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 시랑리의 작은 포구들

수십 척의 배가 모여 빛을 뿜었을 때, 우리는 만선을 이루어 낼 것이다.

by 탈고

나의 첫 바다는 송정이다. 아버지의 무료한 주말 오후는 항상 어머니의 잔소리로 가득했고, 그 잔소리가 떠민 등에 나를 업고 바다로 향했다. 아버지와 단 둘이 외출 한 첫 기억이고, 아버지의 질문과 조언을 난생처음 듣던 날이었다. 그래서 그런지 바다라는 공간에 가면 아주 가끔이지만 스스로에게 질문과 조언을 하게 된다. 추억 때문에 쥐어 짜낸 억지스러운 질타일 때도 있지만, 불현듯 나도 모르게 밀려올 때가 있다. 부산 기장읍의 ‘시랑리’에 있는 바다와 포구들을 만났을 때처럼.



바다가 만들어낸 것 중 가장 매력적인 것을 말하라면 나는 한 치의 망설임 없이 ‘포구(浦口)’라고 답할 것이다. 포구는 언제나 만선(滿船)의 희망이 있는 곳 또는 자연이 주는 불행이 있는 곳이며 방파제가 막아주는 거친 파도 뒤에서 잠시 쉴 수 있는, 파도와 배에게 그런 여유를 주는 곳, 바다의 생명력을 확인할 수 있는 또는 죽일 수도 있는 곳이다. 희망과 불행 쉼, 여유, 생명, 죽음이 한 대 모여 삶 그 자체를 만들어 내는 곳이기에 나는 포구를 사랑한다.



시랑리의 동암마을과 공수마을엔 작고 소박한 포구가 있다. 마을 이름을 딴 포구들엔 저마다의 이름을 가진 작은 배들이 쉬고 있었다. 잔잔한 물결에 아래위로 천천히 움직이는 배들은 저마다의 시간만큼이나 오래된 흠집과 녹을 곳곳에 내보이며 단단한 밧줄에 묶여 있었다. 밧줄을 채워두지 않으면 배는 정처 없이 어디론가 흘러 가버렸을 것이다. 그만큼 육지와 바다를 이어주는 몇 가닥의 밧줄은 어부들에겐 생계를 지켜주는 단단한 버팀목이고 오랜 시간 동안 풍파를 이겨온 배들에겐 쉴 수 있는 이유를 만든다.



우리에게도 이 같은 밧줄 한 가닥 있다면 소중한 것들을 어디론가 흘려보내지 않고 지킬 수 있지 않을까. 요즘은 희망을 품을 수 있는 생계의 창고가 너무나도 불투명하고 쉽게 사라져 버린다. 쉽사리 안정이라는 것을 보장받을 수 없기에, 젊은 우리는 해무(海霧) 낀 망망대해에 흘려보내져 갈피를 잡지 못한다.



삶에서 안정이라는 것을 느끼려면, 사회가 안정적이어야 한다. 바다가 투명해야 나의 밑에 어떤 위험이 존재하는지 알고, 포구를 지키는 방파제가 든든히 버티고 있어야 흔들림 없이 배를 지킬 수 있다. 하지만 지금의 우리나라는 너무나도 탁해져 한 치 앞의 뱃길을 보기도 힘들고, 거친 물살을 막아줄 방파제는 극소수의 인물들이 야금야금 뒤에서 챙기는 콘크리트 블럭들 때문에 허술하기 짝이 없다. 그마저 조작과 조종으로 인해 안전하다고 믿기 힘들다. 그런 와중에 밧줄 한 가닥이라도 단단한 육지에 고정해 줄 수 있다면 좋을 텐데... 누군가 모두 훔쳐 꼭두각시 만드는 데 사용했나 보다.




마을 주민들은 이른 아침부터 분주했다. 나이 지긋하신 할머님들은 그늘에 앉아 손주 이야기라도 하는 듯 웃음 한가득 머금은 입으로 나에게 길을 알려 주셨고, 포구 가까이에서 장어잡이 밧줄과 그물을 정돈하시는 어르신은 매니큐어 곱게 바른 손으로 반갑게 악수를 받아 주셨다. 그리고 기장의 특산물이 미역이라는 사실을 몰랐던 나에게 미역양식에 쓰는 밧줄 정리를 도우라며 타박하신 어머님들도 친절히 대화에 응해 주셨다.



겨울의 초입이어도 볕은 따가웠기에 잔뜩 찌푸린 눈가에 지는 주름은 고단함보단 행복을 담고 있었다. 그런 얼굴만큼이나 주름진 손에 쥐어진 줄을 통해 그들은 지금까지 살아왔을 것이다. 그 줄에 걸린 물고기와 미역을 팔아 자식들을 키웠을 것이고, 손주들에게 용돈도 주시지 않을까. 그만큼 오랜 세월 혹은 지금 나와 같은 젊은 시절의 꿈을 그 줄에 걸고 힘차게 끌어당기시진 않았을까. 10년, 20년... 나로선 가늠하기도 힘든 시간 동안 수많은 이유를 엮고 걷어 올리며 오늘까지 오셨기에 그 줄은 그분들의 삶 그 자체인 셈이다. 그래서 행복해 보였던 것 같다.



우리는 무엇에 삶의 이유를 엮어 바다에 던지고 어떤 것이 걸려 올라오길 바라기에 희망을 품으며 살아갈까.


내 삶의 이유를 엮은 그 줄을 있는 힘껏 잡아당기고 싶지만, 물이 너무 탁하기에 물고기가 있을까 부터 걱정일뿐더러 누군가 훔치고, 끊어버려 사라지지는 않았을까 두려운 요즘이다.




오징어잡이 배들은 칠흑 같은 밤에 출항한다. 그리고 한 치 앞도 안 보이는 망망대해에서 조업을 시작한다. 그곳에서 배의 목적인 오징어를 잡아들일 수 있는 이유이자, 방법은 수십 척의 배가 눈부신 빛을 뿜어내 오징어가 그 빛을 향해 오게끔 유인하는 것이다. 요즘 우리에게 필요한 것도 이 같은 빛들의 모임이다.



사회와 환경을 불신할 수밖에 없는 요즘, 한 치 앞이 안 보이고 꿈을 잡아들일 희망이 없을수록 스스로 낼 수 있는 빛의 밝기를 더 높여야 한다. 우리가 빛을 내는 이유는 만선을 꿈꾸고 포구를 나서는 배들의 희망과 같다. 사회가 그 희망을 보장해주지 못 한다고, 불을 꺼버리면 나의 자식, 나의 손주에게 쥐여줄 희망 또한 꺼진다. 수십 척의 배가 한 대 모여 어둠 속에서도 만선을 이루어 내고 포구로 돌아와야지만 나의 후손들에게도 그릇 됨을 바로잡을 수 있다는 희망과 하고 싶은 것을 하면서도 안정을 보장받을 수 있는 밧줄 또는 그물을 물려 줄 수 있다.



시랑리는 아직 도시의 때가 많이 묻지 않은 부산의 어촌마을이 많다. 고즈넉하고 잔잔하며, 투박하지만 따뜻한 곳이 많다. 그만큼 잊고 지내는 것들을 많이 가지고 있다. 고즈넉함에 여유가 있고, 잔잔함에 뒤돌아 볼 수 있으며, 투박하기에 기교 없이 진실 되고, 따뜻하기에 또렷이 앞을 직시할 수 있는 어촌 마을이자 포구였다.






직, 칠흑 같고 탁 바다 밑엔 노 별들이 잠들어 있습니다. 우리가 빛을 잃는다면 그들을 포구로, 뭍으로 데려올 등대가 사라집니다. 그 바다가 또다시 우리의 별, 빛을 집어삼키지 않길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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