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와 연말여행 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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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장하영

오늘은 예약한 쿠킹클래스가 오후에 있어서 오전 일정을 어떻게 채울까 고민하다가 반캉왓으로 정했다. 엄마가 좋아할 분위기 같기도 했고, 그곳에는 내가 좋아하는 카페가 있어서 다시 가보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반캉왓에 도착하니 오늘은 무슨 행사가 있어서 1인당 150바트씩 입장료가 있다고 했다. 딱 오늘부터 행사가 시작이었는데 미리 올 것을 그랬다. 안에서 쓸 수 있는 쿠폰도 주고 아이스크림도 주고 여러 액티비티도 가능하다고 했는데 막상 들어가 보니 기존에 입장료 없을 때와 크게 다르지는 않아 아쉬웠다. 그래도 여전히 구석구석 볼거리가 많았다. 초록초록 푸르른 나무와 화창한 날씨, 그리고 오두막 같은 매장 분위기가 잘 어울리는 곳이다. 나무 도마와 비누를 살까 하다가 결국은 빈손으로 나왔다.

반캉왓에서 도보로 7분 정도에 한국인 주인의 ‘이너프 포 라이프’라는 카페가 있다. 여름에는 가는 길에 무척이나 더워서 헉헉 거리며 겨우 도착했었는데, 날이 선선하게 좋으니 가는 길도 정겹다. 이곳은 카페와 함께 소품샵도 운영 중인데 자개로 만든 티스푼이 예뻐서 지난번에 두 개를 골라왔다. 엄마도 자개가 예쁘다 하셔서 티스푼이랑 포크세트를 구입했다. 소품샵에 한국인이 차분하게 포장을 해줬다. 그녀의 어머니도 와계신 것 같았다. 소품샵을 한 바퀴 둘러보고 밖으로 나와 커피를 주문했다. 오픈시간에 맞춰와서 손님이 없었다. 그때 봤던 한국 남자 사장님 대신 현지 직원이 주문을 받았다. 커피 두 잔과 케이크 하나를 시켜 룸 안으로 들어왔다. 에어컨을 안 켜도 되었을 것 같은데 친절하게도 직원이 바로 와서 에어컨을 켜주었다.

이곳이다. 작년에 왔을 때 너무 더웠는데 룸 안에 들어오니 시원한 에어컨 바람과 함께 대학교 때 좋아하는 노래였던 제이의 ‘빛’이라는 노래의 전주가 나왔었다. 너무 마음이 몽글몽글 해져서 영상을 찍어놨던 기억이 난다. 오늘은 아쉽게도 다른 노래였지만 그때의 분위기 그대로였다. 다행히 엄마도 엄청 마음에 들어 하는 눈치다. 손님이 아무도 없어서 엄마 사진을 많이 찍어줬다. 그때 그 가구들 햇빛, 그 감성 그대로여서 정말 좋았다. 넉넉하게 시간을 보내기로 하고 가져온 책도 읽을 읽었다. ‘스타벅스 일기’라는 책인데 스타벅스에서 글쓰기를 좋아하는 작가의 귀여운 수필이다. 나도 매일 이곳을 올 수 있다면 ‘이너프 포 라이프에서 쓴 일기’라는 이름으로 기록을 남겼을 테다. 이번 여행 통틀어 여기서 보낸 두 시간의 시간이 가장 행복했던 것 같다.


오후 일정을 위해 일어날 시간이다. 볼트를 불러 차가 오는 시간 동안 짐을 챙겼다. 엄마가 그 사이에 아까 본 주인분 어머니에게 인사를 하고 온 모양인데, 택시가 오니 그 어머니가 직접 문 앞까지 우리에게 인사하러 나와주었다. 엄마도 그분도 여행에서 동년배를 만나니 더 반가웠었나 보다. 마지막 순간까지 너무 따뜻했던 카페였다.

정말 좋은 시간이었다고 이야기를 하며 다시 숙소로 돌아왔다. 점심은 여행 초반에 한국슈퍼에서 샀던 짜파게티에 계란프라이를 해서 먹었다. 한국에서도 일 년에 한 번 먹을까 말까 한 짜파게티인데 여기서 먹으니 정말 맛있었다. 두 봉지를 샀는데 한 봉지는 결국 먹지 못하고 도로 한국으로 가져왔다.

오후 일정으로 예약한 쿠킹클래스는 숙소 앞까지 픽업을 온다. 픽업시간에 맞춰 입구로 나갔다. 가이드가 이름을 확인하고 저기 빨간 차를 타라고 손짓하는데 보니까 썽테우다. 여기서 썽테우를 타보게 될 줄이야. 우리 외에도 한국인 모녀 세 명이 있었고, 중국인, 인도인, 홍콩인 10명 정도를 한 차에 태워 이동했다. 뒷문에 안전고리도 없이 가는 내내 매연을 마시며 이동했지만 언제 타볼까 싶었던 썽테우를 이런 기회에 타게 되다니 이 또한 행운이다.

가는 길에 로컬 시장에 들렀다. 입구에서 영어와 중국어로 나눈 뒤 조를 지어 이동했다. 오늘 클래스에 쓰일 재료들을 설명해 주었다. 설명이 끝나고 20분 정도 자유시간을 주어서 옥수수와 호떡 같은 디저트를 사 먹었다. 그런데 정신없이 따라만 다니다 보니 길을 잃고 말았다. 분명 몇 분 전까지 일행들이 있었던 것 같은데 도통 보이 지를 않는다. 알고 보니 내가 처음 기다리려고 했던 곳과 불과 10미터 거리였다. 겨우 기사를 찾아 탑승을 했다.

20분 정도 차를 타고 더 가서야 진짜 쿠킹클래스 장소가 나왔다. 입구에서 다시 이름을 확인하고 컬러로 반을 나누어 장소를 지정해 주었다. 나는 빨간 앞치마의 레드반이었다. 시장을 갔던 멤버들과는 뿔뿔이 흩어지고 인도에서 혼자 온 언니와 한 조였다. 에어컨이 있는 곳, 없는 곳, 영어, 중국어 등으로 구분이 되는 것 같다. 덥지 않을 날씨라 에어컨 없는 곳으로 신청을 했는데, 더위가 문제가 아니었다. 그동안 잘 피해 다녔던 모기를 여기서 다 물렸다. 수업 시작 전 카레, 면, 수프 카테고리 중에 하나씩 각자 하고 싶은 요리를 선택하게 된다. 엄마와 나는 각각 다른 걸 선택했다. 다행히 동시에 진행해도 무리 없는 수준의 차이였다. 나는 요리와 동시에 엄마에게 통역도 해줘야 되는 상황이라 선생님 바로 앞에 자리를 잡았다. 선생님이 엄청 활기차고 재밌는 여자분이었는데 한국말로 ‘엄마‘, ’ 엄마‘ 하면서 아는 한국어도 적당히 섞으며 엄마를 정말 잘 챙겨줬다. 엄마도 눈치껏 잘 따라 했다. 지난번 갔던 쿠킹클래스는 하나의 요리를 완성하면 먹고 그 사이에 다음 요리 준비가 되었던 프로세스였는데 여기는 모두 한 번에 만들었다가 수업이 모두 끝난 후 한 번에 먹는 방식이었다. 이전에 갔던 곳보다는 가격도 저렴하지만 결론적으로는 수업 내용은 별반 다르지 않았다. 식사를 하면서 옆에 있는 미국 소녀가 젓가락질을 너무 잘해서 칭찬해 주었더니 지금 대구에 살고 있는 가족이었다. 국제학교를 다녀서 한국말은 잘 못한다고 했다. 오늘은 엄마 신경 쓰느라 원래도 잘하지 못하는 요리에 신경 쓸 겨를이 없었는데 오늘 만든 나의 똠얌꿍은 진짜 내 인생 최고의 맛이었다. 역시 음식은 대충 만들어야 맛있는 건가.. ㅎㅎ 평소 태국 음식을 좋아하지만 똠얌꿍은 안 좋아하는데 이 맛이라면 앞으로 내 태국 음식 중 최애가 될 것만 같았다. 쿠킹클래스는 한국에서 갔던 것 포함해서 이번이 세 번째인데 항상 끝나면 아무것도 기억이 나지 않는다. 그런데 여기에서는 레시피가 정리된 책자도 나누어준다. 감동적 이게도 한국어로 된 책자를 챙겨주었다. 쿠킹클래스는 아이러니하게도 치앙마이 답지 않게 굉장히 빠르고 체계적으로 진행된다. 그때도 엄마랑 온 일행을 보고 우리 엄마도 오면 참 좋아하겠다 생각했는데 직접 모시고 오고, 실제로도 엄마가 좋아해서 아주 뿌듯한 하루였다.

정신없는 코스가 끝이 나고 지역별로 버스를 배정받았다. 이른 시간이라 마야몰이나 들릴까 싶어서 마야몰에 세워달라고 했다. (인도언니랑은 제대로 인사도 못하고 헤어졌지만 나중에 우리 바로 옆 호텔에서 가족과 있는 언니를 발견했다.ㅎㅎ) 불금답게 마야몰 곳곳에서 공연을 하고 있었다. 공연을 좀 보다가 꿀을 좀 사려고 했는데 기념품 전문점들이 불금을 보내려는지 일찍 문을 닫았다. 그래서 내일 마트랑 같이 비교해 보기로 하고 집 앞에서 마사지를 받았다. 역시나 엄마도 나도 만족스러운 시간이어서 무리해서라도 하루 더 받을 생각으로 내일 두 시간짜리로 예약도 하고 나왔다. 이너프 포 라이프로 시작된 일정 때문인지 이번 여행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하루가 될 것 같은 오늘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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