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이 오기 하루 전, 정신없는 준비와 맞물려 어처구니없는 소식 하나가 엮였다. 양또형의 갑작스러운 불참 소식. 공연의 전반적인 세션과 아티스트의 정신적인 보금자리, 팀의 맏이이자 가장 무대 경험이 많은 그이기에 우리는 혼란에 빠졌다. 정확하진 않더라도, 넌지시 라도 그 이유를 말해 주었다면 조금이나마 건강한 합리화로 위안으로 삼았을 것을. 기대감과 설렘, 불안과 쓴웃음이 뒤섞인 부산역 광장 앞에서의 만남이었다.
부산역 앞은 분주했다. 월요일인데도 불구하고 방학의 마지막 끈을 붙잡고 부산으로 모여든 사람들은 인산인해였다. 삼삼오오 모여있는 여성분들은 짜기라도 한 듯 각 무리마다의 컨셉이 있었다. 한 무리는 핑크색과 흰색으로 맞추었고, 한 팀은 청으로 여행의 첫날을 시작하는 듯 보였다. 그리고 부산역을 배경으로 10분여간을 사진촬영에 몰두했다. 그 뒤에서 수북하게 쌓인 짐들 더미에 걸터앉아 그 광경을 지켜보던 대한이 형이 한마디를 던졌다. “흑역사가 이렇게 기록되는 구나.” 그제야 어느 아이돌 그룹의 잔상들이 스쳤다.
가장 예쁨을 담기 위해, 가장 행복함을 가져가기 위해, 한참의 계획과 설렘이 모여드는 '역'.
부산역 앞이 본가인 나에겐 익숙한 집 앞의 전경이 낯설게 다가왔다. 몇 년간을 부산역 앞에서 버스를 타고 다녔던 나에게 무뎌진 ‘역’이라는 의미가 급행열차처럼 거세게 달려와 부딪쳤다. 한껏 꾸미고 온 저들의 자세는 여행이라는 의미, 낯선 곳으로 스며드는 긴장의 무딤을 알아차린 나에겐 그저 위대한 탐험가의 모습이었다.
찬영, 관훈, 대한과 내가 한참을 부산역 광장에서 기다리는 동안 민지와 현애는 이미 부산역 안에 도착해 있었다. 작은 착오에도 싱글벙글 즐거움을 숨기지 못하고 모인 우리. 비록 한 명의 부제는 있지만, 그 덕에 더 단단해 져서 만난 우리였다.
양또형은 민지와 관훈이 에게 큰 힘이자 의지할 곳이었다. 그래서 양또형의 통보를 처음 들었을 당시 가장 큰 걱정은 그들의 행보였다. 옷걸이가 사라진 예쁜 옷들처럼 힘없이 처지거나 어디에 자신을 둬야 할지 방황하지 않을까. 하지만 대한이 형에게 전한 그들의 말들은 단단했다. 그의 빈 곳을 채워나가 보고 싶고 그렇게 만들 것이라는 다짐의 말. 불안은 용기로 바뀌었고 현재도 충분하다는 자신감으로 바뀌었다. 또한, 이제 서로가 서로에게 의지할 수 있는 기회가 생겼다. 나름 드라마틱 한 팀워크가 형성된 것이다.
서로의 기차표를 확인하고 기차를 비집고 들어가 좌석을 찾는 와중에 우리와 같은 모습, 기타를 등에 메고 맞은 편에서 걸어오는 여자 한 분이 있었다. 기차의 중간쯤이 자리인 듯 좌석 위 짐칸에 자신의 기타를 올려두고 유유히 사라졌다. 알고 보니 그녀가 기타를 올려둔 자리는 내가 앉아야 할 좌석의 짐칸. 내 자리 주변이 그녀의 자리일 것이라는 생각으로 귀한 기타를 피해 짐을 올려 놓았다. 기타 케이스에 연결된 부적 같은 액세서리를 조심스럽게 피해서.
기차가 출발하고 점점 다가오는 그녀는 내 자리가 자신의 자리라 했다. 기차표를 확인해도 똑같았다. 수 없이 오가는 불안한 눈빛들. 이게 무슨 일인가 싶었지만 둘 다 침착하게 역무원을 찾았다. 그제야 그녀의 표가 오류였다는 것을 알았고, 웃으며 기타를 내려주었다.
쉽게 일어나기 힘든 일이라는 역무원의 말과 짐을 전해주며 마주친 눈빛은 아직 생생하다. 기차 안은 항상 어디론 가로 향하는 사람들의 공간이다.
바람에 날리는 옷깃처럼 가만있을 줄 모르는 인연들이 수 만 리의 땅을 스치고 지나간다. 필연이든 우연이든 그 짧은 스침이야말로 여행의 가장 거대한 가치가 아닐까.
기차에서 내리고 나니 부산과는 다른 바람이 몸 깊숙이 파고들었다. “아, 부산은 따뜻한 거였구나.”라는 말이 절로 나올 정도로 겨울 끝의 대구는 만만치 않았다. 그리고 이번 여행에서 가장 큰 첫 번째 실수를 발견했다. 장갑. 호주머니에 담을 손 없이 짐을 든 터라 정말 감각이 사라지는 경험을 여행 첫날부터 경험했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약속이라도 한 듯 누구 하나 장갑을 낀 동료는 없었다. 다 같은 처지. 굳이 장갑이 필요 없음을 느끼는 순간이었다.
언 손으로 꾸역꾸역 숙소에 도착했다. 나름 게스트하우스를 전전하며 살아온 터라 그런지 게스트하우스에 대한 몇몇 진실을 알고 있다. 그래서 여타 웬만한 게스트하우스에 대해선 불신이 가득하지만, 우리가 하루를 보낼 B&S게스트하우스는 그렇지 않았다. 우선 깔끔하고 좁지 않은 침대는 가장 중요한 요소이다. 앞서 말한 진실 중 하난, 여타 게스트하우스의 청결 상태는 그리 좋지 않다는 사실이다. 하지만 주인인 이모님이 직접 청소를 하셔서 그런지 가정집처럼 정갈했다. 한가지 팁을 주자면 게스트하우스의 청결은 침대 밑을 쓸어 보면 알 수 있다. 또 하나의 진실은 냉장고를 보면 알 수 있다. 만약 냉장고 안에 약간은 오래된 듯하거나 계속해서 보관하는 듯한 용기나 술이 쌓여 있다면, 그리고 그 상태가 그리 청결하지 않다면, 손님 로테이션이 빠른 게스트하우스의 특성상 그리 성실한 관리가 안 되는 곳이다. 어디까지나 개인적인 의견이기 때문에 모든 숙박업소를 싸잡을 생각은 없지만 나름의 경험에서 나온 팁이라 생각한다.
B&S의 주인이신 이모님도 매우 친절하셨다. 부산에서 왔고, 공연하는 팀이라고 하니 여러 경험에서 나오는 공감대로 좋은 정보들을 많이 주셨다. 그중에서 단연 손꼽히는 정보는 게스트하우스 인근에 있는 식당. 아침도 거르고 모인 터라 주린 배를 움켜쥔 우리는 본능적으로 이모님의 말에 따라 식당으로 향했다.
‘중화반점’. 거두절미하고 딱 봐도, 누가 봐도 중국요리를 하는 집의 이름이다. 언제 생긴 지 감도 오지 않을 정도로 오래된 듯한, TV나 기억 저편 갓난쟁이 때 봤을 법한 난로. 추가된 음식은 투박하게 매직으로 적어놓은 메뉴판은 몇 번의 시대를 넘나들며 바뀐 가격대의 흔적이 고스란했다. 그 흔적의 마지막인 지금은 어느 날부터 지워지지 않은 듯 저렴하고 넉넉했다. 정신없이 시작된 여행의 첫 여유와 첫 담소의 시간을 만들어 준 중식당은 언젠간 다시 한 번 꼭 가볼 생각이다.
민지는 내색하진 않았지만 많은 긴장을 하고 있었다. 음식을 다 먹어 갈 때쯤, 이제 이 식사가 끝이 나면 첫 공연장으로 가야 한다는 사실을 알아서인지 불안하다는 말들을 털어놓았다. 그 전까지 나는 민지는 공연경험이 많다고만 생각하고 있었다. 하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았다.
민지는 얼마 전까지만 하더라도 부산의 작은 공연 기획사 소속이었다. 회사가 잡아주는 공연, 회사가 바라는 무대, 그 무대 앞의 사람들이 바라는 노래 들만 해왔다. 6개월간은 호텔레스토랑에서 바라지 않던 환경과 많은 제약 속에서 노래했다고 말했다. 그 과정들이 20살과 21살, 어린 나이엔 쉽지 않은 경험이었을 것이다. 민지는 그 동안 그렇게 노래를 해왔다. 과연 민지는 한 번이라도 자신의 무대를 가져 본 적이 있었을까… 내고 싶은 소리로 노래 불러 본 적은 있었을 까. 어린 나이에 풍부한 경험을 겪은 것은 좋다만, 그 과정은 가혹했다. 음악을 포기하게까지 만든 그 경험들이기 때문에. 그때 서야 민지의 긴장과 두려움이 이해되었다.
자신의 발로 올라가는 무대이자, 음악을 하겠노라는 다짐, 그 마지막 끈이 될 수도 있는 무대의 시작.
첫 번째 무대가 될 클럽 ‘club HEAVY’는 영화 ‘프리다’로 잘 알려진 줄리 테이머 감독의 ‘어크로스 더 유니버스’에 나오는 그 클럽의 분위기였다. 보라색이 눈에 띄는 벽과 무대 위를 가득 채운 노란색의 빛들, 그리고 어지럽게 놓여 있는 둥글고 낮은 의자들은 영화에서 보여주는 그 의미와 묘하게 교차했다.
그 공간을 계속해서 가로지르며 노래를 듣고 다시 상기시키는 관훈이의 얼굴은 내가 지금껏 봐온 모습 중 처음으로 웃음기 없는 얼굴이었다. 아마 여기 있는 누구보다 가장 큰 부담과 긴장을 안고 있는 사람이 관훈이 일 것이라는 사실을 그때야 깨달았다.
민지에겐 믿고 의지하는 오빠이자 아티스트로선 자신의 음악으로 처음 무대에 오르는 사람. 양또형의 부제를 매워야 한다는 부담도 있었을 것이다. 그리고 처진 팀 분위기를 환기하려 노력하는 모습도 있었다. 말할 수 없었을 것이다. 긴장하는 모습이 드러난다면 민지에게, 부담을 껴안은 팔을 풀어 버린다면 우리 모두에게 그것이 주어진다는 사실을 알았을 것이다. 묵묵히 뒤에서 그 모든 것을 집어삼키고 연습하는 관훈이의 모습은 여행 당시도 그렇고 기록을 하는 지금 이 순간에도 변함없이 뭐없네 프로젝트의 가장 큰 버팀목이 된 모습이었다.
대구의 아티스트 분들이 한 분 두 분 도착하기 시작했다. 홍시은씨, 오늘도 무사히, Eke 씨가 모두 한자리에 모였다. 각자 리허설을 하고 짧은 인사를 나누었다. 이번 여행의 또 다른 가치는 그 지역의 아티스트들과 함께 무대에 선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들과 무대 밑에서 각자의 환경에 대해 나누는 이야기들.
사실 부산 안에서만 있다 보면 부산부산거리는 것에 대한 의미가 무뎌진다. 우리가 그렇게 찾던 지역성, 잠재력. 기회와 넓은 시장이라고들 말하지만 사실상 일상화 되어버린 수도권의 주류 문화에 맞서는 힘. 그 모든 것을 만각하고 어느 순간 이도 저도 아닌 글을 쓰고 있다는 사실과 조우한 적이 있다. 그것도 최근… 처음으로 낯선 지역의 낯선 분들과 인사를 하고 나니 이도 저도 아닌 나를 바로 잡고 싶다는 욕심이 생겼다. 그리고 무대 위에 오르는 그들의 음악에서 위안과 다짐을 찾고 싶어졌다.
지방이라는 것에 피해의식을 가지고 있던 나에게 위안을, 욕심 없이 우물 안에서 있던 자신에게 다짐을.
공연 영상
공연이 끝나고 홍시은 씨와 Eke씨는 사정이 있어 먼저 돌아가셨다. 지금도 가장 아쉬움이 많이 남는 일은 모두와 이야기를 나누지 못했다는 것이다. 첫 공연이다 보니 한 분한 분 더 값지고 고마웠기에 뒤풀이를 모두 함께 가고 싶었다. 챙겨 주지 못함에서 오는 미안함과 서로의 것을 나누지 못한 아쉬움. 바리바리 싸서 든 짐들만큼이나 무거운 발걸음이었다.
뒤풀이로 향하는 행렬을 짚어보니 장상민씨가 동행하고 있었다. 기획단계에서 지역의 공연장과 아티스트를 섭외하는 것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녔다. 대구도 마찬가지. 부산과 가깝고, 현애가 자주 왕래한다고 해도 한계는 있었다. 그때 먼저 손을 내밀어 준 분이 바로 장상민씨이다.
우리가 향한 곳은 돼지갈비 1인분이 2000원이라는 상상하기도 힘든 고깃집. 가게 이름은 정확하지 않지만 홍콩반점에서부터 갈빗집까지, 대구는 배려가 많은 도시이다. 주머니 사정이 넉넉하지 않게 출발한 우리에겐 그저 너그럽고 고마울 뿐. 부담 없이 대접하고 받으며,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다.
삼삼오오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자연스럽게 자신이 처한 환경에 대해 토해냈다. ‘오늘도 무사히’의 보컬이자 기타이스트인 엄태현 씨가 한 말이 아직 기억에 남는다. “노래하다 보면 많은사람들 앞에 서고 싶어지는 건 당연한 거에요. 그럼 설 수 있는 무대도, 사람도 많은 서울로 가는 게 맞다고 생각해요. 하지만 당장 서울로 가서 살아갈 여건이 안돼요.”
맞지만 맞는 것을 하지 못하는 현실. 누구에게나 개인 사정과 환경이 있다. 그걸 무시하고 도전을 하지 않는다는 둥, 무서워한다는 둥의 억지스러운 강요를 일삼는 일이 많다. 나 또한... 얼마 전 ‘지방대 특성화 사업’과 관련하여 지방의 젊은 창작가들이 수도권으로 고개를 돌리고 자신이 자라온 지역에서 꾸준히 활동하기 힘들어한다는 내용의 글을 쓴 적이 있다. 일반화를 해버린 것과 아쉬움을 표한 것. 자신의 선택에 있어 맞는다는 것을 따랐을 뿐이고, 맞지만 개인적인 사정이 있었기에 아쉬움만 남기고 있다는 사실은 무시했던 글이었다. 미안했다.
놓인 환경에서 정말 최선을 다하고 있다는 사실은 묵살해 버렸기 때문에. 각자의 삶, 그 이상도 이하도 없었다.
생각이 많아지던 찰나에 분위기가 전환될 조짐이 보였다. 장상민씨가 기타를 빼 든 것. 사실 그전까지 그가 무엇을 하는 사람인지 정확히 알지 못했다. 누군가의 도움으로 현재 해외공연시장 진출을 준비하고 있다는 사실만 알뿐. 그 이야기만 듣고선 약간의 경계를 했었던 기억이 있다. 하지만 그가 기타를 치기 시작했고, 10년 가까이 기타를 쳐온 프로 기타이스트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 말은 의심의 여지 없이 그의 기타소리만으로도 맹목적인 수긍을 할 수 있었다. 그리고 그 자리에서 즉흥 공연이 열렸다.
첫날의 마무리는 환상적이었다. 케빈 탄차로엔감독의 영화 ‘페임’에서 급식실 시퀀스에 매료된 적이 있다. 즉흥적인 연주와 노래, 고등학생이던 나에겐 대학의 환상이 그러했다. 정작 현실은 그렇지 않았지만, 오늘 그때 그리던 환상을 현실로 체험한 듯했다.
이번 여행을 떠나기 전에도 작은 환상이 있었다. 다른 지역 아티스트들에게서 계속해서 글을 쓰고 더 좋은 결과를 사람들에게 보여 줄 수 있는 끊어지지 않는 밧줄 하나를 찾는 환상. 그런데 불과 몇 시간 전, 그러기엔 아직도 이도 저도 아닌 것들만 내놓고 있는 나 자신을 알았다. 그리고 과거 민지의 경험들도, 관훈이가 안은 속 안의 무게도… 부산에만 있을 땐 보이지 않았던 안주와 자만, 다른 이들이 가지고 있는 속 사정은 신경도 쓰지 않고 급급한 내 밧줄만 챙기려던 모습. 글을 쓰기로 마음먹었을 적 꾸었던 환상은 그런 모습이 아니었는데.
사회에 많은 것을 착취당하는 요즘의 젊은 창작자들을 위한 글. 가장 낮은 곳에 나의 팬 대가 있어야 한다는 환상은 온데간데없어지고 난 후의 모습들이 스치고 지나갔다. 내 보금자리에서 한발 물러서 보니 튼튼한 줄만 알았던 내 자리는 안쓰럽게도 천천히 무너지고 있는 듯했다.
밖에서 바라본 나의 보금자리의 모습은 내 생각관 조금 달랐고 그곳에서 만난 사람들이 바라보는 모습 또한 달랐다. 그들의 이야기에 귀 기울이다 보면 어리광만 부렸다는 사실도 알았다. 결국, 나 자신이 이도 저도 아닌 사람이었다는 사실도…
여행의 가치는 인연과의 조우이며, 그들의 말에 귀기울여 듣는 나 자신을 한발 뒤에서 보게 되는 기회가 아닐까. 뭐없네 프로젝트의 첫날 밤은 여행을 가기 전보다 더 많은 생각을 하게 만드는 밤이었다. 앞으로 가게 될, 다른 달 아래에서 몸을 눕힐 우리. 첫 환상을 꾸었던 과거 여느 날의 밤과 같이 그 꿈을 다시 그리는 날이 있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