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엄마는 아니지만 개엄마도 엄마는 엄마 아닌가요?
나의 반려견 사랑이는 2020년 5월 25일생으로 이제 한 살 하고 7달을 살았다. 그중에 1년 4개월을 나와 보냈다. 처음 나에게 온 날부터 혹시 잠을 못 잘까 봐 불러주던 자장가를 어제도 불러주었다. 매번 가사를 다시 외워야겠다고 생각하면서 그냥 아무렇게나 불러대지만 사랑이가 그래도 좋아하는 것 같다. 그 노래를 들으면 잘 시간이라는 것을 이제는 알겠지? 자장가를 불러주고 나도 잠을 청하려고 누웠더니 내 옆으로 온다. 보통은 바로 자는데 뭔가 오늘 나의 사랑과 관심이 부족했나 싶었다. 그래서 사랑이에게 오늘 정말 잘했고 다 너무 예뻤다. 우리 멋진 사랑이 라고 말해주었다. 정말 그랬다. 운이 좋게도 사랑이는 정말 완벽한 강아지이다. 감사하다.
심지어 어제만해도 그렇다. 커피가 마시고 싶어 사랑이랑 커피숍에 갔는데 소나기가 내려 테이크 아웃하려다가 결국 주문한 커피를 옆 벤치에 앉아 마셔야 했다. 사랑이와 함께 비가 그치기를 기다렸다. 사랑이는 내가 책에 빠져있는 와중에도 너무나 얌전히 옆에 있어주었고 가만히 잘 기다려주었다. 너무 고맙고 기특했다. 엄마는 그런 것 같다. 아기가 숨만 쉬어도 기특하고 대단하고 잘하고 있다는 뿌듯함. 감사함. 이 아이에게 고마움과 경이로움. 어제 잠들기 전 사랑이를 쓰다듬으며 그런 이야기를 하고 있는 나를 보며 엄마 마음이 이런 걸까? 하는 생각이 잠깐 들었다.
이런 엄마의 마음을 생각해보니 우리 우리 회사의 워킹맘들이 새삼 더욱 존경스럽다. 대부분의 워킹맘이 그렇다. 일을 끝내주게 할 뿐만 아니라 일과 생활도 확실히 구분하여 퇴근할 시간에는 반드시 퇴근할 수 있게 일을 정리해둔다. 매우 명명백백하게 방향과 해야 할 일 및 우선순위를 제대로 파악하고 있어서 그녀들과 함께 일을 하는 프로젝트들은 마음이 놓인다. 그래서 항상 궁금했다. 어떻게 저렇게 둘 다 잘할 수 있을까? 내가 하는 역할이라고는 회사원, 딸 이 정도인데 그들은 회사원, 엄마, 딸, 부인 등등 이렇지 않은가? 그래서 그 회사 동료에게 물어본 적이 있었다.
"태미야, 넌 어떻게 그렇게 많은 일을 내가 보기에는 완벽하게 책임지고 하는데 어떻게 그렇게 할 수 있어? 나는 하는 것이라고는 회사일뿐이고 야근도 하는데 너는 아이들이랑 시간도 보내야 하잖아. 모두 다 잘하는 것 같은데 하나만 하는 나보다 나은 것 같아. 상대적 박탈감이 느껴진다. 비결이 도대체 뭐야?"
"아이가 생기면 인생의 우선순위가 달라져. 그래서 일을 반드시 5시에 끝내야겠다는 사명감이 생기거든. 그게 엔진인 것 같아. 그렇게 딱 결정 내리고 나면 그냥 그 안에 다 해버리는 거지. 나도 못할 때가 있어. 그러면 뭐 저녁 늦게 하면 되니까. 그래도 목표 자체를 5시에 마무리하고 오피스를 떠나는 걸로 일정을 잡아. 아이가 생기면 그냥 그게 그런 힘이 저절로 생겨."
그 때는 그 말을 이해하기가 어려웠다. 너무 어려웠다. 전혀 감이 오지 않았다. 그런데 사랑이를 내 아들처럼 키우다 보니 이제 아주 조금은 이해가 간다. 결국 이 아이는 나 없으면 아무것도 못하니까 내가 해줘야 한다면 반드시 그러한 시간적 여유를 무조건적으로 만들어야 하는 것이다. 사랑이가 오고 특히 처음 1년은 정말 힘들었다. 항상 내가 우선순위였던 나라는 사람은 강아지에게 (즉 나 아닌 다른 존재에게) 시간과 노력을 쓰는 것이 어려운 이기적인 존재였음을 깨우쳤다. 강형욱 훈련사님 덕분인지 뭔지 아는 건 많아져서 이미 내가 무엇이 최선인지 아는 이상 그 이하를 이 아이에게 해줄 수 없는 것이다. 하나의 생명이고 나에게 전적으로 의지해서 나에게 왔기 때문에 내 능력과 지식 안에서는 최선을 다하지 않는 것은 나에게는 있을 수 없다. 이건 타협이 안 되는 부분이다. 아이도 그런 마음으로 엄마들이 키우는 것 아닐까.
오늘에서야 드는 생각인데 이제는 왜 워킹맘들이 일을 잘하는지 조금은 알 것 같다.
첫째, 일만 생각하는 사람보다 더 큰 책임감이 있는 사람들은 (그게 무엇이던지 간에) 그 시간을 만들고 지켜내기 위해서라도 본인의 일을 제대로 하지 않을 수 없다. 나는 그게 사랑이이다. 사랑이가 마음껏 달릴 수 있는 운동장이 있는 데이케어 유치원에 보내고 (내가 일이 많은 날, 산책을 원껏 못해줄것 같은 날) 규칙적으로 미용을 해서 다른 사람들도 데이케어 선생님들도 예뻐하는 아이 (나는 사랑이가 어디 가도 예쁨 받았으면 좋겠다.)로 건강한 음식 먹고 조금이라도 안 좋으면 바로 동물병원 보내서 검사를 할 수 있게 하려면 내가 든든한 엄마로 우뚝 바로 서야 한다는 것이다. 무엇보다 나랑도 매일 공놀이하고 데이케어 다녀와도 나와의 산책은 또 별도인 (나의 사랑과 시간이 필요한) 사랑이를 위해서라도 일을 잘해두어야 한다. 일이 끝나야 사랑이랑도 마음 편히 천천히 산책도 할 수 있다. 아니면 형식적인 산책을 하게 된다. 그렇게 아이를 위해서 내가 더 나은 인간, 능력치 더 높은 사람이 되어야 하더라. 애가 생기면 이건 선택사항이 아니게 된다.
두 번째로 나는 사랑이가 뭘 해도 예쁘더라. 숨만 쉬어도 예쁘고 대견하다. 물론 가끔이지만 다른 강아지 보고 짖을 때면 진짜 내가 이걸 보려고 대학교 한 과목등록금보다 비싼 훈련사 선생님을 구하고 데이케어 선생님들에게 새해다 크리스마스다 선물을 하며 우리 아이 예쁘게 잘 봐달라고 했나 싶다. 그래도 내 옆에서 평온하게 마음 놓고 잠을 자는 사랑이를 보면 아프지 않고 오늘도 잘 보내준 것이 얼마나 고마운지 모른다. 하루하루 사는 것이 이 아이도 얼마나 고될까 싶다. 말도 안 통하지 요즘은 비 와서 놀지도 못하지 등등. 그렇게 엄마의 마음이 조금 이해가 간다. 우리 엄마도 내가 그냥 건강하고 회사원이랍시고 회사도 다니고 이제는 알아서 내가 밥 벌어먹고 사는 것만으로도, 나쁜 짓하지 않고 평화롭게 잘 살아주는 것만으로도 고마운 마음이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즉, 더 잘하기 위해서는 (outperform) 지금의 나의 모습을 받아들이는 것이 그 시작인 것 같다. 우리의 이상은 높다. 저기만큼 가고 싶고 아직도 난 왜 여긴가 싶고 더 잘하고 싶고 인정받고 싶다. 성공하고 싶고 행복하고 싶다. 아름답고 싶고 빛나고 싶다. 그런데 엄마에게 우리는 이미 그렇다. 사실 우리는 이미 멋진 존재들이다. 나에게 사랑이가 이미 너무나 완벽한 아이인 것처럼 나도 우리 엄마에게 이 이상 바랄 것이 없는 모습일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렇게 나의 모습을 받아들이고 나면 그 위에 노력을 쌓는 것이 가능해진다. 지금 나의 모습을 받아들이고 제대로 파악해야 그 위에 무엇이라도 올라가는 것이다.
혹자는 내가 강아지 키우면서 너무 오버한다고 말할 것 같다. 맞다. 내가 생각해도 나는 조금 과하다. 그런데 그 덕분에 많은 것을 느끼고 배워서 사랑이에게 고맙다. 무엇이든 본인이 최선을 다해봐야 거기에서 느끼는 바가 생기는 것 같다. 비록 그것이 멍멍이를 키우는 일일지언정. 이렇게 글을 쓸 수 있는 것도 이제 1년 반 사랑이랑 지내고 나니 이제 조금 여유가 생겨서 돌아볼 수 있게 되고 감사할 수 있게 되었다. 다시 한번 사랑이에게 고맙고 앞으로도 내가 잘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고마워 사랑아.
ps. 요즘은 처음보다는 가벼운 마음으로 키우고 있다. 처음에 경험 없는 초보맘이라 더욱 그랬을지도 모른다. (어렸을 때 키운 강아지들은 내가 키운 것이 아니라 엄마가 키워주신 것임을 깨달았다.) 그리고 나는 싱글들 강아지 안 키우기 홍보대사쯤 된다. 혼자 살면 강아지 키우면 안 된다. 절대로. 나는 지난 1년 동안 헬스장 운동도 한 번을 못 갔다. 그럴 정도가 아닌 싱글이라면 절대 강아지는 안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