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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맑고 향기롭게 Oct 10. 2021

꾼이 되지못했던 아버지

낫으로 벼 베던 날

나의 친정아버지는 농사를 지으셨다. 벼농사, 감자 농사, 옥수수 농사를 지으셨지만 농사도 꾼이라 했던가.

농사는 지어도 살림이 나아지질 않으셨다. 한 해 농사 시작쯤엔 농협에서 농자금 대출받아 오셨고, 가을걷이로 들어온 수익은 고스란히 농자금 대출을 갚기 빠듯하셨다.

매년 되풀이되는 이 순환은 해를 거듭할수록 조금씩 조금씩 대출금만 늘어나고 있었다.


어른들 하시는 말을 어깨너머로 듣다 보니, 나도 모르게 어른들 한숨소리, 세상 사는 게 녹록지 않은 이야기들이  귀속에 쏙쏙 박혔다. 어린 내가 할 수 있는 게 없었던지라 빨리 커서 돈을 벌어야겠다란 생각을 했었으니 철이 조금 빠르게 찾아온 듯 한 유년시절 들이다.


품앗이로 벼농사짓던 어느 가을날로 기억된다. 어찌 된 영문인지 우리가 짓던 논에 벼가 가을걷이가 되지 않았다. 짧아지는 해의 길이에 이슬 오기 전에 벼를 베야하는 아버진 마음이 조급해지셨다. 캄캄하도록 집에 오지 않는 아버지를 찾으러 할머니와 논으로 향했다.


홀로 낫으로 벼를 베던 아버지는 얼마나 막막하셨을까. 어린 맘에 누워있는 볏단을 새벽이슬 맞지 않게 논가에 세워드리며 일손을 도와드렸다. 그리고 어느 순간 한 손에 낫을 들고 아버지를 도와드릴 마음으로 벼를 베었다.

나의 모습에 놀라신 아버지는 낫을 빼으시고 이내 집으로 가자고 하던 일을 멈추셨다.

어린 꼬마 아이가 낫으로 벼를 베니 얼마나 당황하셨을까 말이다. 난 또 어디서 그런 힘이 나왔는지 그날의 기억은 캄캄한 어스름을 앞세워 셋이서 집으로 돌아오고야 멈췄다.


며칠 전 절기로 한로였다. 찬 이슬이 내린다는 열일곱 번째 절기는 가을걷이가 제때 이뤄지지 않은 아버지에게 조급함을 안겨주셨을 테다. 어린 맘에 낫 들고 벼 베던 아이는 아직 아버지의 나이를 살지는 못했지만 살아간다는 건  보통일이 아녔을 거란 생각을 했을지 모른다.


열심히 농사는 지으셨지만 소작으로 짓던 농사는 농자금 대출금도 갚지 못할 만큼의 농사였다. 농사 지을수록 손해 보니 아버지는 진정한 농사꾼이 되지 못하셨던 것이다.


그러나 난 안다. 아버진 세 살에 천자문도 떼셨고, 집안 전기는 아버지 손을 거치지 않으면 안 되었고, 사회에 적응하지 못하셨던 농사도 꾼이 되지 못하셨던 천재였다는 것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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