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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맑고 향기롭게 May 16. 2022

감자옹심이

내가 먹은게 나를 만든다.

내가 태어난 고향은 강원도 강릉. 어릴적 감자는 지겹도록 얄미운 채소였다.

절기로 하지가 되면 친정아버지께서는 감자를 한두포기 캐어 오셨다. 얼마나 익었는지 중간 점검 차원에서 감자를 캘 시기를 정하셨다. 아직은 하지가 되려면 한달여 남았지만, 한창 감자가 5월의 푸르름을 만나 씩씩하게 자랄 시기이다.


감자가 주는 정서적 맛이랄까? 그땐 몰랐던 자연스레 스며 들었던 맛을 첫째 임신으로 되살아났다. 감자를 즐겨 먹지 않았지만, 감자와 가까이에서 감자조림은 물론이며 감자떡, 감자부침, 감자가루 등등의 다양한 형태로 감자에 둘러싸여 자라온 식재료. 그렇게 스며듬에 몰랐던 감자. 한때는 애증같았던 감자이야기를 늘어놓자면 또 한세월 풀어놓을수도 있을 이야기들이 차곡차곡 쌓여있다.


세월의 흐름은 어느덧 학생의 신분에서 성인으로 사회인으로 날 데려다 놓았고, 잊혀있던 감자도 생각이 뜸할쯤 첫째를 임신한 직후 감자를 찾기 시작한 나의 입덧에 놀라움이 지금도 생생히 기억된다. 감자농사에 애증을 담아 꼴도 보기 싫은 적이 한두번이 아니였건만 극한의 상황에 감자를 찾아 그맛을 느끼는 순간 입덧은 잠시 수그러들고 나를 안정시켜주던 그 감자가 그땐 참 고마운 순간이였다.


자극적이지 않으면서도 밍밍하게 느낄수 있다면 충분히 그럴만한 맛의 폭신함. 감자를 갈아 새알심처럼 빚어 끓이면 감자옹심이가 완성 된다. 쫄깃한 식감에 뜨거운 옹심이 입에 물고 어쩔줄 몰라 도래 뱉어내기도 했던 옹심이가 나도 모르게 고향의 음식이 되어 버렸다.


내가 먹은 음식이 오늘의 나를 만들어 주고 있었다. 어릴적 애증같았던 감자가 입덧이라는 극한의 상황이 되었을땐  나를 위로해 주고 있었다. 감자를 갈아 감자부침과 옹심이를 한입 먹는순간 사르르 사라지는 듯한 입덧의 고통에서 나를 해방시켜 준다고 해야할까? 그순간 참 고마운 감자였기에 잊을수 없는 기억이다.



오전에 간만에 여유가 생겼다. 올해 11살 둘째의 친한 친구 엄마와 차한잔의 여유를 즐기며 수다 삼매경에 허기가 질때쯤 카페 근처 감자옹심이 집이 눈에 들어왔다. 과연 고향의 맛을 느낄수 있을까? 만은 서울 하늘아래 감자옹심이를 먹을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좋다.


옹기 그릇에 소박하게 올려진 김가루가 그냥 좋았다. 감자의 전분으로 다소 걸죽한 국물 한숟가락 떠 넣으니 일교차로 코감기 기운이 살짝  맴돌던 맹맹한 순간이 사르르 녹아버리는 기분이였다. 뜨거운 옹심이 한알 입에 물고, 역시나 옹심이 옹고집이 느껴질만한 뜨거움이여. 꼭꼭 눌러 동그랗게  만들었을 옹심이 한알에 담긴 뜨거운 온기에 호호 불어가며 한알씩 한알씩 추억을 먹고 있다.


감자가 주는 아주 특별한 맛은 없지만, 소박하면서도 자극적이지 않은 그대로 감정에도 맛에도 기복이 없는 평온한 맛이 난 그저 좋다. 이 맛을 어릴적부터 기억해온 미각의 세포들이 나이가 한살 한살 들어가면서 더 또렷해지는 이유는 무얼까?



내가 먹은 음식이 오늘의 나를 만들어 주었다. 그렇게 소박하게 오늘 하루도 고운햇살에게도 감사함을 전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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