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아온 세월의 무게 만큼이나 뜨겁고 무거울법한 옥수수 다라이는 아랑곳하지 않은채 할머니 머리위에 얹혀있다. 그리고 연이어 터지는 할머니의 갸날픈 목소리.
'옥수수 사요~'소리에 한 양옥집 현관문이 열리면서 할머니의 발걸음은 멈추신다. 하얀 고무신에 고무줄 몸빼 바지에 모시반팔을 입으신 할머닌 양옥집 아주머니의 힘을 빌어 옥수수 다라이를 살포시 내려 놓으셨다.
가마솥에서 금방 꺼내어 담은 두꺼운 김장 비닐봉투안엔 두개씩, 혹은 세개씩 묶여진 옥수수들이 하얀이를 드러내며 웃고 있다. 할머닌 아주머니가 원하는 갯수 만큼 옥수수를 건네곤 돈을 받으신다. 옥수수 비닐속 뜨거운 김들이 빠져나갈세라 또 다시 꽁꽁 묶고 머리위로 얹으신다. '옥수수 사요~'소리는 골목길을 누비며 뜨거운 여름햇살을 고스란히 받고 있다.
얼마만큼의 시간이 흘렀을까? 할머니의 옥수수 다라이는 듬성듬성 공간을 허용하자 이 모든 모습을 묵묵히 지켜보던 어린아이가 있었다. 할머니의 뒤를 따라 쫄레쫄레 쫒던 꼬마 여자아이. 꼬마여자 아이 머리 위에도 조그맣고 뜨거운 옥수수 다라이가 얹혀 있다.
잠시 골목길 한 모퉁이에 할머닌 걸음을 멈추셨다. 꼬마여자 아이도 덩달아 걸음을 멈춘다. 할머니닌 꼬마여자 아이가 얹고있는 옥수수 다라이를 한손을 뻗어 다라이를 내려놓게 도와주신다. 가까스로 내린 꼬마아이 옥수수 다라이는 옆에두고 꼬마여자 아이는 할머니의 옥수수 다라이를 내리도록 두손뻗어 도와드린다.
할머닌 꼬마여자 아이의 다라이에 담긴 옥수수 비닐을 열어 할머니의 옥수수 다라이로 옮겨 담으신다. 할머니의 옥수수 다라이는 다시 처음처럼 묵직하게 되었다. 텅빈 작은 다라이는 꼬마여자 한손에 들려 있다. 그리고 집으로 먼저 가라시며 다른 한손에 50원을 쥐어 주시는 할머니.
뜨거운 옥수수에서의 해방감이랄까?텅빈 작은 다라이를 한손으로 휘휘 저으며 다른 한손엔 시원하고 달달한 딸기맛 쮸쮸바를 입에 물고 신나게 집으로 빠른 걸음으로 내달리던 꼬마여자 아이.
옥수수 한대에 많게는 3개에서 2개씩 열리던 옥수수가 가마솥에 더이상 들어갈수 없을만큼 쇠버리면(강원도 방언ㅡ옥수수가 많이 익어 딱딱해지는 상태) 옥수수대도 누렇게 시들해진다. 한철 장사를 위해 가마솥은 매일 바글바글 끓여지고 한여름 더위를 옥수수와 씨름하다 여름을 다 보내버린 꼬마여자 아이의 여름나기.
그 꼬마여자 아이는 어느덧 중년이 되어 옥수수만 보면 유년시절의 옥수수가 떠올라 매년 꼬마여자 아이가 상기되어 진다. 그때 뜨거운 작은 다라이에 얹던 정수리는 그덕에 납작해진 기분이라며 우스개 소리하며 웃을수 있는 지금이지만 옥수수만 보면 알알이 박혀 추억이 되어진 시절이 방울방울 떠오르게 된다.
옥수수의 맛은 왜 그때가 더 맛있을까?
아마도 가마솥에 삶느냐 선풍기 한대로 더위를 오롯이 이겨내던 땀방울 덕이 아닐까싶다.
옥수수 껍질을 벗기며 퍼지는 옥수수 향기가 이젠 추억이되어 새하얀 옥수수에 담긴 꼬마여자 아이가 하얀이를 드러내며 웃고 있는듯 하다.
올해도 '행복'이라며 옥수수를 한가득 보내주는 친구가 있다. 매년 잊지않고 보내주는 한없이 고마운 친구.
친구의 우정이 냄비속에서 끓고 있으니 고향의 맛을 느끼게 해주는 고마운 친구에게 고마움을 전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