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임푸어의 씁쓸하고도 부끄러운 흐린날의 피크닉
우리에겐 두 개의 세계가 존재한다. 그 세계는 어느 세대에선가 만들어놓았고, 열정과 냉정을 만들었다.
스펙, 취업과 연봉, 보상 안정 보장 청춘이라는 말로 보상되는 혼자만의 기다림 버팀, 부모님에게 자랑스럽기 위한 또는 주위 시선에 자존감을 방어하기 위한 직함 직업 그것을 이루기 위한 만족 경쟁 그리고 대열 속에서의 열정
이상과 꿈, 여유, 즐김 일탈 위험 불투명 모험 도전 보장되지 않는 사회의 시선, 그 누구에게도 찾아볼 수 없는 자신만의 개성 영혼 주위 시선을 아랑 곳 하지 않을 신념 철학 희망 그리고 대열을 쫓지 않는 냉정
얼마 전, 부산의 시민공원으로 짧은 피크닉을 구상하고 다녀왔다. 아침부터 흐린 날씨 탓에 망조를 예상했지만, 역시나 망했다... 에헴.
피크닉은 화창한 날 떠나야 제맛이다. 태양이 머리 위에서 따뜻한 기운을 쉴 새 없이 전해주고, 간간히 부는 바람이 묻히고 가는 기분 좋은 여운, 여유... 아차! 내가 지금 이렇게 낭만에 젖어 탱자탱자 탱탱볼처럼 놀고 있을 때인가!?
나는 어느 시점부터인가 시간이라는 압박에 짓눌려 당연한 것을 사치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타임푸어(일에 쫓겨 자유 시간이 없는 사람. 또는 그런 현상). 그렇다, 나는 이 시대의 살아있는 타임푸어이자 어르신들이 말하는 그 힘들고 아픈 시기인 청년기인데 이렇게 피자 싸 들고 와서 즐기고 앉아 있자니 여간 눈치 보이는 일이 아닐 수 없었다. 하늘이 지켜보고! 부모님이 지켜보고! 지금도 기를 쓰고 노력하는 보이지 않는 경쟁자들이 톱니바퀴처럼 열심히 움직이고 있는데! 아...채플린이여 아, 모던 타임즈여!
타임, 우리에겐 진짜 그 짧은 피크닉타임마저도 사치일까. 화창하게 내리 닿는 볕이 그렇게 부담일까. 어느 순간 열정의 세계에서 한 발자국만 벗어나더라도 스스로 초조함을 주입하고 있었다. 누군가를 만나는 시간 동안 혹시나 잃을 것이 없을지에 대해 초조해하고, 쉼과 휴식을 즐기면서 어딘가 존재할 경쟁자들에게 박탈감을 느끼며 초조해한다. 그렇게 우리는 이전의 시대들이 정해놓은 세계에서 조금이라도 벗어나면, 사탕 훔친 어린아이마냥 맛있으면서도 씁쓸한 자책과 불안을 떠맡으며 살고 있다.
우리의 선택, 우연, 필연, 운명, 삶은 저 두 가지 세계로만 틀지어질 수 없다. 당연한 이야기지만, 당연하게도 힘든 일이다. 젊다는 것은 우리나라 사회에서는 크나큰 짐이 되는 요즘, 아프지 않으면, 혼밥 혼술을 하며 외로이 노력하지 않으면, 버틸 용기가 없으면 마치 청춘이 아닌 것 같기 때문에 자기검열에서 항상 자유를 박탈시키고 있다. 선택과 우연, 필연과 운명들이 만드는 누구도 정해 놓지 못하는 내 삶의 자유도는 온데간데없었다.
날씨가 흐렸기 때문에 내심 좋았던 나 자신이 싫다. 빨리 다른 일을 더 많이 할 수 있을 것 같아서, 자유로운 이 선택에 대한 죄책감에서 얼른 벗어나고 싶었던 내가 부끄럽다. 다음에는 꼭 화창한 날 피크닉을 원 없이 즐길 생각이다. 두 세계를 관통하며 갈등하는 전쟁 같은 삶에 평화를 주고 싶다. 그 어떤 세계도 아닌 나의 세계에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