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맑고 향기롭게 Sep 29. 2021

아차산 해맞이

해맞이는 새해만 하는 게 아니었다.

내가 살고 있는 지역은 매년 새해 첫날 해맞이를 보러 오는 사람들로 북적이는 곳이다. 새해 첫날 새벽 골목길을 베란다 너머로 본 적이 있다. 거짓말 조금 보태면 어두 컴컴한 골목길 사람들이 한쪽 방향으로 발걸음을 옮긴다. 목표는 하나, 새해를 보기 위해서 걷는 걸음걸이는 가볍게 느껴질 정도다. 가족단위, 연인끼리, 친구끼리 걷는 무리의 사람들은 골목길 꽉 찬다. 보고도 믿기기 않은 광경이다. 여전히 새해 첫날이면 골목길은 반복적인 모습을 보여준다. 그래서 난 해돋이는 새해 첫날만 보는 줄 알았다.

그러다 문득 첫아이가 제안을 해온다. "엄마 우리 해보러 가요~" 맞다! 언제든 해는 볼 수 있는 거지? 좋아! 한겨울 해보러도 가는데 이 가을 해보는 게 뭐가 어렵냐는 것이다. 바로 대답해 주었다. "그래? 좋아~ 얼른 자자 내일 주말이고 하니, 해 뜨는 시간 알아볼 테니 깨우면 일어나도록 해~" 그렇게 뜬금없는 해돋이 약속을 하고, 핸드폰을 뒤적였다. 해 뜨는 시간은 (9월 25일 서울 기준 6시 22분) 좋아! 그럼 대충 집에서 5시 40분쯤 출발하기로 하고, 그전에 일어날 준비에 잠들었다. 사실 나도 설레어 잠을 설쳤다. 일어날 수 있을지 긴장도 되고 뒤척이다 잠들었더니 잠을 잔 건지 비몽사몽 하다.


알람 소리에 벌떡 일어나 주섬주섬 옷도 챙기고, 마실 물도 가방에 넣으며 아이들을 하나둘씩 깨웠다. 첫아이 일어나란 소리에 해돋이 보러 간다는 의욕이 충만한 탓이었는지 벌떡 깨었다. 반면 둘째는 이리 뒹굴 저리 뒹굴 더 자고 싶다는 둥 뒤척이다 마지막엔 배시시 웃으며 일어났다.


네 식구가 골목길을 나섰다. 새벽 5시 40분 밖은 컴컴하다. 무서울 줄 알았는데 생각보다 골목길엔 운동하는 사람들도 많아 보였다. 우리의 목적지를 향해 어느 방향으로 올라갈 것인지 정하고 부지런히 걸었다.

추울 줄 알고 입었던 긴팔 옷이 거추장스러워지기 시작했다. 마스크를 쓰고 오르막을 오를 때면 더 답답해졌다.


아차산 해맞이 공원까지 가려면 조금 더 걸어야 한다. 그러나 고구려정쯤 도착했을 때 해 뜨는 방향으로 고개를 돌렸다. 하늘은 파스텔 톤으로 사진으로 담기엔 부족한 하늘이었다. 내 눈에 가득 담아 사진을 찍어 보았다. 눈부시던 붉은 해는 뜨자마자 구름 속으로 사라져 버렸지만, 해뜨기 직전의 하늘은 우리에게 그림 같은 선물을 선사해 주었으니, 해돋이 보러 오기를 잘했단 생각이 절로 들었다. 무엇보다 아이들이 더 즐거워해 주었다.


올라오며 흘렸던 땀은 식으며 한기도 살짝 느껴졌다. 슬슬 허기도 느껴지니, 내려갈 타임이다. 내려오던 길은 올라오던 길과 다른 길로 갔다. 하산길에서 만난 도토리 덕에 가을을 만난 거 같아 더없이 설레었다. 도토리는 다시 숲으로 돌려주고, 허기진 배는 따끈한 두부가 달래주었으니, 이보다 더 좋을 수 없는 하루였다.


작가의 이전글 마카롱을 만나서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