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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맑고 향기롭게 Feb 03. 2022

"당신의 소망은 무엇입니까?"


2022년 설 연휴 마지막 날.


설날 눈이 온 덕에 고속도로 정체는 그냥 덤이었다. 8시간 넘게 걸린 귀경길의 여독이 늦잠을 동반하였으니, 시댁에서 긴장(날 편히 대해주시긴 해도 마음이 불편할 거란 어머님의 말씀)된 며칠 동안을 보상받고 싶은 마지막 연휴 아침이었다.


아침 준비는 어머님께서 하셔도 부엌에 한번 들어가서 인사도 드리고, 할 게 없다시며 나중에 설거지나 좀 해달라시는 어머님의 성화에 못 이기는 척 나와선 세수하고 아침상을 폈다. 그렇게 이른 식사를 하시는 부지런한 우리 시부모님의 일상 속에 잠시 머물다 오니, 오늘처럼 이렇게 늘어져 있음이 마냥 좋았다. 더 늘어지고 싶지만 마지막 연휴를 그렇게만 보내기엔 아쉬운 뭔가가 나를 일으켜 아침 부엌 불을 켜게 만들었다.


배가 딱히 고픈 것도 아니고, 아침을 대신해줄 뭔가를 찾다가 시댁에서 챙겨주신 음식들을 주섬주섬 접시에 담았다. 각종 전들과 남편이 좋아하는 어머님표 우엉김치, 아버님께서 한가득 뜯어오신 겨울바람 가득 품은 시금치들... 시금치의 단맛은 매서운 겨울바람 맛인 듯 달기만 했다. 마침 잠에서 깬 남편에게 소고기 한 덩이 썰어달라고 부탁했다. 바로 구워 김장김치에 먹기만 해도 아이들은 맛있다고 엄지 척을 해준다.


오후엔 배부르게 먹은 분식 덕에 반려견과 집 근처로 산책을 나왔다. 반려견 우유와의 산책이 반기는 건 아이들이었으니, 동네 한 바퀴 돈다며 가볍게 나온 산책길이 만보를 거뜬히 넘기게 되었다.


저녁 어스름이 짙어질 때쯤 집 근처 광진 숲 나루 근처의 달빛들이 우리를 반겨 주었다. 전에도 한번 왔던 기억이 첫째는 또다시 오고 싶다고 발걸음을 숲나로 공원으로 향하게 했으니, 어둠 속 빛들은 우리의 마음을 설레게 하기에 충분했다. 천사의 날개를 가진 벤치에서 한껏 뽐내며 앉아 찍어달라고 포즈도 취하고, 수백 송이 LED 빛을 아름답게 내뿜는 장미꽃들 속에 문구가 눈에 들어온다.


"당신의 소망은 무엇입니까?"


나의 소망은 무엇일까? 하며 무심히 주변을 돌아보는 순간, 사랑, 건강, 성공이란 문구가 눈에 들어온다. 살면서 성공이란 인생의 각자의 목표에 사랑하며 건강하게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삶 속에 나는 무엇을 원하는 것일까? 내가 생각하는 성공하는 삶이란 무엇인가? 성공은 과연 행복한 것일까? 하는 생각도 스쳐 지나가고 행복은 건강 없이는 덜 행복할 거 같은 마음도 들고, 사랑 없는 삶도 삭막할 거 같은...


달빛 속에 두 아이는 그림자를 만들어보고 예쁘게 찍어 달라며 여러 포즈를 취해준다. 지난번 빛 축제엔 미로도 있었는데, 셀로판지 같은 어둠 속 미로는 반려견 우유에겐 생소한 장소였기에 미로를 찾아 주인에게 오는 길 엉뚱하게도 막힌 미로로 달려오다 '쿵' 머리를 박았었다. 그 모습이 미안하기도 하고 우습기도 하고 귀엽기도 하여 다시 한번 아이들은 미로 속을 들어갔었다. 그러나 반려견의 반전이 있었으니, 다시 박을 줄 알았던 우유는 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았던 것이다. 그 미로 벽을 지나쳐 수수께끼를 풀듯이 출구를 찾아 나온 반려견의 모습에서 대견하고 기특하다가도 생각보다 똑똑하다며 머리 박게 한 상황이 더욱 미안한 순간이었다. 아이들과 우유의 머리를 쓰다듬어주며 아까는 일부러 그런 게 아닌데 미안하다고 사과도 보탰었다.


미로가 없어져서 둘째가 아쉬워했지만 미로쯤 없어도 깡충깡충 뛰어다니며 이 순간을 즐기는 두 아이들이다.


광진구에서 태어나 자란 아이들은 커다란 놀이터 같은 어린이대공원이 키웠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동물원에 코끼리, 사자, 호랑이 같은 맹수는 물론 재주꾼 원숭이, 귀여운 토끼, 염소, 미어캣 등등의 동물들도 볼 수 있었고, 봄이면 벚꽃들이 반겨주고, 여름이면 푸르름이 한가득 공원 아이들을 품어주니, 가을이면 노란 낙엽들은 놀러 오라고 손짓하는 곳, 겨울이면 여백이 주는 나무들 사이로 산책하기 정말 좋은 곳이 가까이 있다는 것만으로도 선물 같은 곳이다.


또한, 아차산이란 새해 해맞이를 하는 곳으로 제법 많은 등산객들이 찾는 산도 가까이에 있다. 아이들도 등산하기 무리 없을 만큼 등산코스는 완만한 편이지만, 아차산성 같은 유적이 가까이에서 있다는 것만으로도 아이들에게 들려줄 바보온달과 평강공주의 설화 같은 이야깃거리도 우리 지역의 자랑거리가 되고 있다.


제법 어둑해진 뒤에야 집에 돌아온 아이들과 산책하기 좋은 오늘 하루였으니, 찬바람이 막을쏘냐!


추우면 추운 데로, 더우면 더운 데로 바람의 냄새를 맡으며 즐겁게 산책을 즐기며 돌아오니 아이들도 다시 일상으로 준비하는 저녁시간이 되었다.



그렇다!. 나의 소망은 매 순간 작은 행복이 자주 찾아와 주는 것이다. 일상에서 느끼는 소소한 행복들의 감사함을 느끼게 해 주고, 작은 행복들 속에 각자의 맡은 일을 충실히 해나가는 삶이 내가 소망하는 것이다.


산책하며 나누는 이야기도 더할 나위 없이 즐거운 순간이니, 꺄르르르 웃던 아이들의 웃음소리가 깊은 밤 귓가에 여전히 들리는 듯하다.


작은 행복이 자주 찾아와 달라고 달빛에 기대어 소망을 빌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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