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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맑고 향기롭게 Feb 11. 2022

화롯불에 구운 김이 그립다.

2살 터울 남동생은 자다가도 '김 먹자~' 하면 벌떡 일어나는 아이였다. 적어도 고등학교 때까지 말이다.

아궁이에서 벌건 숯을 샵으로 화로로 옮겨 담는다. 화로 가득 담긴 숯불은 이글이글하다. 저녁밥을 다 먹고 엄마께서는 김을 굽자고 나를 부르신다. 적어도 내게 내민 김은 100장은 족히 되었다.


들기름반, 식용유반 섞은 김 바르는 통에 붓고 김솔로 슥슥~골고루 바른다. 소금으로 무심한 듯 무심하지 않은 듯 골고루 뿌려져라~! 톡톡 뿌려준다. 기름을 얼마나 발랐을까? 기름통에 다시 들기름에 식용유를 충전한다.

엄마와 호흡은 제법 잘 어울린다. 순식간에 100장 다 바른 김은 쟁반에 차곡차곡 챙겨둔다.


밥 먹는 사이 뽀얀 재로 변한 숯들은 부지깽이로 들춰 아직도 무사한 숯들을 확인한다. 적당히 뜨거워야 김도 타지 않게 구울 수 있다. 또 한 번 엄마와의 분업이 조화를 이룬다. 석쇠를 올리고 김들을 앞뒤 맛있게 구워준다. 형광들 불빛에 비추어 푸르른 색을 띠면 익은 거다. 요리조리 중간중간 확인하며 구운 김을 쟁반에 차곡차곡 쌓는다. 구운 김들은 제법 부피가 높다. 만든 중간중간 뜯어서 맛도 보고 맛있는 김맛에 부엌은 온통 뿌옇게 변해 눈이 아픈지도 모른다.


양손은 기름에 소금에 아직 끝나지 않은 김과의 전쟁은 이제 막 바지를 향한다. 적당한 장수를 손에 잡고 가위로 자르면 끝이 보인다. 싹둑싹둑 자라서 커다란 위생봉투에 담아둔다. 100장 되는 김은 부피가 어마어마하다. 위생봉투에 자른 김을 적당히 담아도 4,5 봉지 나온다.


지금은 급식을 하지만 도시락을 두 개씩 싸고 다녀야 했던 고등학교 시절 도시락 싸는 일이 보통일이 아녔을 것이다. 매일 도시락 반찬을 걱정하시는 엄마는 하루에 6개씩 싸야 하셨고, 구운 김은 며칠은 거뜬히 반찬으로 가져갈 수 있었으니, 김 굽는 일은 반찬 걱정으로부터 한시름 놓게 해주는 일이 되었다. 남동생은 구운 김을 참 좋아했다. 지금도 김 좋아하는 남동생이지만 이상하게 김만 보면 난 그때 잠들었다 깨어났던 동생이 생각난다.


집 근처 반찬가게가 오픈했다. 유 퀴즈 전 청와대 대통령 총괄 세프 천상현

티브이에도 나왔다고 오픈과 동시에 동네 사람들 다 모인듯하다. 얼마 이상을 사면 사은품으로 준다는 곱창김. 저녁시간 곱창김을 자르고 소분하여 랩으로 돌돌 말아 두었다. 도시락을 가지고 다니는 남편을 위해 반찬을 미리 준비하는 마음이 그때의 나로 돌려준듯하다.

다시 그때의 김맛으로 돌아갈 수 있을까? 화롯불 불맛을 이길 수 없겠지만, 추억의 구운 김을 잠시 그려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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