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맑고 향기롭게 Dec 26. 2021

생선까스만 보면...

언니의 월급날이 떠올라

첫딸은 살림밑천이란 말이 있다. 어릴적엔 이 말의 뜻을 이해할수가 없었다. 무슨뜻인지도 모르고 어른들이 하는말을 그대로 '그런가보다'하며 이해하지 못한채 듣고만 있었다.


나에겐 8살 터울의 언니가 있다. 5남매중 첫째로 동생들이 줄줄이 비엔나 소세지지 같았을 것이다. 언니는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취업하였기에 언제부턴가 살림에 밑천이 되었는데, 어린 내가 듣기엔 그닥 좋게만 들리지 않았던 거부감이 있었다.


언니의 월급쟁이 생활이 어느순간 반가운 날로 다가왔었다. 둘째 큰오빠는 고등학교를 기숙사 생활을 하느냐 서울에 있었고, 언니는 아래 세명의 동생을 위해 외식을 시켜주기 시작했었다. 시작은 언제인지 기억은 나지 않지만, 오늘을 언니의 월급날이니 저녁먹자고 전화할테니 셋이 나오라고 아침에 일러주고 출근한다. 암묵적으로 나와 작은오빠와 두살터울 남동생은 언니의 전화를 기다리고 있다.  


군불 때우는 아빠께 오늘은 언니가 저녁을 먹자고 나가니 저녁은 아빠랑 엄마랑 두분이 드시는 것으로 우리 셋은 나란히 시내로 향한다. 버스에서 내려 언니를 만나고 언니가 고른 음식점으로 향한다.

경향식집으로 오늘은 정한듯하다. 지금도 기억나는 간판이름은 '거목'이였다. 어린맘엔 뜻도 모르고 들어간 경향식집은 살짝 어두운 조명에 천 쇼파였던 기억이 난다.  작은오빠와 남동생은 돈까스를 시키고 난 생선까스를 시켰다. 사실 난 지금도 고기를 즐기진 않지만 그당시엔 더 심했다. 돈까스를 먹지를 못했으니 분위기상 대체할수 있는 생선까스가 나의 원픽이 되어 주었다.


언니는 우리들 먹이면서 어떤 생각이 들었을까? 이렇게 한달에 한번 외식은 언니가 결혼하여 독립하기 전까지 쭈욱 이어졌던 기억이다. 매번 언니의 월급날이 당연히 외식하는 날로 굳어지고 고기를 못먹는 나를 위해 언니의 고민이 하나 더 추가 되기도 하였다. 중국집도 가고, 쫄면으로 유명한집도 데리고 가고, 입맛 까다로운 나를 위해 언니는 메뉴 고를때마다 나를 먼저 생각해 주었던 기억도 난 안다.


가난한 살림으로 엄마,아빠의 경제적 역할을 언니가 거의 도맡아 했었다. 학습 준비물값을 언니에게 말할때도 많았으니, 미안한 마음에 미루고 미루다 당일 아침 어쩔수없이 터놓으면 언니는 진작 말을해야 돈을 주지 않겠냐며 부모님같은 마음으로 준비물 비용을 내어 주었다. 자연스럽게 철이 들어가는 마음에 투정도 부릴수 없었다. 언니의 구두를 깨끗이 닦아주는 것으로 나 또한 고마움을 전하곤 했으니 언니도 참 꽃다운 나이 였는데도 동생들 걱정만 하던 마음 착한 울언니.



저녁 반찬으로 생선까스를 먹고싶다는 첫째의 말에 후라이팬에 기름을 두르고 있었다. 노릇하게 구워낸 생선가스를 한입 먹는순간 생선까스의 맛은 그때의 향수를 불러 일으켰다. 외식이란 단어를 알려준 언니의 월급날. 찬바람이 부는 오늘같은날 마음 따뜻한 난로가 되어주고 있다는것을.....울언니는 알고 있을까?

"언니야~ 그때도 고마웠고, 지금도 고마워~ 언제나 언니가 있어 든든하다. 언니야 사랑해."

월급날은 언니의 동생사랑이 외식으로 전해지던날로 기억되게 해주어 고마운날이다.

작가의 이전글 알록달록 불태우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