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년 10월초면 수확마친 논에 물을 빼고 비닐을 덮어 마늘 씨앗을 심으시고 이듬해 5월말 6월초에 수확하게되는 이모작을 하고 계신다.
시댁은 대프리카 지역으로 유명하다보니 마늘 뽑을 시기가 돌아올때면 명절 지낼 생각보다 더 두렵다.
일년에 한번 도와드리는게 뭐가 어렵냐고 결혼초엔 부모님 도와드리는거 당연하게 생각했다. 이 생각엔 여전히 변함이 없건만 몸이 힘든건 사실이다.
절기는 하지를 향하는 요즘 해는 점점 빨리뜬다. 더워지기전에 이른 새벽부터 마늘밭으로 나가야 한다는 말이다. 서울서 아무리 빨리 달려가도 점심때가 되어야 도착하는 대중교통은 점심시간쯤 되어서야 시댁에 도착하게 된다. 부랴부랴 밥을먹고 나갈 준비를하고 마늘밭으로 나간다.
정오를 지난 초여름의 햇볕은 아직 받을만 했다. 가끔 불어주는 살랑이는 바람이 참 고마운 순간이기도 한다. 투덜거리는 성격도 아니기에 묵묵히 내가 잡은 이랑의 마늘들을 뽑아 눕힌다. 올해는 그래도 제법 잘뽑혀 그것만으로도 다행이라고 여기며 앞으로 전진한다.
마늘밭 13년차
초반엔 농사일엔 외국인 근로자를 쓰지 않아도 되었다. 마을 사람들이 돌아가며 품앗이도 가능했는데 돌이켜보니 그때도 나이드신분들 뿐인지라 지금은 그분들 자리에 외국인 노동자들이 없이는 불가능하게 되었던 것이다.
이번 마늘뽑기도 외국인 노동자들의 스케줄에 맞춰 한주 먼저 뽑게 된 것도 농사일의 현실을 보여주고 있었다.
코로나이후 외국인 노동자들의 몸값은 날로 뛰고, 웬만하면 자식들 불러다 하라는 인력시장의 사장님 말에 아버님도 많은 근심이 앞서는듯 하셨다.
안쓰던 근육들을 소환시켜 양손으로 뽑다가도 왼손으로만으로 뽑기도하다 오른손으로 뽑기만하다 힘듬을 느낄쯤 저녁시간이 다 되어 일단 내일로 기약하고 일어선다. 온몸이 뻐근하다. 쪼그려 앉아있던 자세는 어느순간 마늘밭을 엉덩이로 쓸고 있으니 온몸은 흙밭에 굴러 흙먼지로 가득하다. 최대한 흙먼지를 털고 집안으로 들어왔다.
깨끗이 씻고나니 이른 아침부터 달려온 여정에 뻐근함이 보태어 그대로 눕고만 싶다. 입맛도 상실하게 하는 고된 농사일에 좀처럼 적응이 안된다. 이런 내 상태를 시어머님은 아무것도 하지말고 쉬라고 하시며 날 이해해주시려 하신다.
'평생 이 일을 하는 나와 어쩌다 한번씩 하는 네가 같냐'며 어머님 당신이 힘든것도 맘껏 티를 내지도 못하시니 말이다.
요령피우지도 못하고 일하는 내입장에선 어머님의 이런 말씀에도 더 열심히 도와드려야겠다란 생각만 들뿐이다.
어찌 잠든지 모른채 달그락 밖에서 소리가 난다. 일어나보니 새벽 5시반. 어머님은 일꾼들 올 시간이라시며 일찍 마늘밭으로 나가셨다.
밖은 환하게 아침을 알리기 직전의 고요함이다. 살짝 안개도 껴있어 보이는 날씨는 직감적으로 오늘 덥겠구나를 예고한다. 잠들어있던 남편을 깨워 간단히 밥을 먹고 이내 밭으로 나갔다.
마늘밭에서의 시간은 좀처럼 더디게 가는듯하다. 전날 했던거에 비하면 확실히 뽑는 속도도 느리다. 노동에 있어 힘의 분배조절 실패를 느낀다. 전날 '많이 도와드려야지'란 과욕이 부른 더딤이다. 그래도 요령피울 시간도 없다. 오후 막차타고 다시 서울로 가야하기에 마음도 조급하다.
그래도 이번엔 남편이 하루 더 휴가내고 도와드리고 올수있다고하니 그나마 덜 죄송할뿐이다.
올해도 어김없이 마늘과의 전쟁에서 어쨌든 또 시간은 흐르고 있다는것을...깨닫는다.
주말이라 학원숙제를 한껏 들고온 첫째아인 제대로 집중할수없다며 못다한 숙제에 부담을 느끼며 속상해했다. 아이의 이런 투정도 뭐라 할수도 없고, 일상으로의 복귀를 위해 서울로 가는 버스를 기다리며 엄마의 얼굴을 본 첫째가 또 한마디 한다.
"엄마 얼굴에 오늘 하루가 보여요."
아이의 이 한마디가 왜이리 위로가 되던지 뭉클해진다.
평생 농사만 지으신 시부모님의 얼굴은 더 짙고 더 굵은 주름이 어떻게 살아오신 모습을 말해주고 있으니 시부모님의 부지런함과 성실하심은 늘 존경하는 부분이기에 아이앞에서 힘들어 보여도 부모님 앞에선 힘들다란 티를 덜 내야겠다란 생각도 문득 들었던 순간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