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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맑고 향기롭게 Dec 03. 2021

아버지는 호박전을 좋아하셨다.

저녁상에 호박전 한 접시


아버지는 농사를 지으셨지만, 가난에서 벗어날 수 없는 농사일은 늘 날 불편하게 하였다. 가난은 나쁜 게 아닌 불편함이 아니던가. 그 가난 속에 나의 벗이 되어준 산과 들과 나무는 정서적 안식처였으니, 농사를 짓는 그 순간은 부자보다도 행복한 순간이 기억에 남는다.



한여름 호박넝쿨에선 호박이 주렁주렁 열렸다. 할머니께선 지팡이로 호박잎을 살피시며 어디 어디 호박이 열려 커가지는 자리를 익혀두셨다. 그리곤 계속 쳐다보면 안 된다고 하셨다. 눈독이 올라 호박이 자라지 못하고 시들어버린다며 말이다. 어린 내가 받아들이기 힘든 부분이지만 할머니 말씀은 맞았다. 눈독 들여 오가며 호박이 잘 큰지 쳐다보다 어느 순간 호박은 꼭지를 떨구고 죽어버린 경우가 왕왕 있었다.

과학적으로 말하기 어려운 주술적인 부분이라고 해야 할까? 눈독 들인 호박은 왜 나의 관심에 죽고 만 걸까?




저녁 반찬이 마땅치 않아 고민하던 중 애호박 하나를 집었다. 남편이 좋아하는 애호박전. 그래 오늘은 애호박전이다.



친정아버지의 저녁상을 차리기 위해 호박을 하나 집었다. 밀가루를 풀고 호박을 썰어 퐁당 담근다. 기름을 두른 프라이팬에 호박전을 만들어 낸다. 익숙한 나의 모습들이 지금 이 순간 오버랩된다.

내가 감자를 조리든, 냉이를 무치든 아버지는 내가 만들어 낸 반찬을 좋아하셨다. 반찬투정이 심했던  친정아버지는 나의 반찬을 맛있게 잡수셨다.  그중 특히 좋아하셨던 호박전. 조선간장(집간장)에 찍어 맛있게 잡수시던 아버지는 숭늉을 한 사발 들이키시고 나서야 그렇게 밥상을 물리셨다.



애호박전을 한 접시 만들고 보니, 친정아버지가 생각난다. 지금은 함께할 수 없지만, 맛있게 잡수시던 내가 만든 호박전. 애호박은 그 당시 익숙한 호박은 아녔으니, 적당히 잘 자란 호박은 시장에 내다 팔기 바빴고, 타이밍을 놓쳐 커져버려 시장성이 떨어진 호박들은 반찬으로 재탄생하여 밥상 위에 오르게 되었으니, 맛있게 드시던 친정아버지의 모습이 애호박전과 맞물려 보인다.


매년 찬바람 스산히 부는 날이되면 친정아버지가 생각이난다. 아마도 아버지를 보낸 그날의 온도를 내몸이 기억하나보다. 그리고보니 아버지 기일이 얼마남지 않았다. 내가 만들어드린 호박전을 좋아하셨던 아버지. 곧 돌아올 기일에 찾아뵈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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