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물어 가는 시간과 낮과 밤 사이에 걸쳐진 그곳에서
나는 부산에 산다. 발이 닿는 어딘가에선 바람이 몰고 다니는 큼큼한 소금 향을 맡을 수 있는 곳이고, 어느 버스정류장에 서 있으면 바다로 향하는 버스를 잡아탈 수 있는 곳이다. 뭍을 출발선 삼아 끝없이 일렁거리는 물과 소금의 뜀박질, 심장의 요동침이 터질 듯한 설렘을 만들어 내는 곳, 하늘이 그어놓은 도착지엔 끝나지 않을 것만 같은 안식과 평화로움을 그려 놓고 있는 그곳. 바다는 그런 곳이기에 내 삶의 보물이자 보금자리이다.
부산의 바다를 떠나본 적이 없기에 제주의 바다는 아득히 먼 옛날부터 전해 듣는 설화(說話)이다. 자연이 주는 그대로의 여유와 아름다움으로 끝없이 구전되어온 이야기는 동경과 떠나고 싶은 이유를 만들기에 충분했기에 7일이라는 시간을 내서 제주도로 향했다.
바다의 표정 중 가장 행복해 보이는 때는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 선물을 고르고, 용기 내어 건네는 이의 표정과 참 닮아 있는 듯하다. 연인이 좋아할지 안 좋아할지를 수백 번 고민하며 마음 졸이다 눈도 쉽사리 마주하기 부끄러워 홍조 머금은 얼굴을 내비치며 건네주는 선물. 잔잔하게 떨리는 물결과 그 위에 태양이 빚어낸 붉은 빛깔은 낮이 밤에게 건네는 선물, 내가 사랑하는 가장 아름다운 표정, 노을이 아닐까.
제주 바다를 사이에 두고 주고받는 노을의 빛은 그 어느 바다보다도 아름답고 사랑스러웠다. 부산 바다에 그려지는 노을은 건물 사이까지도 비집고 들어와 그 색을 자랑한다. 하지만 제주 바다는 지구의 둥근 곡면을 있는 그대로 드러내며, 세상의 구석구석까지 그 빛을 선물하는 듯했다. 가공 없는 바다, 도심이 아닌 자연을 벗 삼아 놓인 바다는 언젠가는 돌아 가야 하고, 돌아와야 할 진정한 의미의 보물과 보금자리를 알려 주었다.
부산으로 돌아와 도심과 버무려진 광안리로 향했다. 제주 바다가 그리워서, 노을이 보고 싶어서. 카페에 앉아 우람한 인공 산 같이 솟아 있는 광안대교의 두 봉오리와 그 밑에 깔리는 노을의 잔잔한 울림. 수많은 사람으로 가로막혀 한 치 앞의 바다, 파도가 몰고 오는 노을의 진한 정수는 볼 수 없었다.
나의 보금자리는 항상 수많은 사람과 수많은 차가움과 함께 한다. 한 치 앞도 볼 수 없으면서 저기 걸려있는 인공의 현실만을 쫓아 숨 막히는 속도로 달려야 한다. 내 시야를 산책하는 수많은 사람의 여유들이 20대의 가난한 현실과의 괴리와 박탈감으로 다가오는 지금의 바다에선 제주에서의 선물은 사치와 같게 느껴졌다. 그렇게도 빨리 홍조 머금은 순수의 사람은 사라지고 있었다. 또 다시.
저물어 가는 시간과 낮과 밤의 사이에 걸쳐진 환상의 세계로 다시 돌아가고 싶다. 있는 그대로가 있고, 자연스러움이 있으며, 사랑하는 이의 표정을 지긋이 바라볼 수 있는 그런 여유가 있는 곳. 그곳에 서서 다시 한번 선물을 한 아름 얻어 오고 싶다. 또다시 잊어버리고, 사라지지 않을 만큼 깊숙이 품고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