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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맑고 향기롭게 May 19. 2022

할머니의 어묵볶음

어묵볶음은 내게 넘 어려운 밑반찬이다.

간장베이스로 볶기도하고, 고춧가루 넣어 붉게 볶기도 하는 어묵볶음은 어릴적 최고의 반찬이였다. 적어도 40년여 전쯤..


없는살림에 독수리 오형제는 똘똘 뭉치기나하지. 우리 오형제중 맏이인 언니와 둘째 큰오빠와 함께 한 학창시절은 언니오빠 고등학교 끝트머리 어디쯤 조각의 기억으로 아주 작게 남아 있을뿐. 일찍 사회에 나간 언니,큰오삐와 밥상에서 싸울일은 없었다. 식사시간도 다르고 함께 밥을 먹을 타임을 번번히 놓쳤으니 말이다.


내 위로 두살터울 작은오빠와 두살터울 남동생 사이에 난 늘 박터지게 씨웠다. 두남자 사이에 어여쁜 공주처럼 새초롬히 자랄수 없는 현실속 난 들과 산으로 총싸움이며, 솔방울싸움으로 전쟁놀이에 열을 올렸으니 선머슴과 같이 논다고 할머니께 꾸중아닌 꾸중을 밥먹듯이 들었다.


언니와 큰오빠를 제외한 셋은 밥상 앞에서도 불을 켰다. 그중 여자라는 이유로 밥상에 수저 올리고 반찬나르는 일은 거의 도맡아 한 나로선 응당한 댓가도 바랄터. 아무것도 하지않은채 밥만 먹기바쁜 작은오빠와 남동생이 얄미웠다.


권위적이진 않았지만 다소 가부장적 환경속에 설거지 또한 내가 거들지 않으면 잔소리 맞기 일쑤였으니 밥상 앞에선 은근히 여자역할이 따로 있다는듯 나를 가르치시려던 할머니.


하루는 저녁반찬으로 어묵과 묵은김치를 섞어 볶은 어묵김치볶음이 올라왔다. 휘둥그레 어묵만 골라먹던 내게 눈물 쏙 빠지게 혼을 내셨다. 밥상머리 예절을 가르치시던 할머니의 깊은 속뜻을 알리없는 난 그이후 세상 입맛과 문을 닫았다.


그리고  입짧은 아이로 자라게 되어버린 난..무슨말을 들었는지 기억도 안나는 말들에 상처가 되었던 모양이다.그럴거면 맛있게 볶아주시지 말지..골라먹는 못된 버릇 고쳐주시려던 할머니께 호되게 혼난 이후 미식의 세계는 거리가 멀어져 버렸으니...


그날의 어묵김치볶음속 어묵맛을 좀처럼 잊을수가 없다.

어묵볶음은 그리고 내게 넘 어려운 반찬이 되어버렸다.

그때의 그맛을 다시 느낄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그 맛을 다시 먹어볼수 있다면...그맛을 느낄수없기에 늘 어묵볶음이 내게 가장 어려운 반찬이다.


점심에 김밥이 천국스러운 분식집에서 한끼를 해결하였다. 밑반찬으로 나온 어묵볶음을 한입 먹으니 그때 그맛에 90프로?정도 맛이 나는거같아 반가웠는데..내가 변하는걸까? 그때 그맛을 오롯이 느낄수 없어 10프로 아쉬움을 전해본다.


할머니의 호된 밥상머리 교육에 반찬은 뒤적이지 않게 먹는다. 그것또한 예의고 같이 밥먹는 사람들에 대한 배려가 아닐까 싶다.


삼십년이 훌쩍 지난 할머니의 잔소리도 어묵볶음도 여전히 그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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