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 친구와의 점심식사

잠시 멈추어 서서 밥 한 끼 하자는 말을 하기까지.

by 탈고


사춘기 시절, 끈끈한 연대를 만들던 친구들과 소식이 뜸해지고, 작은 다툼이 일어나고, 생사조차 무뎌지는 시간을 방관하며 살아온 20대 초반의 나날들. 밥 한 끼 하자는 말을 핑계로 얼버무리고, 그 많던 여유를 솜이불 속에 숨겨둔 체 반대로, 반대로 열심히 내 달려왔다. 그렇게 20대 후반의 문턱에 다다르고 나니, 그제야 반대로 달리고 있을 친구의 연락처가 보이기 시작했다. 나와 같다고 생각했지만, 사실은 달랐던 사람들. 그 다름 앞에 자존심 세우며 우겨대던 나날들이 부끄러워 질 때쯤, 친구 한 명에게 연락했다.



잘 지냈나?

/

잘 지냈지. 송정까진 안 멀더나?

/

네가 오랜만에 맛있는 거 사준다는데, 와야지.

/


다른 친구들은 어떻게 지내냐는 말에 디자인하던 친군 친척이 하는 부동산에서 일하기 위해 공인 중개사 자격증시험을 준비하고, 취업을 준비하던 친군 세계여행 중이며, 전공 살려 보겠노라 자격증 시험을 준비 중인 친구, 또 전공과는 다른 분야를 시작하는 친구.


삶에 어떤 바람이 불었기에. 마지막으로 날아가던, 훨훨 날기를 꿈꾸던 그 하늘과는 다른 하늘 아래에 가 있을까...시간의 기류가 마음 같지 않았기에. 비상하는 곳이 어디든 새에겐 하늘을 나는 것만으로도 의미가 있으니까.



그럼 너는?

/

취업해야지. 학원 다니고 있다. 마지막 학기...나도 늦은 거지

/

붙을 조짐은 좀 있나.

/

어렵지. 같이 공부하는 8명 중에 한 명 붙었어.




안 힘드나?.

/

갑갑하지. 나도 늦게 시작했는데, 먼저 시작한 애들 봐도 마음 같지 않으니까. 현실이

/

…..

/

나도 나를 아직 잘 모르겠다.


-


취업에도 개인적인 의미나 의의가 있나?

/

개인적인 의의…아마 열에 한 명도 그렇게 취업을 대하진 않을 것 같다.

/

자기 행동이나 선택에 의미가 없을 수가 있나 근데.

/

우리가 대학을 선택하면서부터 잘못된 거 같다. 성적 맞춰서 앞을 결정했으니까…

그때, 그런 걸 알려주는 사람이 있었으면 좋았을 건데. 인제 와서 보니 대학이 다가 아니고, 공부가 다가 아니니까.



10대 시절은 거대한 관문을 향해 떠나는 고행이었다. 그 관문 앞에 놓인 스핑크스의 수수께끼가 조금 다양했다면, 수수께끼가 아닌 그 사람을 위한 사소한 관심과 질문이었다면…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수수께끼를 푼 오이디푸스처럼, 지금의 20대는 풀 수 없는 증후군을 안은 채 살아가진 않았을 것을.


취업 준비를 하는 사람들도 속에선 다른 상황들을 꿈꾸지 않나?

/

아니다. 우리 학과 애들은 무조건 취직 아니면 공무원이지.

/

누가 강요한 것도 아닌데 다른 원하는 게 있지 않을까?

/

강요는 아닌데. 할 수 있는 게 이것밖에 없다. 돈을 벌 수 있는 게.

/

돈을 벌 방법이야 여러 가지가 있잖아. 하고 싶은 걸 한다고 해서 돈을 못 벌기만 하는 것도 아니고

/

방향이야 많은데 가장 쉬운 게 이거다. 가장 단순한 거.




얼마 전, 다름에 대해 고집을 부렸던 시간이 한없이 부끄러워졌던 경험이 있다. 전국 여행을 다니며 만난 사람들과 주고받은 몇 가지 이야기들. 그 말들 속엔 각자의 삶,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닌, 그것만으로도 가치가 있다는 교훈이 있었다. 내가 예술과 창업을 하면서 하는 노력이 취업을 준비하는 사람들의 그것보다 더 대단하다는 보장도 없고 이유도 없다. 그저 각자의 삶을 얼마나 진지하게 받아들이고, 열심히 살아가는지. 그 이상도 이하도 없다. 같은 사람은 세상에 없기에. 다르기 때문에 박수를 보낼 수 있다.


친구 따라 토익학원을 놀러 갔는데 유명 맛집처럼 줄이 엄청나게 길게 서 있더라구, 알고 보니 강의실 맨 앞자리에 앉으려고 수업 전부터 서 있는 줄이였어. 거기서도 맨 앞에 서야만, 1등을 해야만 하는 것 같더라고.

/

맞지, 다 경쟁이지. 누군가는 내 뒤로 보내야 내가 사니까. 예체능도 그렇지 않나?

/

….맞다. 자기 분야에서 1등을 해야 뭘 해도 하니까.

/

경쟁에서 우위에 못 서면, 먹고 살기도 힘든 것 같다. 하나부터 열까지 경쟁이니까 요즘은.



여유는 있나?

/

나는 내 친구 중에서도 제일 여유롭다고 생각하는데. (웃음)

/

왜? 그들보다 노력을 안 하는 것 같아서?

/

그 친구들은 취직하고 싶어서 안달이 났지. 나도 아닌 건 아닌데, 그들보다 불안이 없는 것 같다… 이도 저도 선택 못 하고 있어서 그런지.


나 혼자 사는 세상이 아니라는 걸 처음 깨닫는 날, 여유라는 단어가 죽는 날일지 모른다. 타인이 나의 세상에 들어오면서 그곳의 넉넉했던 공기는 점점 부족해지고, 목을 조여오는 증상에 시달린다. 경쟁 선상의 수많은 ‘남‘보다 앞서기 위해, 사랑하는 사람을 언제나 내 앞에 두기 위해, 달리고 또 달려 폐가 찢어질 듯 헐덕 거리며 집착에 시달리다.


잠시 멈추어 서서 숨을 고르다 보면, 몸 안 구석구석 쌓인 독기를 쓸어 입 밖으로 던져버리는 공기가 여전히 충만하다는 것을 알게 된다. 항상 넉넉하게, 아무도 눈치채지 못하게, 나를 숨 쉬게 해주는 공기는 넉넉하게 존재했다. 남들에게 빼앗겼다고 생각했던 여유도 가만히 멈추어 서서 나 자신 구석구석에 귀를 기울이다 보면 항상 그 자리에 넉넉히 있음을 알게 된다.



20살 때는 왜 사는지에 대해 더 열정적이었다면, 지날수록 앞으로 어떻게 살지를 더 고민하는 거 같다. 뭐 하면서 밥 벌어 먹고 살 건지...에 대해서

/

맞다. 결혼도 해야 하고 책임질게 많아질 수록 ‘왜’보단 ‘어떻게’에 더 열정적으로 집중하지

/

그래도 계속해서 붙잡으려고 노력하지. 왜 사는지에 대해서. 내 글이나 내가 하는 일을 왜 하는지에 대해서 처음 했던 질문들을 계속 상기시키려 노력하는 것 같다.

/

그게 너랑 나의 다른 점 아니겠나. 너는 왜 사는지를 고민 하고, 나는 어떻게 살지 고민 하는 거.




누군가 나에게 사춘기라는 시간을 정해 주었을 때, 나는 그 단어를 거부했다. 그저 당신들과 같은 한 명의 인간이길 원했다. 색안경을 쓴 그들의 색을 빼앗아 투명하게, 모두를 똑같이 바라봐 주길 원했다. 하지만 지금은 나의 색이 무엇인지, 나의 삶을 어떤 색으로 물들여 갈지에 대해서 혼돈과 고민을 반복한다.


분명한 건 그 시간에도 우리에겐 맑고 뚜렷한 각자의 색이 존재했었다는 것이다. 다만 우리 스스로가 같은 색이길 원했고, 똑같이 바라봐 주길 원했기에. 또한, 나를 돌아보는 게 서툴렀기에 그대의 색이 나의 색이고 그 색이 우리라는 이름으로 묶여 끈끈한 성취를 만들어 주었었지. 지금 와서 돌이켜 보면 친구라는 존재는 서로를 비추어 주는 가장 깨끗한 거울...그런 생각이 든다.




이제야 자신이 무슨 색인지 조금은 돌아볼 수 있나 보다. 그리고 그대가 찾은 색의 아름다움에 넉넉한 박수를 보낼 수 있나 보다. 사실 우린 같음에 묶이지 않았었어, 근데 나는 묶이지 않았던 우리가 더 짙어졌으면 좋겠어. 모두에게 파란 저 하늘을 날고 있는 그대가 더 잘 보일 수 있게.... 라 곱씹고, 친구와 헤어졌다.


‘어떻게’와 ‘왜’만이 중요한 건 아니다. 어떤 물음이던 진지하게 뱉어내고 있는지가 중요하다. 그리고 10년 후, 20년 후에도 그 깨끗한 거울 하나, 품 깊이 포개 두고 있는지, 지금의 질문에 넉넉한 박수를 보낼 수 있는지. 그리고 밥 한 끼 나누며 숨 돌릴 웃음을 나눌 수 있는지. 답은 언제라도 상관없다. 나를 비추어주는 당신이 있기에, 답안지보다 값진 삶을 찾을 수 있다는 용기가 생긴다.



차 온다.

/

그래. 다음엔 다 같이 보자. 애들도 그때 일 미안해한다. 사과하고 싶다더라.

/

(웃음) 다 잊었다. 뭘

/

그래도 ‘꼭’ 다 같이 보다.

/

그래. 예전처럼 동네에서 같이 보자. 간다.

keyword
탈고 에세이 분야 크리에이터 직업 출간작가 프로필
팔로워 125
작가의 이전글부산, 비 막이 열리고 시작되는 7명의 음악여행