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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맑고 향기롭게 Feb 01. 2022

고기빠진 김치만두는 내꺼였다.


친정어머닌 커다란 양푼이에 김치독에서 한가득 김치를 담아오신다. 암묵적으로 어머닌 무엇을 준비할 것인지 안다. 누런 면포는 자신이 얼마나 많은일들을 했는지 말해주는듯 물들어있다. 도마위에 두부 두모는 차례로 면포에 쌓여 어머니의 두손 악력으로 짜진다. 면포 겉면으로 두부의 물기가 삐져나온다. 마치 사극에서나 볼수있는 약탕기 약짜듯 힘껏 쥐어짜는 어머니다.


양푼이에 물기빠진 두부가 형태가 흩어진채로 널부러진다. 이윽고 어머닌 송송 썰어둔 김치를 같은 모습을 반복적으로 김치물을 뺀다. 식구수를 생각하면 한대야 만들어야하는 만두속이다.

삶은 당면도 송송 썰려 물기빠진 두부와 김치와 조우한다.


이쯤되면 작은 양푼에 만두소를 두 주먹 따로 담아두신다. 다진 돼지고기는 들기름과 간장 참깨와 버무려 만두소를 완성시키고, 고기가 들어간 만두소와 안들어간 만두소가 완성되는 순간이다.

상다리 접은 둥근 커다란 밥상은 작업대가 되어 만두피를 만들 준비로 또 분주해진다. 밀가루 반죽은 적당히 글루텐이 완성될쯤 얇게 피고 만두집게로 만두피를 완성시키고, 만두피가 완성되면 준비된 만두소를 넣어 만두를 빚는다.


만두는 계속 나오는대로 밑부분은 달라붙지않게 밀가루를 살짝 묻히고 넓은 쟁반에 열맞추어 나란히나란히 만든다. 분업이 잘되는 편이라 만두는 금새 한쟁반 가득 채우고 끝마무리가 날때쯤! 고기가 안들어간 만두도 빚어 따로 둔다.


가마솥은 씩씩 뜨거운 입김을 내는 황소처럼 뿌연 수증기를 내뿜는다. 펄펄 끓는물에 만두를 차례로 담궈 동동 떠오르면 체에 건져 양푼이에 담아두신다. 곧이어 들기름 손에 바르고 만두끼리 붙지 않게 만두 버무리듯 들기름을 골고루 발라 놓으신다.


만두가 찐만두로 변신하고 나면 이제부터 난 시험에 빠져든다. 분명히 배가 부르게 만두국을 먹었는데도 채반에 들기름 발라둔 만두가 자꾸 나를 부른다. 부엌을 들락날락 거리며 한두개씩 집어 먹던 만두는 더이상 늘어날수 없는 나의 위를 시험하듯하다. 절제 안되는 식욕으로 배가 부르다 못해 미련하게 느낄정도의 배부름이 아직도 선하다.


이쯤되면 야식으로 들기름 바른 만두를 후라이팬에 튀겨먹는 맛이란! 거절할 사람 없었다.

배가 너무 부르게 먹은게 후회될 정도로 버거워 했던 기억이 난다. 그 순간 내가 미련하게 느끼게 했으니 설날이 되면 거절 못하는 만두와의 전쟁에서 매번 패배자는 내가 되었다. 이 미련함이 거듭됨을 느끼는 순간 만두를 먹게되는 설날이 되면 싫었다. 또 절제못하게 되는 내가 되는게 싫어서 말이다. 그래도 그 맛을 놓을수가 없었으니...


고기를 뺀 만두소는 나를 위한 만두로.

따로 만들어 끓여주시는 수고로움은 오롯이 어머니 몫이 였다. 고기맛을 싫어하는 둘째딸의 입맛까지 챙겨주시느냐 애쓰신 어머니의 가마솥 만두는 설날에만 느낄수 있는 만두였다.


경상도가 시댁인 설날엔 만두를 빚지 않는다. 떡국만 해서 드시는게 새해 첫끼니라 하신다. 만두를 안빚어 수고스러움이 덜지만 뭔가 허전하긴 하다. 친정엄마의 고기빠진 김치만두가 그리운 올해 설맞이.

이젠 그렇게 많이 먹지 않아 섭섭해하는 친정어머니의 김치만두(입이 짧아 짐). 참기름 대신 들기름 듬뿍 넣은 만두맛이 이순간 그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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