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는 지금까지도 나에게 길을 알려주시네.
엄마랑 한 시간반 통화를 했다. 요즘은 엄마랑 통화를 할 때마다 내가 중고등학교 때 속 썩여드린 것에 대한 죄송함에 대한 고백이 반복된다. 사랑이를 키우면서 내가 강아지도 이렇게 애지중지 키우는데 엄마는 나를 어떻게 옥이야 금이야 키우셨을지 그 마음이 아주 조금이나마 이해된 것이 시작인 것 같기도 하다.
엄마가 나를 업어 키우시면서 배달 다니신 것에서부터 지금도 우리에게 노후에 짐 안 지우고 싶으시다고 아직도 일을 하시는 엄마랑 이야기를 하다 보면 나의 뿌리와 내가 지금 해야 하는 일, 어떻게 살아야 할지가 더욱 명백해진다.
우리는 종종 내가 가진 것과 환경을 당연하게 여기고 경시한다. 나는 당연히 이 정도 누릴 자격이 있다고 생각한다. 편안함이 일상이 되면 약간의 불편함도 못 견디게 되며 나의 환경이, 내 지금의 위치가 나의 고된 노력에 따른 결과이니 당연히 내 것이라는 착각을 하게 된다. 엄마를 통화를 하고 나니 내가 지금 회사원으로 밥벌이라도 하고 누구에게 의지하지 않고 편하게 잘 먹고 잘 살고 있는 것이 사실은 내 노력의 산물이 아니였구나라는 것을 깨우치게 했다. 이 모든 것이 내가 이룬 것이 아니라 엄마랑 나랑 같이 만들어온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라는 결과물은 가족과 선배, 친구 등 다른 여러 사람의 도움과 노고 없이된 것이 아니다. 엄마는 "네가 잘했지."라고 하시지만 초중고 시절 내가 뭘 혼자 할 수 있었겠는가? 문제만 만들다가 삼수까지 하게 된 거지. 하지만 늦게까지 일하시고 새벽같이 기상하시며 모든 것은 정신력이라고 말씀하셨던 엄마, 그렇게 매일을 사셨던 엄마를 보며 자란 나는 원해서 노력하면 안 되는 것은 없다고 믿는다. 엄마가 그렇게 다 일구어내셨기 때문이다. 엄마는 항상 일하시느라 숙제를 봐주실 시간도 없으셨지만 직접 보여주시는 더 어려운 교육, 훈육을 해오신 것이 아닐까 싶다.
그렇기 때문에 지금 나의 편안함과 나의 안위가 다 내 것이 아님을 내가 얼마나 더 많이 겸손해야 하는지 반성이 되었다. 앞으로도 노력하며 열심히 산다고 해도 주위에서 도와주는 사람들 없이는 의미도 결과도 없을 것이다.
나의 사회적인 성공, 결과, 일과 커리어를 생각할 때 야망과 욕심에만 치중해서 내가 나를 피곤하게 한다고 느낄 때가 있다. 생각해보니 내가 가고자 하는 커리어, 성공의 이것들이 나를 움직이는 본질이 아니었다. 그것들을 쫓으면 결국 그 자리에 올라서도 허망함을 느낄 것이다. 내가 잘하고 잘 살고 싶은 이유, 나에게 살아가는 목적이자 인생에서 중요한 것은 엄마만큼 바른 정신으로 열심히 살면서 부모님께서 하신 고생이 헛되지 않게 내가 잘 사는 것, 부모님 염려끼쳐드리지 않고 행복하고 건강한 것이 내가 잘 살고 싶은 이유다. 부모님에 대한 감사와 사랑이 내 동기이자 연료이다.
휴가의 마지막에 엄마랑 통화하면서 휴가기간동안 내가 할 가장 중요한 것은 새해계획과 다짐이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다. 더 중요한 내가 왜 열심히 사는지 얼마큼 어떻게 사는 것이 맞는지 내가 지금 하는 걸 왜 하는지에 관한 것이다. 나의 뿌리를 다시 들여다볼 수 있음에 감사하다. 엄마가 오래 건강하셨으면 좋겠다.
이제 "왜"를 알았으니 "무엇"은 자연히 "노력"은 자연히 따라올 것임을 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