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0년 만에 섬초를 알아보다.
찬바람이 제법부는 2월이다.
입춘도 지난 지 어느덧 스무날도 지났다. 예년보다 큰 추위 없던 1월 생각해 보면 2월은 계속 춥다.
입춘소식에 방심한 순간 감기가 들었다.
입맛도 상실하고 저녁거리가 오늘따라 큰 숙제 같다. 파트타임 후 야채가게 앞에 무더기로 쌓여 있는 시금치 한 봉지를 들었다. 분홍빛 뿌리를 달고 있는 시금치 가격은 4000원. 요즘 고물가에 안 비싼 게 이상할 정도다.
감기는 본능적으로 몸을 챙기라는 듯 그동안 소홀했던 야채들이 눈에 들어온다. 당근, 양파, 시금치, 콜라비를 담아왔다. 핑크빛 시금치 섬초.
사실 시금치는 다 같은 건 줄 알았다.
그러던 어느 날 파트타임으로 일하는 사모님이 핑크빛 뿌리 달린 시금치나물을 먹여주셨다. 달짝지근한 시금치나물에 누가 설탕 뿌린 듯 달달한 시금치나물.
"사모님 이 시금치 뿌리 먹는 거예요? 전 늘 싹둑 잘라서 다듬었는데..."
"이건 칼로 슬슬 긁으면서 십자로 잘라서 4 등분해서 데치면 돼~"
"아~ 그동안 뿌리는 못 먹는 건지 알았어요~"
"뿌리 부분이 맛있는 부분이지~"
"저도 시금치 다듬을 때 그래야겠어요 "
며칠 전 사모님과의 이야기가 생각나 집었던 섬초.
찬물에 뿌리를 긁어가며 씻는다. 보통 귀찮은 일이 아니다. 그동안 시금치를 삶는데 이 정도 공도 안 들인 나였기에 섬초가 그냥 맛있는 게 아니었네. 이렇게 정성을 들이는데 안 맛있을 수 있겠나?
은근히 오래 걸린다. 몇 번을 헹궈가며 잔모레도 덜어낸다. 뜨거운 물에 데치고 나니 뿌듯해진다.
겨울 찬바람에 얼었다 녹았다를 반복하면서 천천히 자라는 시금치. 녹색채소가 귀한 겨울 더욱 반가운 시금치는 경북 포항의 포항초, 남해서 자란 남해초, 신안 비금로의 섬초가 있다. 줄기의 끝은 땅을 향해있고 잎사귀는 사방으로 퍼지면서 로제트형식으로 퍼지면서 납작한 상태로 겨울을 난다. 돋아나는 새 잎들도 땅에 빠짝 붙어 겨울바람을 이겨내니 얼어 죽지 않기 위해 당도를 높이는 생존 방식으로 맛이 없을 수 없다.
달수록 살기 위해 애썼구나 싶은 시금치가 참말로 맛있게 고맙다.
뿌리는 당연히 버리는지 알고 싹둑싹둑 잘라버렸던 지난 시간들이 다듬기 귀찮은 마음도 있었던 거 같다.
이젠 핑크빛 뿌리도 소중하고 맛있게 다뤄주리라.
겨울바람 이겨내고 씩씩하고 파릇파릇하게 살아준 시금치가 새삼 힘 솟게 하는 푸른 에너지를 전해주는 듯하다. 내 나이 50이 되어서야 시금치가 귀하게 느껴지는 요즘 저녁반찬은 시금치나물 추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