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년 봄이면 국민학교 교문앞에 "삐약삐약"소리가 하교길을 반겼다. 발걸음은 삐약소리로 향하고, 아이들이 한 아주머니 앞으로 옹기종기 모여 앉아있다. 네모난 상자엔 노오란 개나리꽃 색을 한 병아리들이 울어대느냐 다소 시끄럽기까지 한 기분이다.
빼곡히 들어앉은 병아리들은 삐약삐약 소리로 자신의 존재를 알린다. 목청껏 울어대는 병아리들 사이로 졸고있어 보이는 병아리도 있고, 상자밖을 뛰어 오르려는 병아리, 날개를 퍼득이며 두리번 거리는 병아리, 제각각의 모습으로 자신이 어디로 팔려갈지 모른채 상자안에서 봄을 맞이하고 있었다.
내 위로 두살터울 작은오빠는 병아리를 제법 잘 고른다. 그 상자안에서 가장 씩씩해 보이는 병아리를 잡아 두다리를 잡은채 거꾸로 뒤집는다. 퍼드득 날개짓으로 생존본능을 표현한 병아리를 골라 집으로 데려왔다. 간혹 거꾸로 들었을때 힘없이 축늘어지는 병아리는 제외다.
며칠에 걸쳐 데려온 병아리가 대여섯마리. 집안가득 삐약삐약 울어댄다. 안방 한구석 종이상자로 집을 만들어주고 병아리 모이도 넣어주고 물끄러미 들여다 본다. 어미를 찾는걸까? 울음소리는 그치지 않는다. 그무렵 우리집은 고양이를 키웠었다. 호시탐탐 이 작고 노오란 병아리가 고양이의 목표물이 되었다. 잠시 한눈판 사이 병아리 한마리를 물고 도망가는 고양이. 삐약이는 소리는 짧고도 간결하게 뚝 끊겨 고양이 입에 물려 시선에서 벗어난다. 달아나는 고양이를 쫓으며 병아리를 구해보려 하지만 이미 삐약이는 소리가 들리지 않는다.
그렇게 적자생존같은 환경속에서도 자라난 병아리들중 영계를 거쳐 제법 큰 닭으로까지 성장한 병아리가 성별이 수닭이란걸 알게 되었을땐 초여름을 향하고 있었다. 더이상 삐약삐약 거리지 않는다. 대신 새벽을 누구보다 먼저 알려주는 "꼬끼오"로 변성되었다. 새하얀 깃털에 빠알간 닭벼슬이 제법 멋있게 컸었다.
어릴적 봄을 생각하면 노오란 깃털의 병아리들이 생생하게 기억이 된다. 그리고 죽음으로 이별도 겪으며 삶에 있어 만남도 이별도 죽음도 슬픔도 유년시절 겪었을 감정들을 있는 그대로 맞이 하곤 했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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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년하고 한달을 키운 작고 꼬물꼬물함이 매력이 였던 햄스터가 지난주 금요일 죽음을 맞이했다. 동물병원을 다녀온지 일주일만에 결국 이 작은 힘으로 견딜수없는 고통을 느끼며 생을 마치고 말았으니 보다 오래 같이 있을수 있을거란 기대보다 일찍 이별한 죽음이 내 책임같아 미안하고 맘이 아팠다.
아이들 저녁밥을 먹이고 들여다본 머랭이는 자신의 집밖에서 나와 웅크리고 있었다. 평소같으면 숨어있기 바쁜 머랭이가 밖으로 자신의 존재를 오롯이 알리는건 이상한 일이였다.
살며시 들어 내 손바닥에 올리곤 다른 한손으로 쓰담쓰담 해주니 힘겹게 눈을 껌뻑이듯 두어번 떴다감았다 했다. 그리곤 크게 숨을 내쉬고는 더이상 숨을 쉬지 않는다. 자신의 죽음을 본능적으로 인지한듯 내게 마지막 인사를 해주기라도 하려고 나온게 아닌가 하는 생각도 스쳤다.
두아이 모두 처음 느꼈을 죽음을 각자의 회복력으로 또 일상으로 돌아올테지만 언젠간 기억되리라 본다. 애정을 갖고 키우던 반려동물을 죽음으로 이별을 맞이한 감정을...
4계절을 함께 보낸 이 작은 생명이 주고간 희, 애, 락에 고맙고 감사함이였다,
다음엔 또 좋은 인연이 되어 만날수 있기를 바라며 아프다 영원히 잠들어 버린 머랭이에게 고맙고 행복했다고 전해본다.
"많이 사랑해 머랭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