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ns를 들여다보다 어떤 알고리즘이 나를 멈칫하게 했는지 모르겠다. 찐빵을 보는순간 한없이 너그러워진다. 타이틀은 '부평시장옛날찐빵' 속이 훤히 보일락말락해서 일명 시스루찐빵! 사람들 이름도 잘지어낸다 생각하며 피식 웃다 남편에게 링크를 보냈다.
"부평이 회사근천가? 여기 함 가까?"
남편은 흥쾌히 응해주었다. 회사가 부천이라 부평이랑 가까울거란 말도 안되는 나의 논리에 브레이크 걸리기엔 얼마 시간이 안걸렸다.
남편은 경로를 찾다 다시 되묻는다.
"여기 부평이 인천이 아니라 부산인데? 맞아?"
"어?잠깐만 다시 한번 보께"
그렇다! 인천 부평이 아닌 부산의 부평이였다. 부산.부산.부산...
시스루 찐빵은 모락모락 피어오르는 김과 함께 멀어져간 기분이였다.
잠시뒤, 남편에게 톡이 왔다.
"주말지나 담주 수욜에 도착예정"
"무슨말? 어떻게 된?"
사연인즉, 남편은 부산사는 친한 친구네 집으로 퀵배달을 시켰다. 퀵으로 받은 찐빵은 친구네집 냉동실에서 주말을 보내고 월요일 택배로 우리집으로 보내준다는 것이다. 몇단계를 거쳐 부산에서 오게 된 시스루 찐빵. 그것보다도 그렇게라도 찐빵을 구해다주는 남편의 정성에 감동 받는 순간이였다.
나의 한마디 먹고싶다란말에 마치 한겨울에 복숭아를 구해온 신랑 같았다. 고마움이다.
1인 최대 5봉지(한봉지8개)만 판매제한이 있기에 남편친구분도 먹어보라고 한봉지 내어주고, 예정보다 하루 먼저 도착한 시스루 찐빵.
겉모습은 볼품없지만 90프로가 팥인 찐빵을 가장한 팥덩이. 달지 않아 계속 들어가게 하는 맛이였다.
소분하여 냉동실에 자리잡아 준 찐빵은 아침마다 우리가족 든든한 먹거리가 되어주고 있다.
어릴적 하얀 머리에 은색 비려로 곱게 머리를 다듬던 할머니와 마주 앉아 빚던 찐빵. 찐빵 만들기 전날이면 미리 팥을 한바가지 다라이에 불려두신다. 부엌을 지나가 물에 담긴 팥을보면 다음날이 기다려졌다. 미지근한물에 이스트를 풀고 밀가루에 소금간하여 조물조물 반죽을 마치면 쟁반을 덮어 가장 따뜻한 아랫목에 찐빵 반죽 그릇 차지다.
얼마쯤 지났을까?할머니께서 쟁반 좀 들춰보라시면 안방으로 쪼르르 달려가 쟁반을 들츄본다. 풍선처럼 부풀어 오른 반죽을 숟가락으로 가장자리부터 한번 휘~저어준다. 거미줄같은 발효된 반죽들이 환호성을 지르는듯 하다. 숟가락으로 이내 저어준 반죽을 쟁반으로 덮어주고 후다닥 마당으로 뛰어 나온다.
부엌에서 팥삶으시던 할머닉께선 다시 나를 부르신다.
후다닥 방으로 들어가 쟁반을 들추니 쟁반까지 반죽이 부풀어 올라 붙어 버렸다. 숟가락으로 어린애 달래듯 살살 긁어 반죽을 잠재운다. 이쯤되면 팥고물이 완성 된다. 한양푼 가득 숟가락 두개 꽃은 팥고물을 들고 들어오신다. 이젠 할머니랑 마주앉을 차례.
한숟가락 가득 팥고물을 입에 넣고 오물오물 한다. 찐빵도 만들기전부터 팥고물로 배를 채울 태세다. 할머니와 마주앉아 빚던 찐빵은 일정한 간격으로 줄을 세워 놓으면 그 자세로 또 봉긋한 찐빵으로 발효된다. 마치 어린아기 엉덩이처럼 보들보들 말랑말랑 하다.
나의 찐빵 사랑은 아마도 이때부터 였나보다. 중간발효된 찐빵들은 가마솥으로 향했고 소나무가지 위로 면포를 깐 위로 찐빵들은 이제 찔 차례다. 가마솥 찐빵들은 그날의 한끼였다. 팥고물을 너무 많이 먹어 모자를 때면 흙설탕으로 대신 소를 만들기도 했었다.
찐빵을 여러번 만들다 느낀건 팥고물 적당히 퍼먹기였다. 본격적으로 찐빵을 먹으려 들면 팥고물 과다섭취로 찐빵 본연의 맛을 느낄수 없음을 뒤늦게 깨달기 전까진 늘 팥고물이 모자랐다.
찐빵만 보면 설레는 마음은 아마도 그때의 추억이 되살아나 그런가보다. 그때 그랬었는데 하면서 말이다.
나의 찐빵 사랑을 고스란히 알길없는 남편이지만 길가에 파는 찐빵집만 보면 "찐빵 사줄까?"하는 남편에게 늘 고마움이다.
부평시장에서부터 먼길 달려온 시스루 찐빵엔 남편의 사랑이 고스란히 뭉쳐져 있고, 김이 모락모락 피어오르는 찐빵엔 추억들도 피어오른다.
'내가 고맙다고 했던가?신랑 다시 한번 잘먹을께 고마워요. 신랑덕에 찐빵을 더 좋아하게 될거같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