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새벽을 달리는 비에 젖은 택시

by 탈고


얼마 전, 가을의 시작을 알리는 지진이... 아니 비가 왔다. 새벽까지 작업을 하고 동료들과 24시 고깃집에서 대패 삼겹살에 소주 한 잔을 기울이고 택시에 올랐다. 아직은 어둑한 새벽 5시경. 가로등 빛이 흩어지는 택시의 창, 그 위를 뒤덮는 빗방울 소리, ‘타박타박’. 고개 들지 않으면 보지 않은 밤하늘의 초승달처럼 휘어진 나의 등을 몹시 모질게 두드리는 소리였다.


새벽은 많은 것을 압축해서 들려주기 때문에 어둠은 깊고, 짧다. 나만 있을 수 있는 칠흙 같은 고립과 휘파람처럼 날리는 차갑고 굽이진 내면의 소리는 냉정하고 날카로운 이야깃거리를 몰고 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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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짧은 비 오는 새벽, 택시 안에서 나에게 던져진 이야기는 사뭇 슬펐다. 머릿속에서 되뇌는 목적지는 꿈을 만들어 내지만, 잠에서 깨면 잊어버리는 알 수 없는 환상의 이야기로 변해간다. 점점 잊어버리는 것에 익숙한 나머지 잃어가는 것들도 환상이라 말하게 되는 우리 20대들의 일상은 택시 창에서 흩어지는 가로등 불빛같이 몽롱하고 흐릿하며 금방이라도 꺼질 듯 위태롭기까지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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빗물에 젖은 창을 통해 바라본 밖은 꾀나 우울했고, 채찍질 같이 모진 소리를 들려주었다. 우리가 가려는 목적지의 길은 한치 앞에 놓인 빛도, 표지판도, 신호등도, 사람도 그 무엇 하나 뚜렷하게 보여주지 않고선 흩어지기 일쑤다. 언제 어떻게 다른 길로 빠지거나 돌아갈지 모를 일이다. 하지만 도착하려는 나의 보금자리이자 목적지를 잊어선, 잃어선 안 될 것이다. 그날도 안전히 집에 도착했다. 우울한 이야기를 타고, 채찍질 같은 빗소리를 덮어쓰고 결국 도착지에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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젖은 새벽이 들려준 그 날의 이야기는 나와 같이 지금을 살아가는 내 친구, 내 동료, 내가 사랑하는 모든 사람의 이야기였다. 단정 짓지 못할 미래를 꿈꾸며 점점 흐려지기만 하는 나만의 공간과 풍경 또는 환경, 내일이 되면 또다시 잊혀지고 잃어버릴지 모를 것들에 우울한 이야기만 되풀이되는 우리의 새벽. 그 새벽의 끝에 서서 비에 흠뻑 젖은 택시가 떠나가는 걸 바라보았다. 그렇게 불투명했던 나의 새벽이 뚜렷하게 멀어지고 있었다. 도착지 앞에서 바라보니 결국 작은 껍데기 같은 한낮 택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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