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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타라윤 Oct 04. 2021

미안한데, 네가 보낸 이메일은 못 읽겠다.

착하기만 한 동료가 싫다.

직장에서 하루에 받는 이메일이 적으면 50개, 보통 100개 정도 된다. 가능하면 그날 받은 이메일은 당일에 모두 처리한다. 내리막길 자전거에 가속도가 붙듯이 일도 커뮤니케이션에 탄력을 받아야 진행속도가 붙는다. 나는 그런 속도감이 좋고 그럴 때 일이 재밌다.


그런데 이런 나에게 도전장을 내미는 친구가 하나 있으니 그가 바로 아디라는 친구다. 그에게 이메일을 받으면 서두만 읽다가 포기하고 다음 이메일로 넘어가버린다.

아, 진짜.. 도저히 못 읽겠다.


시간도 없고 바빠 죽겠는데 그의 소설을 읽을 수가 없다. 차라리 넘기고 다른 일로 가는 편이 낫다. 시간이 지나면 결국 그가 나에게 따로 메시지를 보내기 때문이다. 안타깝게도 이 문자 메시지도 거의 이메일 분량이다.


그래서 오늘 내가 그와 나눈 이야기의 핵심은 다음과 같다.


첫째, 그날의 할 일을 다 끝내지 못하면 찝찝하지만 그의 이메일 읽는 것보다는 덜 곤혹스럽다. 결국 그가 친절히 따로 연락을 준다는 것을 아니까 소설과 같은 이메일을 쓰면 나는 쉽게 포기를 한다. 솔직히 누군가 마감일을 못 지키면 그 사람 책임으로 돌릴 일을 너무 착해서 본인의 업무시간만 늘리는 꼴이다. 그런데 이렇게 하면 일적으로 존경받기는 어렵다. 그냥 착한 동료로 남는다. 그 누구도 일을 미루는 것을 결코 즐기지 않기 때문에 일을 미루게 만드는 원인제공자를 좋아하기는 어렵다.


둘째, 본인의 이메일과 요청에 나 단 한 명이 아니라 거의 대부분이 답장을 안 하면 무엇이 문제인지 스스로 좀 고민을 해보았으면 한다. 내가 어떤 이메일을 보냈는데 상대가 묵묵부답인 것은 거절로 추정할 것이 아니라 종종 요청하는 내용이 명확하지 않아 답을 줄 수 없는 경우가 많다. 내가 원하는 것을 세상이 주지 않을 때 어떻게 다르게 해 볼까를 고민하면 좋겠다.


셋째, 의사소통에는 여러 가지 방식이 있다. 개인마다 선호하는 바도 다르다. 일을 잘하는 사람은 일 하다가 내 매니저가 만나서 구두로 보고를 넣고 설명하는 것을 좋아하시는 스타일인지, 이메일로 일목요연하게 정리를 해서 서류화 하는 것을 좋아하는 스타일인지 (그렇게 준비해도 그 자료는 들여다보지도 않는 사람인지)를 먼저 파악한다. 추가로, 여러 커뮤니케이션 방식은 그마다 장단점이 있다는 것을 기억하자. 이메일은 상세한 내용을 잘 정리해서 보관할 수 있고 메시지는 간단한 승인 요청에 오히려 적합하다든지 말이다. 적재적소에 써야 효과적으로 일할 수 있다. 나도 덜 피곤하고 나랑 같이 일하는 사람들도 덜 피곤하고 말이다.


착한 것, 사실은 이기적인 것이다.

그냥 착하기만 한 것, 사실 그게 훨씬 편하다. 착하다는 훈장 칭찬 같단 말이다.

원래의 나의 관습을 깨고 더 고민하고 생각하고 노력해서 한 발자국 더 나아가려는 것이 힘들다.

그러니 착한 데에 안주하는 것이다.

난 속으로는 착하고 겉으로는 냉철하게 일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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