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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타라윤 Oct 05. 2021

꿈은 이루어진다는 걸 안다.

10년 동안 꿈꿔본 사람들은 안다.

2006년 11월 혈혈단신 면접 몇 번 본 것이 전부인 회사,  단 한 번도 가보지 못한 나라에 도착했다.

첫날 직장 동료들이 이구동성으로 했던 말은

"넌 여기 처음 와보고 아는 사람도 없는데 그냥 온 거야? 넌 참 용감하구나."


이게 뭐라고 용기씩이나... 내 입장에서는 나는 그 외에는 다른 선택지는 없었기 때문이고 그들 입장에서는 모르는 나라에 덜컥 혼자 와버린 내가 대단할 법도 했다. 하지만 나에게는 당연히 황금열쇠로 느껴졌다. 난 이미 바닥을 치고 있었기 때문이다.


나는 대학은 삼수를 했고 그 대학도 정규대학(?)류의 것이 아니었다. 다행히 어떻게 어떻게 해서 여의도에 있는 회사에 들어갔다. 하지만 그것도 속을 들여다보면 통장 월급 80만 원이 통장에 찍히는 계약직이었다. 계약직 배지는 주홍빛이다. 정규직은 파란색. 계약직이 정규직이 되는 것은 거의 불가능에 가까웠기 때문에 다들 그 배지를 지울 수 없는 주홍글씨라고 불렀다. 한번 계약직은 영원한 계약직이라는 것이다. 계약이 갱신은 될지언정 정규직으로 전환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듣기만 해도 참 우울한 아이디어로 들렸다. 그렇지만 나는 철없는 20대였고 그냥 아침에 출근할 번쩍번쩍한 건물이 있다는 것만으로도 심히 행복했다.


그런 나에게 싱가포르에서 일할 기회가 생겼다. 뭐 이것도 완벽한 패키지는 아니었지만 나는 당연히 싱가포르행을 결정한다. 싱가포르로 가는 6시간 비행에서 나는 잠을 이룰 수 없었다. 그 6시간 동안 앞으로 싱가포르에 가면 어떻게 살지. 어떤 모습으로 이 회사의 사무실에 첫 발을 디딜지 앞으로 무슨 생각을 하고 살아야 하는지 생각과 계획을 끊임없이 했다. 이렇게 나는 회사원의 삶으로 인생이 점철되는 것인가 생각도 했다.


이직한 싱가포르에 있는 회사에 항공권을 요구한 나를 기특하다 여기며 (안 줘도 어떻게든 마련해서 갈 생각이었다만...) 공짜 티켓으로 대한항공을 탔다. 기내식으로 비빔밥을 선택했고 으레 그렇듯 고추장이 나왔다. 이번에 싱가포르에 가면 언제 한국에 다시 돌아올 수 있을지 없을지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고추장을 넣지 않고 비빔밥을 먹고 고추장 튜브는 고이 챙겨 왔다. 가진 돈 딸랑 200만 원, 그것도 아빠가 친구에게 빌려서 해주신 돈이었다. 한 푼도 허투르 쓸 수 없다고 생각했다. 고추장, 나중에 혹시 먹고 싶을지 모르니까... 내 짐가방에는 회사에 가서 입을 옷, 앞으로 읽을 책들은 많았지만 먹을 것에 대한 배려는 전혀 없었기 때문이다. 지금도 먹는 것은 까다롭지 않은 편이다. 비위만 상하지 않으면 다 먹는다.


처음 오는 나라에 혹여나 내가 공항에 헤맬까 봐  회사에서 사람이 한 명 나왔다. 그녀의 이름은 Frieda 지금도 그녀는 나에게 항상 모범이 되고 힘이 되어 주는 친구이다. 나의 싱가포르 역사를 함께 했다고 해도 무방하다. 그녀가 나를 호텔까지 차로 데려다주었다. 저녁 늦은 시간이어서 내일 아침은 여기서 먹으면 된다고 주변도 알려주었다.  


그리고 다음날이 되어서 프리다가 말해준 호커센터에 가서 2천 원짜리 오리탕을 시켰다. 싸고 국물도 있고 고기도 있는 것 같고 오리는 건강식이니까 생각하면서 탁월한 선택이야! 주문을 했다. 내 영어 때문도 있고 어리바리한 것을 보고 호커센터 식당 주인은 싱가포르 처음이냐고 물어봤다. 다들 호의적으로 주문을 받고 음식이 나왔다. 신나는 마음에 국물을 한 숟가락 떴다. 너무나 죄송한 말이지만 토할 뻔했다. 뭔지 모르겠지만 역겨웠다. 아까 주인이랑 엄청 친절하게 인사하고 그랬는데 내가 밥을 다 안 먹고 가면 왜 그러나 궁금해할 텐데 그래도 어쩔 수 없었다. 먹을 수가 없었다. 돈도 아까웠고 속상했지만 결국 조금 앉아 있다가 (먹는 척하다가) 나와서 눈에 익은 세븐일레븐에 들어가서 싼 식빵 하나를 샀다. 그 식빵을 가지고 호텔에 돌아와 그 고추장을 발라먹었다. 여기는 식빵이 좀 많이 달다. 참 오묘한 맛이었지만 그래도 그렇게 배를 채웠다.


그렇게 나의 첫 식사와 싱가포르의 하루가 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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