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맑고 향기롭게 Feb 04. 2022

잡채가 뭐라고!

원 없이 먹고 싶었던 잡채

친정엄마는 손이 느리신 편이다. 친정엄마의 음식 솜씨는 어릴 적 친정아빠의 밥상 투정으로 어느 정도 가늠이 되었던 때가 있었다. 아빠의 밥상 투정은 어린 내가 듣기에도 불편함이 있었고, 적응하기 위해 나도 모르게 부엌일을 자주 접하게 되었다.


겨울이 제철인 냉이는 텃밭에 호미와 씨름 끝에 뿌리까지 온전히 뽑아야 왠지 더 맛있을 거 같았고, 김장독 옆에 자리 잡은 땅속 무 창고에서 기다란 괭이로 겨우겨우 꺼내 뭇국을 끓어야 무맛이 싱싱함 그대로 간직한 거 같았다. 밭에서 냉이를 한 소쿠리 캐어 오면 할머니랑 마주 앉아 냉이를 다듬는다. 응차 당연한 일인 듯 할머니와 누런 냉이를 다듬고, 찬물에 박박 씻어 냉이 된장국을 끓이면 친정아빠는 맛있게 드시며 좋아하셨었다.


친정엄마의 부재는 5남매 경제활동에 매달려야 하셨고, 손주들 케어로 육아와 살림은 오롯이 할머니의 몫이기도 했다. 어린 내가 도와 드릴 수 있는 건 도와드리려고 했던 철이 일찍 들어버린 나이기에 부엌에서 할머니와 함께하는 시간이 자연히 많아졌다.


어린 내가 명절이면 먹고 싶었던 음식 중엔 잡채가 있었으니, 우리 집 차림상에선 볼 수 없었다. 간혹 친구가 도시락 반찬으로 싸오거나, 놀러 간 친구 집에서 먹던 잡채가 먹고 싶던 어느 날, 할머니께 잡채를 해 먹자고 했다. 할머니께선 손이 많이 가는 잡채라 할 수가 없다고 하셨다. 퇴근하고 돌아온 엄마한테도 졸라보았다. 잡채를 해달라고... 엄마는 할 줄 모르다고 딱 잘라 말씀하셨다. 음식 솜씨에 늘 약자인 엄마는 시도도 안 하신 거다. 해도 맛이 없을 거란 생각에 맛있게 할 자신이 없으셨던 엄마다. 그렇게 잡채에 대한 갈망을 가지고 있었던 나이기에 잔칫집 가면 잡채를 꼭 먹곤 했다. 다 커서도 결혼식이나 돌잔치를 가면 잡채를 제일 먼저 담았던 나였던 것이다.


결혼하고 나서야 잡채를 처음 만들어 보기 시작한 나는 먹고싶을때마다 만들어 먹곤 한다. 손은 가지만 어려운 잡채는 아니었는데, 친정엄마께서 왜 이걸 이리 겁내 하셨을까? 손이 느린 탓에 잡채를 하고 나시면 다른 일이 뒤쳐져 아무것도 제대로 한 게 없다 생각하신 엄마여서 그런 거 아니실까? 여전히 친정엄마는 잡채를 안 하신다. 다만 내가 만들어 드린 잡채가 맛있다고는 하신다.

잡채가 뭐라고! 이리 겁내 하셨을 엄마일까? 할머니입장에서 곰곰이 생각을 해보면 엄마의 음식솜씨는 늘 못마땅하셨을 것이다. 자연스레 엄마께선 음식에 늘 자신없어하셨고 해도 맛이 없다고 단정 지으시고, 멋쩍어 괜시레 웃으시는 친정엄마이셨다.


"엄마가 해주시는 맛은 엄마대로 맛있는데 엄마 음식이 맛없다고 생각하지 않으니까 걱정 마시고 뭐든 주세요~ 잡채는 제가 앞으로 해드릴께요~!"


올해로 팔순이신 친정엄마의 주름살이 왠지 더 깊이 파여 보이는 건 왜일까? 언제나 내가 해드리는 건 다 맛있다고 칭찬을 아끼지 않으시는 엄마가 있어서 정말 좋다. 내가 든 음식이 정말 맛있는지 알고 착각하는 나일 수도 있지만 엄마의 칭찬에 부엌일을 뚝딱하는 내가 되었다. 나에겐 할머니의 바지런함과 엄마의 바지런하지 못함이 둘 다 공존한다는 사실.


작가의 이전글 "당신의 소망은 무엇입니까?"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