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또한 강원도에서 감자 농사를 도와드렸던 유년시절이 있었다. 그리하여 시골에 대한 어느정도 이해가 있다고 믿었기에 농사짓는게 다~그런거지 했다.
그러나 시집와서 느낀건 농사란 이런거구나~! 였다. 어렵고 힘든거 상상 이상이였다.
신혼초 손윗 매형의 우스개 소리가 생각난다. "처남~ 나 이제 마늘 안뽑아도 되겠어~ 마늘 그동안 많이 뽑아 드렸다." 무슨 소린지 갸우뚱 하게한 대화는 마늘 수확철에 그 뜻을 헤아릴 수 있었다.
웬만한건 기계화가 되어 손이 많이 필요하지 않지만 매년 가을걷이 후 심은 마늘을 캐어야 벼를 심을수 있다.
논마늘.
마늘은 의성 육쪽마늘이 다 인줄 알았다. 시댁서 키운 마늘은 크기에 따라 20쪽도 가능하다. 마늘 농사 자체가 생소하여 너무 몰랐다.
지난 주말 전국 비소식이 있었다. 시부모님께서는 여느해보다 신중하셨다. 비소식에 당황하신거다. 외국인 일꾼들도 미리 예약해두신 상태라 더더욱 그러하셨다.
비오면 일꾼들 일정에 다시 날잡아야하고 그 전에 자식들 도움받아 어느정도 일을 해놔야 계획하신 일정에 마늘작업을 어느정도 마무리 할수 있으셨다. 문제는 비예보를 가진 날씨였다.
지난 비내리는 주말 첫차에 우리가족은 시골로 향했다. 서울은 잔뜩 비구름을 머금은 날이였고 우리가족이 출발한 오전9시 이후부턴 비가 내렸다. 버스는 옥천휴게소에 잠시 쉬어갔다. 비가 엄청 내리고 있었다. 비오는 창밖을 내다보며 시골도 비가 올지? 비와도 일할수나 있는지? 반신반의하며 버스는 달렸다.
시댁은 경북 현풍. 의외로 날씨가 조용하다. 비가 올 기미가 안보인다. 부랴부랴 시골집에 도착하여 끼니를 때우고 시부모님 일하실 논으로 향했다. 시부모님께 인사드리고 마늘밭에 털썩 주저앉아 마늘 뽑느냐 여념이없다. 흐린날씨 덕에 뜨거운 볕은 아니였다. 그럭저럭 바람도 불어주니 비오기전에 한단이라고 처마로 마늘을 들여야 하는 마음으로 마늘을 뽑아 댔다.
결혼16년차. 도무지 마늘작업은 익숙해지지 않는다. 쪼그리고 앉아 진흙먼지 먹어가며 마늘 뽑기란 여간 쉽지않다. 딴청 피울새도 없이 양손으로 마늘을 뽑아 눕혔다.
비소식이 조급함을 몰고온 터라 최대한 많이 도와드려야 한다는 마음에 땅만보고 조금씩 조금씩 전진한다.
한차례 작업후 시간은 어느덧 저녁이 되었다. 흙을 털고 일어섰다. 주섬주섬 짐을 챙겨 집으로 돌아오니 몸이 무겁다. 그래도 마음은 조금 가벼워진다. 비가 안와서 이만큼이라도 할수있었기에 관건은 내일이다.
아침일찍 서두른 발걸음에 농사일까지 하고 맞은 저녁시간은 꿀잠 예약이였다. 그리고 이른새벽녁 어머님께서 깨우신 소리에 일어나니 밖은 캄캄하다. 평소같으면 환할텐데 비예보에 어두운거 같다며 조금이라도 일을 하고 들어오자신다. 부비부비 눈을 비비며 잠깨고 이른 아침을 먹는둥 마는둥 해 체비를하고 마당을 나서는 순간 비가 쏟아졌다.
잠시 후퇴다. 한잠 청하고나니 다시 비가 그쳤다. 일어나고니 시부모님들은 보이지 않는다. 다시 옷갈아입고 마늘밭으로 걸어갔다. 새벽녁 내린 비 덕에 축축한 마늘밭 작업은 좀더 어려웠다. 장갑은 금방 축축해지고 털썩 주저않을수도 없이 작업을 진행했다. 비록 엉덩이 받침이 있어도 가끔 없는편이 편하기도 하기에...
마늘밭 시간은 어제와 다르게 더디다.
온몸에 근육통은 덤이고, 마음과 달리 속도가 나지 않는다. 쉽지 않은 농사일. 하루하루를 날로 먹었다. 오늘은 그 예외의 날. 젖은 마늘밭에 쪼그려 앉아 멀리도 볼수 없다. 눈앞에 마늘 뽑기에만 집중한다. 그러다보면 어느순간 한줄 다 뽑고 느끼는 성취감이랄까? 때마침 불어오는 바람에 땀방울 한킴 식혀본다. 일은 고되어도 이맛도 중독이다.
복잡한 도시생활에 느낄수 없는 여유가 있는 시골이라지만 농번기엔 여유가 없다. 비소식까지 겹친 마늘작업으로 쫓기듯 한 농사일은 잠시 뒤로한채 예정된 버스 시간표대로 다시 일상으로 복귀했다.
비내리던 서울을 떠나 시골에선 못본 폭우를, 시골을 떠나 다시 서울로 복귀하니 시골엔 폭우가 쏟이진다고 했다. 본의 아니게 비를 피해 다닌 주말엔 근육통이 남았지만 손톱 가득 진흙때도 말해준다.
'세상엔 쉬운일도 없지만, 어려운 일도 없다. 그냥 하는거다. 소멸하는 시간에 기대어 또 지나간다. 나는 그렇게 또 익어간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