싸움닭의 비애
그렇게 발을 디딘 싱가포르에서 영어도 제대로 모르고 고군분투하는 나의 하루하루가 시작되었다. 매일 회사에서는 약한 모습을 보이지 않으려고 애썼다. 못 알아들을 때마다 끝까지 붙잡고 물어봤다. 나의 영어실력이 현저히 떨어지지만 한국시장을 담당하기 위해 애초에 고용된 것이기 때문에 내가 영어를 못하는 것에 크게 주눅 들지 않으려고 했다. 그렇게 마음을 굳게 먹어도 혼자 비상계단에 가서 울고 앉아있는 일이 잦았다. 내가 영어를 못하니 네가 쉽게 설명을 해줘야지!라는 논리로 나는 싸움닭이 되어갔다.
주어진 일을 못한다는 것은 나에게는 생사가 달린 일이라 나는 안되면 싸울 수밖에 없었다. 오히려 말을 천천히 안 해주거나 쉽게 설명하지 않는 그 동료가 얄미워서 혼났다. 정말 치사하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우리 둘 사이에서 큰 소리가 나면 무슨 말인지 잘 못 알아듣겠지만 결국 그 친구는 매니저에게 이렇게 말했다.
타라가 몇 번을 설명해줘도 못 알아들어.
내가 이렇게 말해줬단 말이야.
다른 사람들은 나에게 측은지심이 들었는지 별말하지 않았다. 결국 일은 진행되어야 하니까 매니저가 나에게 설명을 해준다. 그렇게 매니저가 나를 앉혀놓고 설명을 해주면 난 그 말은 알아듣겠더라. 그러니 자꾸 그 친구에게는 조금이라도 나에게 설명을 그지같이 하면 나는 정말 가만히 있지 않았다. 심지어 내가 가르쳤다. 이렇게 말해줬으면 알아들었잖아! 라고.
"나는 결코 멍청하지 않고 영어를 심각하게 못하는 것이 아니다"라고 스스로에게 말하며 지지 않으려고 애썼다. 회사 밖에서 만날 때는 둘이 같이 스티커 사진도 찍고 재밌게 지내지만 일할 때만큼은 내가 못 알아듣게 말하면 난 가만히 있지 않았다. 진정한 앵그리버드였던 것 같다.
내 생각에 처음에 그 친구는 나를 영어도 못하는 일반 외국인 노동자로 대하려는 생각이었을 거다. 싱가포르의 560만 인구 중에 140만 (25%)가 외국인 노동자들이고 그들의 대부분이 2차 산업 종사자이다. 아마 그정도로 나를 생각한 것이 아닐까 싶다. 중국에서 온 동료가 있었는데 그 친구는 명백히 부당한 업무 요구에도 항상 군말 없이 일했었다. 하지만 나는 태생적으로 그렇게 고분고분한 성격이 못 되었다. 그녀는 결국 내 성격을 인지하고 그런 일이 일어나지 않게 주의했고 나도 그 친구에게 눈치만 주고 어느 정도 선이 잡힌 뒤에는 일을 크게 만들지 않았다.
나는 내가 이 게임에서 내가 존중받지 않으면 더 많은 날들을 비상계단에 앉아서 울게 될 것을 알았기 때문에 한 발자국도 그녀에게 양보할 수 없었다. 이 방법이 좋은 방법이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다만, 나는 그때 생존하기 위해 발버둥을 쳤을뿐이다.
너의 자존감, 존재가치는 네가 아니면 그 누구도 지켜주지 않는다.
누군가 너를 존중하지 않을 때 그런 태도를 네가 용납하지 않으면 그 누구도 너를 그렇게 대할 수 없다.
나는 부족하니까, 내가 못 알아들었어.라고 네 스스로 너를 꾸짖지 마라.
세상에 너를 보호할 사람은 너 하나다.
source of the photo: https://www.onegreenplanet.org/animalsandnature/5-shocking-things-you-didnt-know-about-cockfighti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