옷을 세탁기에 넣을 시간만 있으면 그것으로 충분했다.
처음 회사를 다니기 시작했던때에 아침에 지하철 첫차타고 출근하고 지하철 끊기면 집에 택시타고 퇴근하기가 일쑤였다. 대단히 바쁘거나 업무가 많았던 것은 아닌데 그냥 일을 할 줄 몰라서 그렇게 했다. 나는 패션에 신경 쓸 수도 없고 쓰지 않아야 일을 더 잘하고 잘해보인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거의 정글에서 바로 나온 수준으로 하고 다녔다. 결국 차장님께서 한소리 하셨다. 오죽 깔끔하게 하지 않고 다녔으면 그러셨을까 싶다. 바로 원피스를 10벌 사고 미용실을 예약을 했다. 원피스는 상의, 하의 매칭을 신경 안 쓰고 그냥 입고 지퍼 올리면 끝이니 얼마나 효율적인가? 그때를 떠올리며 구글에서 살아남을 패션 전략을 짰다.
내 생각일 뿐이지만 웬지 느낌에 구글러들은 다들 유학은 기본이고 집안 배경도 좋고 여유가 있어 보였다. 최소한 나는 겉보기에 그들과 다르지 않아서 모양새로는 구분이 안 가게 해야 승산이 있다고 생각을 했다. 보기에 꾀죄죄하면 내가 무슨 말을 해도 듣겠는가? 나도 비슷한 목소리를 낼 수 있는 힘을 얻으려면 구글러스럽게 입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뭐 내용이 좋고 내가 능력이 뛰어나면 넝마를 걸친듯 무슨 상관이겠냐만은 나는 내가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하고 아쉬움을 남기지 않기도 했다. 패션도 그중에 하나다.
패션에서 제일 중요한 것은 신발이라고 생각한다. 신발은 옷처럼 많지는 않기때문에 더더욱 중요한 지표를 대변하기 때문이다. 힐을 신는 사람, 운동화나 단화를 신는 사람 다 이유가 있다. 우선 내 매니저와 다른 동료들도 신으면서 입이 마르게 칭찬하는 브랜드가 있는지 보았다. 화려하지 않으면서 충분히 편하고 격식있는 신발을 찾았다. 어차피 나는 패셔니스타가 될 생각은 아니였으니까 그렇게 큰 맘먹고 토즈에서 두 켤레를 사서 계약직 일년넘게 계속 그것들만 신었다. 그전까지 나는 한번도 명품브랜드에서 신발을 사본적이 없었다. 할인해서 샀지만서도 손 떨리는 가격이였다. 마젠타 컬러랑 블루 그렇게 두개를 샀는데 마젠타컬러 신발은 계약직 기간내내 구멍이 나게 신었다. 이런 브랜드의 신발은 구멍이 날때까지 신어도 그 자체가 멋이더라. 사진이라도 찍고 버릴걸 그랬다. 나와 매일 힘든 길을 함께 했던 신발인데. 할인해서 온라인으로 사느라 파란아이는 사이즈가 안 맞아 많이는 못 신어서 아직 내 곁에 있다.
신발은 됐고 옷이다. 어차피 나는 옷을 신경쓸 시간도 없고 실력으로 승부해야하니 복잡하게 생각하지 말고 타미힐피거에서 면으로된 셔츠를 5장과 바지 3개를 샀다. 그렇게 회사에서는 그것만 입고 신고 일만 했다. 매일 아침에 무슨 옷 입지 고민 안하면서 시간을 아꼈고 그러면서도 충분히 격식이 있으면서 활동이 편했다. 패셔너블하지 않았지만 그것은 내 전략이 아니였으니 상관없었다. 여기서 포인트는 다림질을 안하는데에 있다. 당연히 다려서 입으면 훨씬 깔끔했을 것이다. 그렇지만 나는 시간 vs. 실력중에 하나를 선택해야 했고 실력이 훨씬 나의 정규직 전환에 큰 영향을 미칠 것을 알았기 때문에 셔츠 입는 것에 만족하고 한번도 다림질을 안했다. 다만 면이여도 구김이 덜 가는 옷, 말릴때도 구김을 아예 방지하는 방향으로 잘 걸어 말렸다.
목표를 정했으면 나의 모든 생활 패턴, 숨쉬는 방법까지도 그것에 레이저포커스 되도록 해야한다. 버릴건 버리고 뒤돌아 보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