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러링
29살 말에 한국으로 다시 취직을 해서 들어갔다. 곧 서른인데 싱가포르에 이렇게 있다가는 영원히 시집도 못 갈 것이 불 보듯 뻔했다. 싱가포르에서 집-회사, 회사-집하는 나에게 결혼은 먼 나라 이야기가 되었다. 어차피 영어로 연애하는 것은 도대체 어떻게 하는 건지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모르겠고 결국 나는 한국 남자가 나는 좋더라 라는 생각에 한국행을 결정했다. 결혼을 하던 연애를 하던 남자를 만나겠다는 의지 하나로 씩씩하게 싱가포르 생활을 다 접고 한국으로 돌아간 나는 한 달만에 다시 짐을 싸서 다시 싱가포르로 왔다. 그때 부모님께서 하신 말씀이 있다.
"타라야, 네가 처음에 싱가포르에 가서 적응하는 데에 시간이 걸렸던 것처럼 이제는 네가 여기에서 다시 적응하는 데에 스스로에게 시간을 좀 주어야 한다."
부모님의 그 조언을 들으니 더욱 돌아가겠다는 의지가 확고해졌다. 익숙해지고 싶지 않기 때문이었다. 마치 예전에 나의 꿈이던 미대를 그만둔 것처럼 나는 바로 사직서를 냈다. 미대는 미술 하고 싶은 사람들이 오는 곳인 줄 알았다. 최소한 나랑 비슷한 생각과 야망을 가진 사람들을 만나고 싶었는데 대부분 점수 맞추어서 온 학교였던 것이다. 이번에는 회사였다. 시간이 지나 익숙해져서 이게 괜찮다고 나를 토닥이는 지경에 이르면 그것보다 큰 일은 없기 때문이다.
나는 의지가 매우 약한 사람이다. 그렇게 똑똑하지도 않다. 그래서 주변 환경에 매우 영향을 많이 받는다. 그래서 이 환경이 나에게 좋은 것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면 바로 뛰쳐나온다. 나중에는 그런 생각과 느낌조차 없는 익숙함이 나를 그 환경에 잠식시킬 것을 알기 때문이다. 끓는 물속의 개구리(boiling frog)처럼 서서히 잠식되는 변화에는 인간도 개구리도 알아차리기 어렵다. 의지력이 약한 그래서 변화를 만들기 어려워하는 용기가 대단치 않은 나에게 그것은 끓는 물속의 개구리의 죽음과 같이 무서운 일이다.
나처럼 무언가 해보고 싶은데 꿈은 있고 이상은 있는데 어디서 어떻게 시작할지 그 길이 멀게만 느껴진다면 주변 환경과 사람을 다시금 환기시켜보라고 말하고 싶다. 인생에는 운명이라는 것이 있다고 한다. 내 생각에 정해진 운명과 팔자는 내가 내 인생을 주어진대로 살 때 가는 방향과 결과이다. 우리는 의도적으로 환경을 바꾸지 않기 때문이다. 내가 무언가를 갈구한다면 그 근처, 그 비슷한 사람, 그 무리, 그런 장소에 의도적으로 내가 있게 하라. 회사를 그만두라는 말이나 친구를 다 갈아치우라는 말이 아니라 온라인 소모임이나 내가 원하는 위치에 있는 사람들의 글과 sns 소통에 일부가 돼서 마치 그 사람이 내 주변인인 것처럼 내가 느끼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 환경을 바꿔라 그러면 다 바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