민하다가 적당한 가격에 티켓팅을 했다.


혼자 갈까 하다가 심심한 도시에(오해해서 미안해… -현재의 내가-) 너무 심심할까 싶어 엄마를 꼬셨다가 직장 선배를 꼬셨다가 동네친구가 걸려들었다. 그런데 하필 친구가 여행 10일 전에 걸린 지독한 독감으로 몸 상태가 말이 아닌 상태다. 원래는 가오슝에서 한 시간 정도 가는 소류구에서 거북이도 볼 계획을 장황하게 세웠지만 더운 날씨와 친구의 컨디션 난조로 최대한 필요한 곳만 가고 컨디션 회복에만 집중하기로 했다.

순서대로 일본(후쿠오카), 대만(가오슝), 중국(상하이) 공유 자전거

코로나 이후 여행이 다시 풀리면서 기회만 되면 나가려고 한다. 국내에서 규칙적으로 건강하게, 낭비 안 하며 열심히 살다가 여행에서 생각도 정리하고 통장도 좀 비워보고 돌아가면 또 그 힘으로 살아간다. 코로나로 30대의 후반부를 뺏겨버린 후 40대 전에 한 번이라도 더 나가고 싶은 마음도 크다. 무릎이 건강할 때, 내가 하루라도 젊은 체력으로 즐길 수 있을 때. 그래서 여행지에서는 글도 더 잘 써지고 책도 잘 읽히는 것 같다.

요즘 여행지에서 좋아하는 루틴이 생겼다. 현지 자전거를 빌려 아침에 일행이 준비하기 전에 운동삼아 동네 한 바퀴를 돌다오는 것이다. 여행지에서 성공한 도시녀 콘셉트로 헤드폰으로 노래를 들으며 좋아하는 브랜드의 운동복을 차려입고 1:9 비율로 뜀과 걷기를 섞어하고는 했는데 얼마 전 후쿠오카에서 공용 자전거를 발견했다. 앱을 다운로드하고 카드를 연결하니 사용도 쉬워서 여행 내내 아침마다, 일행이 먼저 떠난 마지막 날에도 즐겁게 타다가 왔다. 공유 자전거는 가격도 저렴하고, 걷는 것보다 훨씬 많은 곳을 갈 수 있을 뿐 아니라 버스를 기다리거나 버스의 노선대로 돌아갈 필요도 없다. 또한 힘들지 않은 유산소 운동에 구글 앱을 켜면 자전거 도로 위주로 음성안내까지 해주니 만족도가 별 다섯 개다. 대만은 전국이 다 유바이크 앱으로 가능했다.(우리나라는 도시마다 공유 자전거의 이름도 다르고 앱도 다시 받아야 한다) 예전에는 번호가 있는 유심을 사용해서 등록 후 교통카드로 사용했는데, 번호가 없는 유심칩은 신용카드로 디파짓 (좀 비싸다. 12만 원 정도) 결제 후 사용 가능하다. 이번 여행은 날이 너무 더워 낮에 10분 걷기도 쉽지 않았는데 아침에 바람을 맞으며 페달을 신나게 밟으니 동네 구경도 마음껏 하고 현지인처럼 아침도 사서 호텔로 돌아올 수 있었다. 그런데 생각보다 주변에 자전거를 못 타는 사람이 많다. 후쿠오카 때도 이번 가오슝 여행에도 일행이 모두 자전거를 탈 줄 몰라 여행일정에 활용할 수는 없었다. 내가 너무 재미있게 타니 두 명 다 한국에 돌아가면 꼭 배우겠다고 하던데 10%도 아니 5%도 믿음이 안 간다. 과연.. ㅎㅎ 올해 목표가 우리 쌍둥이 조카들 자전거 가르쳐주기였는데 갑자기 더 미루면 안 되겠다는 생각을 했다.

.숙소 근처에서 매일 새로운 조식집을 찾아다니는 것은 큰 즐거움이었다. 같이 간 친구가 구글링을 기가막히게 해서 매일 맛있는 조식을 먹을 수 있었다.

내가 여행에서 가장 즐거울 때는 분위기 좋은 동네를 찾았을 때, 그리고 심혈을 기울여 고른 호텔이 정말 만족스러웠을 때다. 이번 여행이 즐거운 것은 가오슝에서 분위기 좋은 곳들을 여러 군데 발견했고, (내 기준 부자동네 느낌인 것) 긴 7박의 숙소를 굉장히 짜임새 있게 예약했는데 가격/위치/시설 면에서 모두 만족했기 때문이다. 특히 가오슝 여행 검색 중 정말 가고 싶었던 호텔이 있었는데 가격대가 좀 있어서 일주일 중에 가장 저렴한 이틀을 이 호텔로 고정하고, 앞뒤로 주말과 주중 가 격 변동이 크지 않으면서 위치와 시설이 만족스러운 호텔로 예약했다. (내가 이렇게까지 인생이 계획적이었다면 어땠을지… ㅎㅎ) 그래서 밤늦게 도착하자마자 하룻밤만 보내는 저렴이 호텔 1박, 한국인 평이 좋고 깨끗하며 세탁시설까지 겸비한 야시장 근처 호텔 3박, 현대식 인테리어와 대망의 인피니트 풀이 있는 5성급 호텔 2박, 그리고 마지막 날 공항 가기 전까지 수영이나 하다 갈 겸 연식은 살짝 있지만 다른 날보다 저렴하게 나온 호텔로 예약했다. 빡빡한 일정을 소화하고 땀을 많이 흘린 두 번째 호텔에서 야무지게 매일 빨래를 하고 들어온 세 번째 호텔은 바다가 보이는 고층에 감탄사가 절로 나오는 북카페 분위기의 로비에 방에서까지 야경을 감상할 수 있는 다다미까지… 그리고 시립 도서관이 지하로/지상으로 연결되어 있어 호텔을 나갈 이유도, 땀을 흘릴 이유도 없는 곳이다. 체력이 점점 돌아오고 있는 친구는 어제까지는 가끔 힘들어하더니 이 호텔에 도착하고 나서 두 개의 자아를 가진 듯 다른 사람이 되어 있었다. 대만은 조식 또한 여행 스케줄에 일부여서 포함을 안 시키는 편이지만(주변에 조식식당이 굉장히 흔하고 모두 맛있다) 이 호텔은 유일하게 조식 포함이었는데 무려 26층에서 바다를 바라보며 먹을 수 있었다. 숙소의 흐름으로 보면 서민의 삶에서 성공을 맛보는 상향 그래프의 모습이라며 일행과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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